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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과 강세황 ‘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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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과 강세황 ‘산수’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마음에 부처를 심어야 하듯이, 못(池)은 연을 피워야만 비로소 연못의 모습이 되어 눈에 보인다. 눈으로 보이는 육안(肉眼)은 그래서 한계가 있다. 마음에도 보이는 심안(心眼)이 살아가면서 필요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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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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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 ‘산수’. 18세기, 비단에 수묵, 서울대학교박물관.


시는 나희덕(羅喜德, 1966년) 시집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년) 첫 장에 보인다. 따라서 서시가 된 셈이고, 또 표제시가 되기도 하였다.

회산 백련지, 수원 방화수류정엔 연못이 있다

영화배우 윤여정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도로명 주소가 있다. 예컨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392번길 44-6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화홍문(華虹門)과 더불어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가까운 정자를 말함이다. 정자에 앉으면 사계(四季)가 지나간다. 아름답다. 봄이 오면 꽃들이 찾아들고 연못의 가장자리를 차지한 수양버들은 산책자에게 길을 내주면서 인사한다. 남녀노소 모두 반겨준다.

올해 초여름이었다. 이미 겨울과 봄에 여러 차례 오고는 여름엔 처음이었던 친구가 토끼눈이 되어서는 이렇게 말했다. “오마나, 여기에도 연꽃이 있었네”라며 몹시 반색했더랬다. 그러면서 “연꽃이, 자기를 향하여 살랑살랑 손바닥을 보이면서 흔드는 것이 보이느냐?”라고 흥에 겨워 내게 불쑥 반문했을 테다.

그렇다. 전남 무안 회산 백련지(白蓮池)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우리들 사는 곳, 주변에서 얼마든 내가 맘만 먹는다면, 연꽃 구경은 여름이면 꿈이 아닌 현실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시의 화자는 몇 번이나 백련지를 찾아간 것일까. ‘처음엔’ ‘다음엔’ ‘그 다음엔’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부지기수로 연못을 방문했을 테다. ‘이제는’라는 구절이 심상치 않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계절이 초겨울로 닥침을 눈치 채게 된다.

시에서 연잎(荷)을 ‘손바닥’으로 보는 상상력이 기막히다. 더욱이 딱딱하게 말라가고 굳어가는 푸른 줄기를 ‘창(槍)’으로 비유함은 뛰어나서 절묘하다. 게다가 연못에서 수많은 연잎들이 가라앉은 자연스런 과정을 일러 ‘거대한 폐선’의 침몰로 스케치하는 시적 인식, 그 낯설게 하기는 순간적으로 시 읽는 기쁨을 음미하게 선사한다.

이러한 시 읽기는 당장이라도 손을 내던지며 연못에 달려들어 폐선을 건져야 할 것 같은 안간힘의 감정을 독자에게 이입하도록 부추기며 종용한다. 이렇듯 연잎에 대한 변주가 실은 놀랍고 신선하다. 다음의 시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시의 2연이다. 자세히 보자면 더 이상 연잎은 육안(肉眼)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안(心眼)으로 다가서야 비로소 보인다. 해서 시인은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안부를 물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연(蓮)은 시종일관 묵묵부답한다. 그 답답함이 결국에는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며 하소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애오라지 상상력에 기대어, 즉 심안을 동원하여 연(蓮)의 상태를 살펴야만 한다. 그렇기에 “발밑에 떨어진 밥알을” 줍는 일로 바쁜 것으로 화자의 상상은 가닿는다. 따라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아 존재가 사라진 것으로, ‘사라진 손바닥’으로 화자는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가 시로 치닫는 절정의 부분은 바로 3연에 있다. 이를테면 “백 년쯤 지나 다시 오”겠다는 식의 화자의 굳은 다짐은 그래서 비장미(悲壯美)가 전해진다. 그것은 한 생애와의 이별을 선언하기도 한다. 한 생애의 이별이란 곧 육신의 소멸이다. 다시 환생이 품어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백 년쯤’의 시간이 필요했을 테다. 그리하여 화자는 인간이 아닌 나비로 윤회를 꿈꾸거나, 아니면 흰 연꽃 위를 맴도는 잠자리가 되어서라도 “그보다 일찍 오면”하고 다시 백련지에 자신이 먼저 도착하길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망은 불투명한 약속이기도 하다. 시인이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에 해당하는 구절,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 생애와의 작별을 마주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사라진 손바닥’으로 연잎을 무릇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옛 사람들은 연꽃을 두고서 점잖게 ‘연하(蓮荷)’라고 적었다. ‘연(蓮)’은 ‘꽃이 핀 연꽃’을 의미한다. 반면에 ‘하(荷)’는 ‘꽃이 지고, 없는 푸른 연잎’을 지칭한다. 그런 점에서 나희덕 시인이 회산 백련지에서 관찰하는 연(蓮)의 정체는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다가 꽃이 지면 푸른 연잎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태의 ‘하(荷)’ 까지, 요컨대 진흙을 딛고 물 위에서 피우는 한 생명을 의인화로 다루면서 마주한다.

그러니까 화가의 손이 붓이 되는 것처럼 시인의 눈은 붓이 되어 상상력과 이미지의 그림으로 활자화가 된다. 따라서 ‘흰 연꽃’, ‘빈 손바닥만 푸름(연잎)’, ‘연밥(연꽃의 씨)’ ‘수많은 槍’(연꽃 핀 연못)의 수순으로 확장성은 시선이 계절의 변화 연결에서 자연스럽다. 자연(自然)하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서, 봄이 지나고 여름(전성기)에서 가을철(쇠퇴기), 겨울철을 잇는 한 생애와 계절 변화의 감각을 예민하도록 반응하고 좇아가게 우리를 안내한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두 줄의 시는 종교적인 메시지가 다분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이란 욕망을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연달아 등장하는 ‘그’는 연잎의 일부 모습(연밥, 빈 손, 흰 꽃)이나 궁극에는 연못을 말함이다. ‘흰 연꽃’은 무엇인가. 그것이 실은 부처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푸른 손바닥이 눈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당황하기에 이른다. ‘못(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연(蓮)’이 다시 흰 꽃을 피어내는 ‘연못’인 것을 사계(四季)를 다 겪지 않고서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저 손바닥만 못에 감춰뒀을 뿐인데도.

그렇다. 마음에 부처를 심어야 하듯이, 하여튼 못은 연을 피워야만 비로소 연못의 모습이 되어 눈에 보인다. 눈으로 보이는 육안은 그래서 한계가 있다. 마음에도 보이는 심안이 살아가면서 필요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기척 없는 빈 정자, 사라지는 손바닥

앞의 수묵화 <산수>는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그린 것이다. 참고로 수묵화란 먹만 가지고서 완성한 그림으로 문인들이 그린 그림들을 주로 일컫는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은 마음속의 이상향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산수화(山水畵)를 즐겨 그렸다. 미술사학자 윤철규 교수는, “산수화는 단순히 옛 그림의 한 종류로만 볼 수 없어, 그 속에는 옛 사람들의 산수(山水), 즉 자연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깊이 담겨 있다”는 설명까지 붙이었다.

신간 <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아트북스, 2021년)에 주목할 만한 글이 얼핏 보인다. 다음이 그것이다.

1766년 안산에 머물던 강세황은 54년의 인생을 정리하여 <표옹자지>라는 일종의 자서전을 지었다. (중략) 내 성은 강이고 본관은 진주, 이름은 세황이며 자는 광지이다. 아버지는 대제학 문안공 현이며 할아버지는 설봉 문정공 백년이다. 증조는 죽창 첨지중추 주이며 고려시대 은열공 민첨의 후손이다. (중략) 나는 대대로 벼슬한 집안의 후손으로 운명과 시대가 어그러져 늦도록 출세하지 못하고 시골에 물러앉아 시골 늙은이들과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으며 만년에는 더더욱 서울과 소식을 끊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같은 책, 58쪽 참조)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강세황의 <산수>는 대략 늦은 나이에 출사하기 이전의 시기. 즉 안산 시절에 그린 것으로 추정이 된다. 관직운이 없었던 강세황은 61세 때, 영조에 의해서 벼슬길에 처음 올랐기 때문이다. 벼슬 이전에는 처가의 도움을 받아서 생계를 겨우겨우 해결했다. 물질적으로 가난했고 궁색했다. 하지만 강세황은 일찍이 시·서·화 삼절(三絶)로 정평이 나서 자긍심과 자존감이 높고 대단했다.

미술평론가 손철주는 강세황의 <산수>를 두고서 “저 텅 빈 정자에 화가의 심사가 있을 테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아울러 강세황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꺾은 절벽 가운데로 나무 한 그루가 튀어나왔다. 위가 아니라 옆으로 자란 소나무다. 바위와 흙을 그러잡는 뿌리의 힘이 모지락스러운 소나무는 사지가 뒤틀려도 문실문실 잘만 큰다. 자란 꼴이 반드럽지 못해도 소나무는 신령하다. (중략) 소나무가 이 그림의 주연일까. (중략) 민둥산 아래 강물이 흐르는데, 정자 안에 사람 기척이라곤 뵈지 않는다. 차려진 그대로의 차림새, 선바람으로 맞는 자연풍광이다. (중략) 그린 이는 문인화가이자 비평가인 강세황이다. 어린 나이에 글 잘 쓰고 시 잘 지어 신동으로 부러움을 산 그는 자부심이 우뚝했다. 자(字)가 ‘광지(光之)’인데, 글씨의 왕희지, 그림의 고개지, 시의 두목지, 문장의 한퇴지 등의 이름을 본받아 ‘지(之)’라는 돌림자가 썩 어울린다. 일흔이 넘어 쓴 그의 시에 ‘푸르른 소나무는 늙지 않고, 학과 사슴은 나란히 운다’는 구절이 보인다. 높아서 외로운 존재가 무릇 그러하리라. (손철주 <사람 보는 눈>, 214~216쪽 참조)

민둥산 아래 강물. 소나무 가지 끝 빈 정자와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거무튀튀한 점들이 군집을 이루면서 한데 엉켜서 있다. 강가에서 연(蓮)의 생태가 그러하다. 하여간 산에도 강에도 인기척이 없는 저 그림을 도대체 강세황은 왜 그려낸 것일까. 손철주의 지적처럼, 화가의 심사를 투영하고 반영하고 싶어서가 추측컨대 맞으리라.

여기서 ‘연(蓮)’도 나희덕의 시처럼 ‘손바닥’으로 보인다. 그런데 차원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정자에 사람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바닥은 곧 강물의 바닥으로 폐선처럼 가라앉을 테다. 그러니 손바닥은 과거로 ‘사라진 영광, 칭찬, 아부’ 등을 은유함이다. 그러매 아예 연꽃 구경이란 것이 성사되지 않는다. 따라서 강세황의 심사란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와 같다. 옆으로 뒤틀리고 배배 꼬인 상태다.

강세황은 만년에 관료로서 활약하며 동시에 묵죽화로 주위의 요구에 수응하며 높은 명성을 구가했다. 이 시기 그에 관한 회화 담론의 대다수는 묵죽화와 관련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의 학계에서 강세황이 두각을 보였던 묵죽화를 손꼽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삼절로서 일컬어졌던 강세황의 이름에는 ‘18세기 예원의 총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총수’라는 표현에서 당대 문예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안산에 이주할 무렵부터 강세황에게는 시서화 삼절이라는 명성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강세황은 명성에 상응하는 수많은 서화 요청에 응해야 했다. 그러나 가문의 정치적 재기를 이루어야 하는 사대부의 입장에서 보면 회화로서 얻은 이름은 명예로운 것이 아니었다. 유교를 사회 운영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사대부가 화가로서 인정받으며 동시에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강세황은 20년 동안 회화 수응을 멈추고 절필을 단행하며 자신의 명성을 명예롭게 전환시켰다. 동시에 절필을 마친 그는 묵죽화로서 사회적인 그림 요청에 적극 대응하고자 했다. (고연희 엮음 <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 84~90쪽 참조)

이경화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이 쓴 책 속의 글 일부이다. 이를 정리하자면, 18세기 예원의 총수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강세황의 <산수>라는 작품에 인기척이 없는 까닭은 다름 아닌 사대부로서 벼슬길에 대한 갈망에 있다는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한마디로 ‘수많은 서화 요청’을 뿌리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그림이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한 <산수>에 드러난다. 따라서 열렬히 지지하고 환영했던 손바닥을 올린 예원과의 결별이고 수묵화 산수도 절필일 테다. 대신에 사대부답게 묵죽화로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파악이 된다.

출세가 좋은 까닭, 가야금 소리에 연꽃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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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청금상련(聽琴賞蓮)’. 18세기, 종이에 채색, 간송미술관.


사대부 화가와 달리 직업이 화가였던 궁중 화원은 종이에 먹물만 이용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채색을 사용했다. 18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 ? )의 그림을 보자면 특히 채색이 두드러지고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또한 여인들이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그림마다 애틋함과 정밀함이 그 특징이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의 그림 <청금상련(聽琴賞蓮)>을 보자. 양반 가옥 사랑채 마당으로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번진다. 두 기생의 시중을 받고 있는 벼슬아치는 오늘의 귀빈일 테다. 귀빈은 순식간에 남자 셋, 여자 셋의 파트너 균형을 한방에 깰 수 있는 권력자, 벼슬아치일 테다. 체면을 차리는 걸까, 품새가 점잖다. 반면에 권력자를 따라서 온 일행으로 보이는 선비는 갓을 벗고 기생을 무릎에 앉히고 이른바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다. 졸지에 자기 짝을 잃고 만 서 있는 선비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쯧쯧 찬다. 한쪽 연못에서는 푸른 손바닥이 붉은 연꽃과 연밥을 보이면서 이들의 놀이에 물끄러미 동참한다. 흥겨운 그림이다.

나는 자줏빛 띠를 가슴에 매고 호박을 이어 갓끈을 아래로 늘어뜨린 선비가 이 모임의 주최자이지 싶다. 뭔가 꿍꿍이가 있고 청탁할 일이 있어 권력자를 초대하고 기생을 불러 모은 것이리라. 그런데 권력자의 등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일행에게 고정되어 있다. 아마도 자기 파트너를 가로챈 것이 못마땅한 것 같은 눈초리이다.

너른 연못 마당에 펼쳐진 돗자리가 눈에 찬다. 내가 요사이 저녁에 방화수류정에 가면 남녀가 돗자리와 용품 등을 가게에서 빌려서는 버드나무 그늘진 아래에 놓고 애정행각을 벌이면서 연꽃을 구경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신윤복의 <청금상련>이 보이는 것 같아서 자주 웃게 된다.

권력자의 유흥을 즐기는 모습을 지켜본 신윤복은 어쨌든 열 글자를 화면에 담았다. 그 내용이 이렇다.

座上客常滿 (좌상객상만)

樽中酒不空 (준중주불공)


무슨 뜻인가. “높은 자리에 앉으면 항상 만족스럽다/ (어디 그뿐인가) 술통엔 술이 비어지지 않는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림에서 지금 가야금을 뜯는 기생은 권력자와 힐끗힐끗 눈빛 교환을 주고받는다. 죽어라고 권력자만 쳐다보지만 ‘그’는 그녀에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는다. 이 점이 참 재밌다.

하물며 연못의 푸른 손바닥도 줄지어 권력자를 향해 아부하는 모습이니 이 그림을 그린 이, 신윤복의 솜씨가 보면 볼수록 참말로 신통방통하다. 출세해서 돈·권력·예쁜 여자, 이 세 가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남자, 정치인이 어디 있긴 있는가?

대통령 후보들이여, 당신들도 가는 세월 앞에서는 침몰하고 가라앉은 폐선이 됨을 잊지는 마시라. 백담사만 찾지 말고, 회산 백련지에도 가보시라. 수원에 오면, 꼭 방화수류정 야경을 구경하시라. 연꽃처럼 적당히 떨어져야 누가 향기로운 친구이고 또 상대 못할 적인지 알 것이다. 선거 때만 당신들은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그런데 막상 당선이 되면 왜 손바닥을 내리고 깊이 감추는가. 하긴 신윤복의 그림 속 남자들, 어느 누구도 손바닥을 보여주진 않았다.

연꽃은 여름이 오면 기꺼이 우리에게 손바닥을 흔들어준다. 그러니 외롭고 쓸쓸할 때, 혼자 조용히 연못 가까이 가만히 가볼 일이다.

◆ 참고문헌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사, 2004.

손철주 <사람 보는 눈>, 현암사, 2013.

윤철규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토토북, 2014.

고연희 엮음 <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 아트북스, 2021.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