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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삶과 죽음에 관한 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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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삶과 죽음에 관한 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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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쿠마의 무녀 시빌은 항아리에 담겨 매달려 있었다/ 죽을 수도 없이 저주가 내리고/ 한 노인의 가슴에도 비발디의 사계가 삶과 죽음의 갈래로 내리고 있었다/ 겨울에서 봄을 타고 일렁이는 욕망도 사라진 채/ 죽음보다 못한 삶을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 봄은 황무지에서 라일락을 피워낼 정도로 잔인하다/ 시빌의 몸은 소금 항아리에서 건져낼 정도로 쪼그라들었고/ 비참한 몰골이 되고 목소리만 남았다/ 노인을 위한 기도는 감히 꿈꾸어서는 않될 것이었다.

구월 이십육일(일) 오후 세시, 여섯 시 강동아트센터 소극장에서 2021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 최자인(프로젝트 창 대표)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이 공연되었다. 시빌은 상실된 시간을 견디는 노인의 모습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유한다. 자연의 성장과 소멸은 인간의 삶에 걸쳐지며 T.S 엘리엇의 ‘황무지’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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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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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Sibyl : 시빌」은 그리스 신화 속 무녀 시빌과 20세기 초의 문학적 감성을 고양시킨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가 동인(動因)이 된다. 「Sibyl : 시빌」은 잘 알려진 문화 코드나 작품을 무용으로 콘텐츠화하여 재구성하고 창작한 대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타 분야의 예술가들이 원전이나 유형으로 존재하는 예술을 감각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공연한 두드러진 작품이 되었다.

구성을 탄탄히 하는 장치로서 무대 천정에 거미줄 형태로 엮은 실이 달려있다. 묶여있는 내면에 대한 심리적 묘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의 상징이다. 그 시간과 구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팽이, 시계, 실타래를 표현하는 오브제, 스펀체어를 활용하여 빙글빙글 돌아가는 끊임없는 반복적 흐름과 위태로운 한 사람의 심리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장에서 그 스펀체어를 시간과 실타래의 오브제에서 실을 풀어내어 실뜨기하듯 여기저기 얽히고 얽힌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일상의 반복과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시간의 잔인함을 묘사한다. 3장에서 큰 비닐주머니를 활용한 숨과 한 사람의 상관관계, 비닐주머니(숨)에 쫓고 쫒기다 그 숨에 잡아먹혔다 풀어지는 형태의 다시 돌고 도는 굴림의 모습이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무용수들은 4장의 봄의 만개를 표현하기 위해 큰 흰 고깔을 쓴다. 이것은 긴 시간을 살아내어 온 존엄이며, 아름다움인 노인의 하얀 머리카락을 표현한다.

밀짚 모자를 쓰고 다시 삶의 여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 인간과 크고 하얀 꽃 고깔을 쓴 무용수들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연출된다. 현대적인 모습의 한 인간이 천천히 끌고 나오는 커다랗고 길다란 실뭉치는 지금까지 살아낸 시간의 무게와 앞으로 또 살아내야 할 시간의 무게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계절적 이미지와 얽힌 실에 조명이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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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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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Sibyl : 시빌」은 프롤로그: ‘들여다보다’(삶에 대한 관조), 제1장: ‘겨울’(노인의 모습, 겨울의 끝자락), 제2장: ‘직선의 시간 : 노인의 노래’(시간의 잔인함), 제3장: ‘시빌’(시빌이 원하는 것), 제4장: ‘4월’(따사한 봄빛이 얼음을 녹이고 다시 살아내는 삶), 에필로그: ‘봄’(희망은 영속하다)으로 구성된다. 안무가가 삼년간 병상의 부친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무대화된다.

안무가는 부친이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삶과 죽음에 본격적 의문점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친의 모습에서 시빌을 떠올리고 그에게 평화는 ‘죽음’이라고 결론짓는다. 항아리 속에 쪼그라든 노인의 모습, 새장에 갇힌 노인 시빌의 모습, “죽고 싶어”라는 소원하는 시빌의 모습, 이 모두는 이 시대의 병든 노인의 모습이거나 병든 우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고령화 시대에 장수(長壽)와 죽음에 관한 사유는 경계가 없다. 봄으로 가는 겨울, 헐벗은 나뭇가지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몸의 선을 살리는 상의는 언더만, 스킨 칼라의 바지가 조합된다. 극의 중심에 서 있는 세 사람(노인, 노인의 내면, 숨을 표현한 세 무용수)은 흰색 의상으로 신비감과 현대적 이미지를 창출한다. 조명의 변주로 심리적 감성 표현이 두드러진다.

음악은 휘파람 소리가 중심이 된다. 장마다 노인의 휘파람 소리에 따라 스토리가 전개된다.

1장 : 무음에서 시작하여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3악장으로 겨울 이미지로 시작한다.

2장 : 모자를 벗은 노인의 심리적 묘사가 본격으로 이루어진다. 전자음을 바탕으로 반복적 시계 소리와 무용수들의 목소리가 섞여 묘한 분위기를 낸다.

3장과 4장 : 노인과 숨을 표현하는 무용수 두 명을 따라 시빌의 내면의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타악, 생황, 베트남 징, 피리 등의 라이브가 활용된다. 점점 극적으로 치닫다가 휘파람 소리로 끝이 난다. 비발디의 ‘봄’이 슬픔을 감싸면서 무용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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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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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Sibyl : 시빌」은 상실감을 안고 사는 동시대 사람들을 위한 헌무(獻舞)이다. 스포트 아래 다양한 심리가 도출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의해 노인의 모습이 창의적으로 표현된다. 신시사이저 사운드, 보컬이 만드는 시빌의 모습은 흥미롭다. 시간과 흐름의 연속성, 계절이 주는 감정선, 4월의 묘사를 위한 음악 구성, 한국춤 움직임과 비보잉의 조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한 신체의 다양한 표현 등 작품의 감정 스토리텔링을 위한 작업은 인상적이었다. 「Sibyl : 시빌」은 문·사·철에 두루 걸쳐 창의력이 두드러지며, 연구의 흔적이 돋보이는 짜임새 있는 구성, 호흡과 움직임에 연습 강도를 높인 기교적 춤으로 창작 정신을 드높인 작품이었다.

(출연/김신아 김소영 이승아 양지수 손무경 한소희 한상곤 최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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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〇 안무가 최자인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무용학 및 대학원 졸업

상명대학교 공연예술경영학 박사 졸업

현)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외래교수(2021~)

한양대학교 무용학과 강사 (2008~2010)

계원예술고등학교 강사 (2008~2010)

남예종실용무용과 외래교수 역임 (2017~2019)

<댄스컴퍼니 한> 창단멤버·정단원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이사

예술융합단체 <프로젝트 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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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안무가 최자인은 2004년 (사)한국무용연구회 신인안무가전에서 데뷔작 「나무 비린내」로 안무가상을 수상하고, 2008년 (사)대한무용학회 춤으로 푸는 고전 「목어」를 올리며 호평을 받았다. 다양한 안무 작업 중 결혼 후, 육아로 인하여 잠시 무대를 떠났다가 2016년, 한양대학교 졸업생들과 <댄스컴퍼니 한>를 창단, 2018년에는 예술 융합 단체인 <프로젝트 창>을 창단하여 새로운 창작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남예종실용무용과 외래교수를 역임하며 비보이, 왁킹 등 다양한 스트릿 댄스와의 융합을 시도, 2017년 「넋전아리아」를 통해 대한민국무용대상, 성균소극장 별의별 춤에 초청받았다. 2017년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에 선정되며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디지털기술인 전도성 잉크를 활용, 접목한 작품 「소녀, 그 상상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사회의 젠더 문제를 명화의 소재로 접근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2018년 서울 돈화문 국악당 기획공연 ‘수어지교’, 세종시문화재단 기획공연 선정작 춤추는 판소리 「그때여 놀보가???」를 통해 음악과 춤의 흥미로운 융합을 선보였다. 또한, 2018년 제39회 서울무용제 경연작으로 선보인 「달의 사막」은 안무가로서 ‘최자인’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을 소재로 남, 녀의 원초적 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조화에 대하여 극으로 풀어내었다. 또한,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의 이사로 국악 뮤지컬의 안무 및 주연배우로 활동하였다. 아이야의 다양한 전문 예술인들과 함께 연희와 국악, 한국무용을 베이스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그 중 「수상한 외갓집」은 2020년 <아시테지_겨울축제>에 선정되어 연극상 후보에 올랐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0년에는 <2020 찾아가는 문화나들이_방구석 1열 콘서트>에 춤추는 판소리 「그때여 놀보가」가 선정, 남양주 시청 유투브 채널의 공연 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 언택트 시대 온라인 생중계를 통한 대중과의 만남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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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인 안무·연출의 'Sibyl : 시빌'

안무가 최자인은 언제나 새로운 시도와 작업을 통해 융복합 춤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전통없는 현재는 없다’라는 본인의 신념을 바탕으로 창의적, 창발적, 창조적 작품을 선보이며 전통와 컨템포러리 창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며, 동시대의 사회문제를 소재로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한 지속적인 개발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사)한국무용연구회 신인안무가전 안무가상 수상(2004)과 (사)한국무용협회 강릉예총 청년예술가상을 수상(2004) 했으며, 주요안무작으로 「나무비린내(2004)」 「목어(2008)」 「섬(2016)」 「넋전아리아(2017)」 「그때여 놀보가???(2018)」 「소녀, 그 상상의 가능성(2018)」 「유쾌한 판(2018)」 「달의 사막(2018)」 「안녕, 안녕, 안녕(2019)」 「수상한 외갓집 (2020)」 「어디로 갈래?(2020)」 외 등이 있다.


글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사진 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