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치솟는 인플레 잡아라" 세계 각국, 저지 총력…'긴축발작'은 부담

공유
1

"치솟는 인플레 잡아라" 세계 각국, 저지 총력…'긴축발작'은 부담

한동안 꿈틀대던 경제심리 위축 불가피

에너지 위기와 함께 치솟는 물가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에너지 위기와 함께 치솟는 물가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상치 않다. 자고 나면 물가가 뛴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경기부양책으로 풀려나간 엄청난 유동성이 유효수요를 크게 늘리면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뒤흔들며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컨테이너 겟돈으로 불리는 지구촌 곳곳의 공급망 붕괴가 가뜩이나 심각한 공급과 수요의 괴리를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다. 탄소중립 정책을 펴가는 과정에서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값이 치솟고 있다. 대체 에너지 개발 비용도 고공행진이다. 이른바 그린플레이션까지 나타나 물가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인플레 공포가 확산하면서 한동안 살아나던 경제심리도 다시 위축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이 밀어닥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인플레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긴축 발작도 세계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은 금리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DSR 조기 시행의 규제 카드까지 내놨다. 미국은 다음 주 FOMC에서 테이퍼링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인플레의 경제학적 정의는 "일정 기간 동안 물가가 지속적이고 비례적으로 오르는 현상" 또는 "화폐가치가 지속적이고 비례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이 정의대로 라면 세계 경제는 나라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이미 인플레의 기조에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적당한 수준의 인플레는 경제에 덕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도 이상의 통제하기 어려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다. 물가상승이 통제를 벗어난 상태로 수백퍼센트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는 상황에 이르면 세계경제는 그야말로 파탄이 될 수 있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동시에 경기마저 꺼지는 스태그플레이션도 공포의 대상이다. 퍼펙트 스톰의 우려까지 나온다.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역사적으로도 잘 검증되고 있다. 조선조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 경복궁 중건을 위해 찍어낸 당백전은 초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조선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상평통보 최고액권이 당이전이었을 때 경복궁을 짓는다면서 갑자기 50배의 주화를 시장에 쏟아내면서 조선을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엄청난 유동성 유효수요 크게 늘리며 물가 껑충


독일의 사례는 더 엄혹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물가가 무려 1조 배나 올랐다. 제1차 세계 대전에 패한 이후로 각종 생산 시설이 붕괴된 데다, 전쟁 기간 동안 필요한 재원을 조달한다며 엄청난 양의 통화를 발행하는 바람에 인플레가 발생한 것이다. 연합국에게 지불해야 하는 전쟁배상금도 큰 부담이 됐다. 독일은 배상금을 갚기위해 세금을 올렸다. 그래도 안되자 바이마르 정부는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게 된다. 그 결과 땔감을 사는 것보다 지폐를 땔감으로 쓰는 게 오히려 더 알뜰한 현상이 벌어졌다. 벽지를 사느니 그냥 지폐로 벽을 도배할 정도였다. 실제 지폐로 도배를 했던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인플레이션은 결국 히틀러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때 전세계 각국이 푼 돈은 조선 조 대원군이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 못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 유동성 살포는 지구촌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국제유가가 뛰고 공급망에 차질에 생긴 것도 결국은 유동성 과잉에 그 원인이 있다. 미국의 WTI 원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85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멈춰 섰던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류세를 20% 내렸지만 그것만으로는 국제유가 상승세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을 비롯한 각 국은 인플레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테이퍼링과 함께 단계적 금리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금리인상을 시작했다. DSR 규제도 강화했다. 내년 1월부터 총대출액 2억 원을 초과하면 DSR을 적용한다. 7월부터는 1억 원 초과대출로 확대한다. 상환능력의 지표는 DSR로 약칭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다. DSR 규제는 개인의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로 억제하는 것이다. 지금은 규제지역의 6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해 담보대출을 받거나 신용대출이 1억 원이 넘을 때 은행권에서 40%, 제2금융권에서 60%를 각각 적용하고 있따. 그중 제2금융권에서는 차주단위 DSR 비율은 60%에서 50%로 깎인다. 주담대처럼 만기가 긴 대출은 DSR 비율이 10%포인트(p) 낮아지면 대출 가능액이 대폭 삭감된다.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최근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개시가 임박했다"고 밝혔다. 유동성 축소가 예상되면서 국제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파월 의장은 전날 국제결제은행(BIS)이 주최한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테이퍼링을 할 때가 됐다"면서 "(테이퍼링 시작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을 돕기 위해 매달 1200억 달러(약 140조 원) 규모의 채권을 매입 중인 연준은 이르면 다음달 중순부터 채권 매입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 내년 중반까지 양적완화 정책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입장이다.

탄소중립 정책 과정에서 가스 등 에너지값 폭등

미국 연준 통화정책결정회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최근 공개된 9월 FOMC 의사록은 '경제 회복이 대부분 궤도를 유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점진적 테이퍼링 과정을 내년 중간 정도에 끝내는 일정이 적절할 것이라고 회의 참여자들이 전반적으로 평가했다'고 적시했다.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은 매달 국채는 100억 달러씩, 주택저당증권(모기지)은 50억 달러씩 매입을 축소하는 것을 논의했다. 연준은 현재 국채 800억 달러, 모기지 400억 달러 등 총 1200억 달러 채권을 매월 매입 중이다. 매입 축소 속도에 변수가 없다면 테이퍼링은 내년 7월께 완료될 것이라고 FOMC는 전했다. 9월 FOMC 의사록과 파월 의장의 최근 발언을 감안할 때, 연준이 11월 2~3일 FOMC 정례회의에서 지난해 초 시작했던 월 120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 중단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테이퍼링 개시가 임박하면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압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테이퍼링, 세계 공급망, 인플레이션 등이 부각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 직후 "경기의 회복 흐름이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다음번 회의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한은 국정감사에서도 "저희가 보는 경기 흐름 예상에 따르면 11월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지난 8월 금통위는 33개월 만에 0.25%포인트 올리는 등 기준금리를 0.75%로 결정한 바 있다. 이후 10월에는 동결해왔다. 올해 금통위 회의는 다음달 25일, 한 차례 남겨 둔 상황이다.

코로나가 인간 사회의 패러다임을 또 한 번 바꾸고 있다. 경제 운영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 흑사병은 중세를 마감하고 르네상스와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코로나는 그 이상의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코로나 사태로 인해 예상되는 패러다임 변화는 글로벌 차원에서 금융시장, 산업, 기업경영, 그리고 정책여건 등 각 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금융시장은 코로나 사태 이후 정책지원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자산 가격이 과거 수준을 빠르게 회복하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실물경제와의 괴리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괴리를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가 관건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