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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세련, 맑고 투명해지는 '마음챙김'의 시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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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세련, 맑고 투명해지는 '마음챙김'의 시적 풍경

이시영 '바람이 불면'과 전기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이시영의 '바람이 불면'이란 시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첫인상을 말하자면 이 암울한 시대에서 독재(유신 시절) 타도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조심스럽게 쟁취하려는 열띤 한 청년이 시의 화자로 나왔다가 “날이 저문”에 이르러 퇴근길에 거나하게 한잔 꺾고 취해서 “붉은 얼굴로 나서고 싶”은 갈망하는 소시민적 “슬픔”이 그 진심을 발휘한다. 그렇다. 시에서 바람이란 자연이 주는 바람[風]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으로 살면서 꿈꾸고 희망하는 바람(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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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 이시영

날이 저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한잔 해야지

붉은 얼굴로 나서고 싶다

슬픔은 아직 우리들의 것

바람을 피하면 또 바람

모래를 퍼내면 또 모래

앞이 막히면 또 한잔 해야지

타는 눈으로 나아가고 싶다

목마른 가슴은 아직 우리들의 것

어둠이 내리면 어둠으로 맞서고

노여울 때는 하늘 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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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19세기,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하염없이 보고픈 시를 만났다. 시가 저절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말이다. 목마른 갈증으로 닿는 갈필(渴筆)의 대표작 고람 전기의 <계산포무도>가 되어 시의도(詩意圖)로 불쑥 와서 내게로 안기더니, 그 다음엔 유춘 이인문의 <소년행락>에 나오는 말 탄 젊은이가 되어서 내달린다.

이인문이 그린 그림 속 인물처럼 한 잔 하고자 복사꽃과 버드나무가 물오른 어느 봄날로 지금 나를 초대한다. 그런 이 시간은 한마디로 멋지다. 돌다리를 건너고 술집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말 탄 나! 그런 내가 보인다. 무릇 상상된다. 그림 속에 녹아드는 시를 줄 따라가 가만히 튕기자니, 바람이 분다. 손에 만져진다. 이윽고 머잖아 내가 사랑한 그녀가 문밖으로 나와서는 배시시 웃는다. 예쁜 모습이다. 나를 곧 환대해 줄 듯하다.

앞에 시는 이시영(李時英, 1949~ ) 시인이 나이 서른 즈음, 요컨대 한창 때에 발표했다. 그의 첫 번째 시집 <만월>(창비, 1976년)이 그 출처이다. 시적 풍경을 논하자. 말하자면 ‘세련(洗鍊)’이 돋보인다. 적격이다. 어울린다. ‘세련’에 대해 한문학 대가 안대회 교수는 책에서 설명한 바 있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시학용어로서 세련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세(洗)’는 씻는다는 뜻이므로 깨끗하게 씻어서 맑고 투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을 말하고, ‘연(鍊)’은 단련(鍛鍊)한다는 뜻으로 작품을 거듭하여 조탁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세련은 작품을 거칠고 미숙한 상태로 내놓지 않고 거듭 다듬고 고쳐서 미끈하게 잘 만드는 것을 말한다. (안대회 <궁극의 시학>,197쪽 참조)

이시영 시를 옛 그림, 즉 시의도로 보자. 그러자면 필자는 <계산포무도>와 만나는 그림여행을 통해서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이 가득 느껴진다. 이름 모를 강가에 아무렇게나 수묵으로 붓질한 초가집이 주막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이 그림은 참 맑다. 깨끗하니 텅 빈 세련미가 충만하다. 화가로서 전기가 스물다섯 나이에 그렸다고 전해진다.

정지원 작가의 <계산포무도>에 대한 설명을 보자. 해설은 이렇다. 다음이 그것이다.

시·서·화에 모두 재능이 있었던 전기는 고요하고 단정한 성품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도 맑고 깨끗하다. <계산포무도>는 흔히 전기 그림 양식의 절정이라고 말한다. 강바람에 휘청이며 나무가 흔들린다. 갈필은 물기가 없이 까칠하고 메마른 느낌으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끝이 갈라진 독필로 무섭게 빠른 속도감을 연출해내는 작품은 전기의 천재성을 증명한다. (중략) 이 스산하고 바람찬 세상에서 끝없이 흔들리다가 사라질지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이 그림 앞에 서면 옷자락에서 차가운 바람 냄새가 난다. (정지원 <내 영혼의 그림여행>, 237쪽 참조)

이시영의 <바람이 불면>이란 시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첫인상을 말하자면 이 암울한 시대에서 독재(유신 시절) 타도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조심스럽게 쟁취하려는 열띤 한 청년이 시의 화자로 나왔다가 “날이 저문”에 이르러 퇴근길에 거나하게 한잔 꺾고 취해서 “붉은 얼굴로 나서고 싶”은 갈망하는 소시민적 “슬픔”이 그 진심을 발휘한다.

그렇다. 시에서 바람이란 자연이 주는 바람[風]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으로 살면서 꿈꾸고 희망하는 바람(願)이 되어 행간은 읽힌다. 따라서 구속이 아닌, 자유가 빚은 바람이 불어오길 소원하는 소시민으로서 시의 화자는 속내, 예컨대 자기 의지를 언뜻 “바람이 불면 한잔 해야지”로 감추다가도 끝내는 “어둠이 내리면 어둠으로 맞서고/ 노여울 때는 하늘 보고 걷”는 것을 중단하지 않고자 스스로 다짐한다. 이러한 화자의 다짐은 새벽이 오길 바라는 희망·사랑·의지로 나타나서 실행으로 옮겨진다. 끝끝내 나의 현실이 된다.

정지원은 <계산포무도>라는 그림을 볼 때마다 자꾸 백석의 시가 겹쳐서 떠오른다고 했지만 나는 이시영의 시가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론, 필자처럼 독자 또한 똑 같은 그림을 두고서도 다른 시가 연상될 수 있을 테다.

유명한 한시의 이미지를 시각화한 그림을 두고서 우리는 흔히 ‘시의도’로 분류한다. ‘시의도’에는 으레 해당 시의 한 구절 시구가 적히기도 그림과 함께 읽는 맛을 더해주는데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 <소년행락>에는 그게 생략되었고 아호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만이 낙관과 더불어 오른쪽 상단에 조그맣게 보일 뿐이다. 전기(田琪, 1825~1854)의 <계산포무도>는 정황상 문인화로 여겨진다. ‘시의도’로 보기엔 애매하다. 하지만 이시영의 시와 그림이 만나면 필자는 시의도가 된다고 감히 주장코자 한다. 다음에 나오는 <소년행락>이란 옛 그림을 함께 보자. 이것은 시의도(詩意圖)가 확실하다.

화가의 그림이 된 옛 한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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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 ‘소년행락(少年行樂)’, 19세기,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당시(唐詩).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백의 한시 악부체 <소년행>이 화가 이인문의 그림 속으로 고스란히 입장했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백의 시를 우리가 살필 필요가 있다. 다음은 시 원문이다. 그러니까 시의도의 정체이다.

少年行 / 李白

五陵年少金市東 (오릉연소금시동)
銀鞍白馬度春風 (은안백마도춘풍)
洛花踏盡遊何處 (낙화답진유하처)
笑入胡姬醉肆中 (소입호희주사중)

오릉의 젊은이 서시 동쪽에서
은빛 안장 얹은 흰 말 타고 봄바람에 달려가네
떨어지는 꽃잎들 다 밟고 어디로 놀러 나가는가
웃음이 묻어나는 예쁜 여인이 기다리는 술집을 찾는다 하네


오릉(五陵)은 당나라 장안을 가리킨다. 다섯 황제의 능이 거기에 있어서 ‘오릉’이라고 일컫는다. 금시(金市)는 서쪽 시장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서시’로 해석하면 된다. 호희(胡姬)란 오랑캐 여인이란 뜻인데, 이방인이자 서양인으로 미모의 여인을 의미한다. 술집 여자로 가무(歌舞)에 뛰어났다. 술집을 일러, 당나라 때도 그렇고 조선에서도 이른바 ‘주사(酒肆)’라고 칭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소(年少)’에 대한 해석인데, 여기서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젊은이’로 보는 것이 맞다. 이를테면 술집을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나이의 연령, 오늘날로 보자면 2030세대로 봄이 타당하다.

18세기 조선. 조선의 화가들은 너나없이 유행하는 시를 읊고 암송하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김홍도와 동갑내기 친구 이인문은 이백의 <소년행>을 시의도로 그린 바 있다. 이인문은 은빛 안장과 흰 말을 김홍도와 차별하기 위해서 갈색 빛깔 말로 채색했다. 백마(白馬)가 아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같은 제목의 김홍도 작품에는 관복과 관모를 갖추고 퇴근길에 술을 한잔 해야지, 하는 중년 남자가 느릿느릿 보인다면 이인문 그림에는 강을 건너고자 다리를 지나치는 멋진 옷차림의 젊은이가 혈기방장(血氣方壯)한 모습으로 속도감이 높게 등장하는 것이 다른 차이점이다. 서로 구분되는 한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홍도의 그림에는 어쩐지 살랑살랑 미풍이 가볍게 부는 듯하고, 이인문의 작품에는 말 탄 사내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세찬 봄바람이 꽃잎을 잔뜩 바닥에 어지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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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소년행락(少年行樂)’, 19세기,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질주하듯 날아가는 갈색의 말 탄 남자도 그렇고, 천천히 걷는 흰 말 탄 남자도 최종 목적지는 과연 어느 곳일까? 보나마나 술집, 아니면 또 어디겠는가?

지금 저 그림 속 사내의 가슴에는 봄바람이 가득 찬 것이다. 확실히 이인문의 그림에는 강한 바람이 분다. 이에 반해 김홍도의 작품에서 바람은 겨우 미풍(微風) 수준이다. 녹색의 버드나무(柳)를 자세히 보자. 그러면 이인문은 만류(挽留)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호기를 보이고, 김홍도는 집으로 갈까, 술집으로 향할까를 두고 선택 장애를 겪는 듯하다. 그렇다. 갈색 말 탄 남자는 총각으로 보인다. 반면에 흰 말 탄 남자는 유부남처럼 착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남자들은 한결같이 “한잔 해야지”하는 일념(一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김홍도 그림에는 화제시가 아호인 단원(檀園) 옆으로 다섯 글자로 보인다. 그러니까 오언(春日路傍情)은 ‘봄날 길가 옆에서 정취’라는 뜻이다. 이백·두보·왕유에는 훨씬 못 미치는 당나라 시인 최국보의 <소년행>이란 시를 인용해 적은 것만 봐도 그림 수준은 이인문과 김홍도가 쌍벽을 다퉜다고 한다면 시를 읽는 공부에선 김홍도 내공이 이인문에 비해서 윗길인 것은 틀림없다. 부정할 수 없다. 역사적 진실로 판단되고 수용된다.

끝없는 그리움, 그 바람이 가까이에 분다

어쨌거나 바람은 분다. 바람은 외부로부터 자연스레 오기도 하지만 내 안에서부터 의지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특히 청춘남녀 사이에서 훅 끼치는 바람은 쉽게 멈추는 법이 없다. 그것을 옛사람들은 ‘끝없는 그리움(長相思)’이라고 표현했다. 바람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가 있다. ‘결혼(結婚)’이 그것이다. 이상하게도 연애 중에는 좀처럼 멈출 줄 몰랐던 사랑의 바람은 결혼을 한 어느 날부터 불어오거나 닥치지 않는다.

여기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를 한 편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이 그 전문이다. 서울대학교 김학주 교수의 번역을 그대로 옮겼다. 이 점을 참고하시라.

끝없는 그리움 / 백거이

구월달 가을바람 일 때면

달빛 차갑고 된서리 내리는데,

님 그리움에 가을밤은 길기만 해서

하루 밤에도 혼백은 수없이 날아오르네.

한 봄에 봄바람 불어와

풀 싹트고 꽃 봉우리 필 때면,

님 그리움에 봄날은 더디기만 해서

하루 밤에도 창자가 수없이 뒤틀리네.

나는 낙수(洛水) 다리 북쪽에 살고

님은 낙수 다리 남쪽에 살았는데,

열다섯 살부터 사귀기 시작하여

지금 나이 스물셋이라네.

마치 새삼 풀처럼

소나무 곁에 자라났지만

덩굴 짧은데 가지는 높이 있어

감고 올라가지를 못한다네.

남들이 말하기를 사람에게 소원 있을 때

소원 지극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데,

내 소원은 님과 비견수 되어

언제나 어깨 나란히 하고 걸어 다니거나,

님과 함께 깊은 산의 나무가 되어

가지마다 서로 연이어져 살아가고 싶은 거라네.


청춘남녀가 연애할 때의 그 절절함과 애틋함의 정을 노래한 시이다. “열다섯 살부터 사귀기 시작하여/지금 나이 스물셋”인데도 화자는 애인이 그립다고 절규한다. 이 뜨거움은 결혼하지 않고 살림을 합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기에 바람이 계속 멈추지 않고 부는 까닭이기도 하다.

시의 화자는 자신을 풀(乙木)로 비유했다. 대신에 자기가 상대하는 연인을 두고는 소나무(甲木)로 은유함이 참 인상적이다. 이것은 명리학(命理學)에서 강조하는 궁합(宮合)을 은근히 강조함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이런 시구, “남들이 말하기를 사람에게 소원 있을 때/ 소원 지극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人言人有願, 願至天必成)”라는 문장은 노랫말처럼 쉽고도 절묘하다. 말 그대로 꿈을 현실로 바꾸거나 이뤄질 것 같은 기대감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여기서 바람은 자연(風)에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은 의지(願)에 가깝다. 의지가 멈추는 시간은 반드시 오는데, 나는 그것을 ‘결혼 후’로 고민한다.

백거이 시에서 화자는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간에 한창 연애 중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만약에 결혼에 이른다면 저런 아프고 슬프고도 끝없는 그리움이 충만한 사랑의 시가 노래되거나 탄생할 수는 없을 테다.

아무튼 이시영의 시는 옛 그림 속으로 쉽게 들어간다. 그림을 책상에 놓고 시를 읽다가 무료해질 무렵엔 대중가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나는 꺼내든다. 노랫말이 시적으로 그려진다.

바람이 분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향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이 노래를 계속 듣다가 보면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호주 태생의 영국 화가 마리안 스토크스(Marianne Stokes, 1855~1927)가 그렸다는 <지나가는 기차>(1890년 作)가 그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빨간 망토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향기를 나는 곁에서 맡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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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스토크스 ‘지나가는 기차’,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오른 손에 낫을 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왼손은 갈대 뭉치를 묶음으로 들고 있는 모습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광경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망연자실 옛 추억을 더듬는다. 베어야 할 잡초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꽃밭이 보일 듯하다. 기차가 뱉어 낸 뿌연 연기에 점차 가려지는 꽃들을 보면서 저 여자가 나는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를 꼭 부를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기차가 방금 지나갔다. 잡을 수 없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만 한다. 이것이 내가 꽃밭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다.

끝없는 그리움, 그것이 바람으로 불어오든, 후회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든 당신에게 시가 있다. 좋은 그림이 있다. 듣고 싶어지는 노래가 곁에 있다. “나만 혼자”라는 생각일랑 더 이상 하지 말자. 그런 내 생각이 나를 가두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자꾸만 구속을 하려고 덤벼든다. 싸우지 말자. 그가 그리워지는 가을이 오면 이듬해 봄이 오고, 바람이 다시 불어올 것을 그냥 기대하자. 이 또한 나쁘지만 않을 테다.

◆ 참고문헌

이시영 <만월>, 창비, 1976.

류근·진혜원 엮음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해냄, 2021.

안대회 <궁극의 시학>, 문학동네, 2013.

정지원 <내 영혼의 그림여행>, 한겨레출판, 2008.

김학주 <당시선>, 명문당, 2011.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 아트북스, 2008.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