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곳들
오늘의 주인공 지현미 대리(가명)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몇 안되는 제지회사 PG사(가칭)에서 인도네시아에 종이의 원료가 되는 펄프를 생산하기 위해 나무를 키워 우드칩을 생산하는 한국 회사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우의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GYBM) 인도네시아 1기에 몇 명 안되는 여성 중 한 명이다. 지난 2016년 6월 과정을 수료하고 자카르타에 있는 봉제 법인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의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여 명의 직원 중 10여 명이 한국인으로 지 대리는 총무와 구매업무를 맡고 있었다.
서울시 크기의 나무 바다를 만들려면…
숲의 바다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종해 묘목을 생산하는 것에서 출발을 한다. 나무의 종자를 심고 일정 수준까지 자라기 위한 묘목은 자연환경에 두질 않고 별도의 그린하우스에서 키운다. 한국에서 농촌에 가면 흔히 보는 비닐하우스이다. 1200㎡ 넓이로 축구장 절반 정도 면적에 2층 높이의 건물을 짓고 거기에 샌드위치 패널로 나무 종자묘판을 올려둘 테이블을 만든 후 묘판에 씨를 뿌리며 여러 가지 영양분을 비료로 준다.
일정기간 동안 온도와 습도 등을 자라기 최적의 여건으로 만들어 키운다음 이식(移植)한다. 이 때부터는 노지(露地)라는 자연환경에서 성장을 하기 때문에 그 시기가 중요하다. 그러자면 전 공정의 출발점은 제 시간에 파종을 하는 것이고, 그이전에 관련되는 시설재가 순조롭게 현장에 도착하면 준비된 숙련공들이 시간에 맞춰 설치하는 데 작업 숙련도나 체계적인 관리 감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무 바다가 아닌 위기 바다, 그리고 잔잔함
지 대리는 이 업무를 맡고 있다. 현지법인 본부가 있는 수라바야에서 먼저 자카르타의 재료 공급 회사와 구매 계약을 맺었다. 준비된 날짜에 맞춰 머라우케의 현장으로 출장을 갔다. 한 달여 기간 동안 실려온 자재를 풀어보니 엉망이었다. 300여 개 모두가 파손 상태였다. 큰 일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온통 제시간에 묘목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자재와 시간과 비용의 문제가 뒤엉퀴기 시작했다.
큰 고비를 넘기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담당자의 진가를 드러낸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세 가지 교훈이 정리됐다. 계약성의 중요성과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현지어 구사 능력이었다. 처음부터 계약서를 완벽하게 작성하고, 상당한 손실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차분히 공정을 따져 중요성과 긴급성으로 업무 우선 순위를 정해 거래처나 관계자와 하나하나 신속하게 실행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외국이라는사업장의 특성상 현지 직원들이나 기술자의 아이디어와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것을 감안하면 현지어를 제대로 구사할 뿐 아니라 평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믿음을 주고받는 것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노하우 중의 노하우가 됐다.
글로벌 비즈니스맨을 실감한 짜릿함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지 대리도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었다. 우는 2023년이면 회사가 조림 즉 숲을 조성해 심은 나무를 베어서 우드칩으로 생산이 가능한 시기인 '벌기령(伐期齡, final age of maturity, 성장한 나무를 벨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다. 이 사건의 배경이 된 나무는 아니지만 회사가 조림지의 첫 삽을 뜬 2016에서부터 7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해 기다린 첫 수확품을 생각하며 다른 일에 도전한다고 했다. 회사가 인도네시아에서 조림을 허가받은 전체 땅의 규모는 약 6만ha(헥타아르)로 서울시 크기만 하다.
지 대리가 있는 곳의 생소함과 그 거리감에도 마음이 찡했다. 참고자료를 찾다가 만나는 말들이 여성으로서 이런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게 더 아련하게 만든다. 인터넷에 있는 다른 분의 조림사업에 관한 글에 이 지역은 숲이 울창해지면 귀신이 나올 것 같아 현지인들도 조차도 현장에 들어가기를 두려워 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도전의 ㈜PG 회사와 지현미 대리의 행복과 행운을 기원한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