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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비가 없으면 무지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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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비가 없으면 무지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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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죽마고우가 고향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사진으로 찍어 SNS로 보내왔다. 소나기가 퍼붓고 간 뒤에 잠시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은 것도 기특하고, 그 아름다운 무지개를 혼자만 보기 아깝다며 보내준 정성 또한 고맙기 그지없다. 국지성 호우로 곳곳에 물난리를 일으키는 사나운 비도 때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무지개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친구가 보내준 무지개 사진을 보며 'no rain, no rainbow'라는 외국 속담을 떠올렸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름다운 무지개도 볼 수 없다는 말을 곱씹으며 비록 코로나로 지쳐가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조심스러운 요즘,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숲길을 걷거나 천변을 산책하며 바쁘게 사느라 놓치고 살았던 자연의 변화를 읽는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너무나 익숙하여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들이 새롭게 말을 걸어온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황급히 숲 그늘로 뛰어들 땐 마냥 초록 일색으로만 보이던 나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저마다 다른 모양과 크기의 잎과 수피를 지니고 있고 이파리의 초록도 농담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독 꽃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나무들의 이파리나 수피를 살피기보다는 꽃에 먼저 눈길이 가닿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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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로변 화단에서 많이 눈에 띄는 꽃은 나무수국이다. 탐스런 흰 꽃송이를 가지 끝에 내어단 나무수국, 자잘한 꽃 주위를 헛꽃으로 장식한 보랏빛 산수국도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런가 하면 담장엔 등황색의 능소화가 눈을 부시게 하고 키가 껑충한 점박이 나리꽃도 한창이다. 그렇게 꽃들과 눈 맞춤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휴대폰엔 꽃 사진들로 넘쳐난다.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러워도 날마다 꽃들은 피고지고, 또 새로운 꽃들이 세상을 수놓아간다. 문밖만 나서면 마주치는 나무와 풀, 그리고 그들이 피워낸 꽃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비 온 뒤의 바람이 좋아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달리다가 크고 화려한 부용화 군락을 만났다. 부용화는 북아메리카의 동부지방이 원산지인 아욱과에 속하는 낙엽반관목으로 언뜻 보면 무궁화와 흡사한데 꽃이 훨씬 크다. 무궁화를 닮은 꽃 중에는 하와이무궁화라고 하는 히비스커스와 부용화, 그리고 노란 무궁화로 불리는 황근꽃이 있다. 그중에도 부용화는 예로부터 미인을 상징할 정도로 꽃이 크고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아서 외국에서는 원예종으로 개량하여 종류도 다양한 편이다. 부용화는 한번 심어놓으면 매년 꽃대가 올라와 7월초부터 8월말까지 2달가량 빨강, 분홍, 하양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가로변의 꽃으로 제격이다. 이 천변의 부용화 꽃밭도 구청에서 시민들을 위해 조성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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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지나간 뒤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부용화의 자태는 실로 매혹적이다. 그래서일까? 엣 기생들의 이름 중에도 부용이란 이름이 눈에 띈다. 한동안 부용꽃밭을 거닐며 꽃의 아름다움을 참했다. 부용화와 흡사한 무궁화(無窮花)를 직역하면 '끝이 없는 꽃'이 된다. 실제로 무궁화는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꽃을 피운다. 때문에 사람들은 무궁화가 오래 핀다고 생각하지만 배롱나무가 그렇듯이 무궁화도, 부용화도 한 번 피어 오래 가는 것이 아니라 피었던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을 계속 피워가며 오랜 날을 꽃을 달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고난 뒤엔 반드시 즐거움이 있게 마련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풀과 나무, 꽃들을 눈여겨보며 생명의 신비와 존재의 소중함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름다운 꽃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