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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와 페르난도 보테로 ‘요아킴 장 애버바크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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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와 페르난도 보테로 ‘요아킴 장 애버바크와 가족’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며칠 뒤면, 곧 현충일이다. 유월 육일이 다가온다. 심보선의 를 나는 기억하면서 호국영령의 명복을 잠시라도 빌어볼 테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바친 분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을 기리기 위한 날, 현충일(顯忠日)의 한낮은 비단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이고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고 할지라도 그날만큼은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라고 잠시라도 십오 초의 시간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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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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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요아킴 장 애버바크와 가족’,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미국, 뉴욕, 수잔 에버바크.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개띠 시인이자 소설가 한강(韓江, 1970~ )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창비, 2007년)를 처음 완독했다. 이 책은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유명하다. 책을 덮고서 이튿날 아침, 노트북에 책속의 글들을 일부 옮겼다. 필사했다. 다음은 그 중 하나이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같은 책, 204쪽 참조)

그녀의 이름은 ‘인혜’라고 한다. 채식주의자 ‘영혜’의 언니다. 언니의 입장이 되면, 금세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되기도 하거니와 그 웃음의 결은 ‘슬픔’을 바탕으로 짠 표정임을 알아챌 수 있다.

“그래도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영혜와 달리, 언니로 엄마로 처형으로 딸로 복무해야 했던 그녀의 삶을 떠올렸다. 의식의 퓨즈가 나가는 편이 덜 고통스러운가, 의식의 퓨즈를 잇는 편이 덜 고통스러운가. 소설은 의식의 퓨즈가 서서히 끊어지는 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읽힐 수도 있지만, 의식의 퓨즈를 끊고 싶어도 이을 수밖에 없었던 이를 중심으로 지체된다고 읽힐 수도 있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얼마나 많은 담즙을 세계의 이면에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있는가.” (같은 책, 223쪽 참조)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허윤진(1980~ )의 말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란 인혜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렇듯 우리에게 다가온다. 얼비친다. 여기서 ‘우리’란 당최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어린시절부터, 그녀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알았으며, 성실은 천성과 같았다. 딸로서, 언니나 누나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가게를 꾸리는 생활인으로서, 하다못해 지하철에서 스치는 행인으로서까지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그 성실과 관성으로 그녀는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같은 책, 169~170)이라고 한강은 인혜의 캐릭터를 풀어서 쉽게 설명했던 바다.

잘 빠진 몸매보다는 잘난 마음이 먼저?

그림부터 살피자. 콜롬비아의 거장,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Angulo, 1932~ )의 <요아킴 장 애버파크와 가족>(1970년 作)을 처음 본 것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림을 이주은 작가의 <당신도, 그림처럼>(아트북스, 2009년)에서 보았다.

듬직한 몸집의 아버지가 왜소한 아버지보다 경제력 있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시절에 제작된 그림이다. 푸짐한 엄마는 날씬한 엄마보다 좀더 인자하고, 통통한 아이들은 비쩍 마른 아이들보다 덜 까탈스러울 것이라 생각하던 그 시절 말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이 그려진 1970년에는 아직 뚱뚱한 사람에 대한 인식이 그리 가혹하지 않을 때였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만 해도 배 나온 중년남자에게는 ‘사장님’이라는 칭호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중략)

간결체의 대명사로 불리는 소설가 헤밍웨이에게도 엄청 배곯던 시절이 있었다. 무명 시절 헤밍웨이의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그는 당시 유명 작가들이 모이던 파리의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서점에서 꿈을 키우며 문인들의 토론을 듣는 순수한 문학도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갑자기 눈빛을 번뜩이며 굶주린 승냥이로 돌변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주 능숙한 솜씨로 공원의 비둘기에게 접근해 먹이를 주는 척하며 단번에 목을 비틀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먹기 위해서였다. (같은 책, 102~103쪽 참조)

이주은이 소개하는 그림을 가만히 감상하고 글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하나하나 정독하던 나는, 또 다른 개띠 시인 심보선(沈甫宣, 1970~ )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는 시가 얼핏 제목부터 생각났다. 마치 헤밍웨이의 비둘기 목 비틀어 가방에 넣기, 그 찰나의 시간이 말하자면 <슬픔이 없는 십오 초>인 것처럼 온통 머리에 번지면서 마음에 느껴졌고 손으로 만져졌다.

심보선 시집의 해설도 한강 소설을 그랬던 것처럼 문학평론가 허윤진이 썼다. 다음은 그 일부이다. 여기에다 소개한다.

내가 가진 꿈의 퍼즐이 타인들이 잃어버린 꿈의 퍼즐 조각일 확률은 극히 미소하지만 시인은 그 확률에 자신을 걸고, 불가능성에 자신을 건다. (중략) 심보선의 시집은 그 자체로 슬픔을 저축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중략)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야 하는 공간은 “술집, 식당, 도서관, 학교” 등의 비속한 인간계이다. (중략) 그는 사랑을 했고, 사랑을 하고 있으며, 또 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개인을 신적 수준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특별한 행위이다. 관계 안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신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허윤진 해설, 148~158쪽 참조)

나는 1970년 후반,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내가 살았던 수원 연무동 동사무소 근처엔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처럼 한 부잣집이 있었다. 부잣집의 아저씨는 피아트 자가용을 타고 다녔으며 키가 크고 뚱뚱했으며 아줌마도 푸짐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슬하에 자식들은 2남 2녀로 모두 살이 쪄서 통통한 편이었다. 그랬다, 그림처럼. 그에 반해 이발소를 운영하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 탓에 왜소했다. 한마디로 비실비실 야윈 몸매였다. 외아들인 나도 작았고 깡말랐다. 내 밑의 넷, 여동생들도 볼품없긴 마찬가지였다. 그 때가 아마도 1977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림을 보자면 자꾸만 이웃에 살던 ‘안씨 아저씨네’ 그 집이 불쑥 생각이 나는 것이다.

안씨 아저씨네. 그 식구들은 사람됨이 다 좋았다. 주변에 베풀 줄을 알았으니까. 잘난 몸매를 가졌다고 해서 꼭 잘난 마음을 가지란 법은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뚱보인 사람이 뚱뚱하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 없다. 오히려 뚱뚱한데도 마음이 인색하고 왜소한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어쨌든 이주은 작가의 작품 설명을 마저 보자. 다음과 같다.

뚱뚱함을 혐오하고 여분의 살들을 저주하는 일은 분명 요즘 우리 시대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뚱뚱하기 때문에 스스로 볼품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자기 부정은 특히 사랑을 하는 데 극심한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넘치는 살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매력을 잃는 것이다. (이주은 <당신도, 그림처럼>, 104쪽 참조)

화가,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위하여! 붓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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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신 ‘황현 초상’, 20세기, 비단에 채색, 개인소장.

一毫不似便是他人 (일호불사편시타인)

그랬다.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린 조선 화가들의 자존심이란 “터럭 한 올이라도 그 사람을 닮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뜻에 매우 성실했다. 또한 그림을 실제와 아주 똑같이 그려내는 핍진(逼眞)에 아주 충실했다.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의 <황현 초상>도 그 중 하나이다.

황현이라는 이름은 우리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금방 “아! 하고 알아보실 겁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방되자 절명시 4수를 남긴 채 아편을 탄 술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이거든요. (중략) 이 초상화는 황현 선생이 살아 있을 때 직접 얼굴을 보면서 그린 게 아닙니다. (중략) 황현 선생이 돌아가신 이듬해인 1911년 5월, 채용신은 이 사진을 보고 <황현 초상>을 그려냈습니다. 손에 든 부채와 책은 그대로이지만 옷차림이 심의(유학자들이 입는 겉옷)와 정자관(유학자들이 집 안에서 쓰던 모자)으로 바뀌었습니다. (중략) 황현은 코와 턱은 물론 입술 아래와 구레나룻까지 털이 제법 풍성합니다. 색칠한 게 아니라 가는 붓을 써서 한 올 한 올 그려낸 겁니다. 털의 개수가 몇 올인지 하나하나 세어가며 그렸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지요. (중략) 눈을 보다가 혹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습니까? 왼쪽 눈동자는 가운데를 바라보지만 오른쪽 눈동자는 바깥쪽으로 몰려 있잖아요. 사팔눈, 혹은 사시라고도 하지요(눈동자가 바깥으로 몰린 외사시입니다). 사팔눈은 두 눈이 정렬되지 않고 서로 다른 지점을 바라보는 시력 장애입니다. (중략) 이렇듯 우리 초상화는 허물이나 흉조차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그려냈습니다. (최석조 <도화만발>, 160~167쪽 참조)

초상화를 보고 난 다음, 여기에다 더 내 생각을 보태자면, 심보선의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를 가지고서 황현 선생의 사후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안경 속에 눈은 좀처럼 슬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꾸지람을 쏟아내는 듯 째려봄에 가깝다. 이와 관련, 미술평론가 손철주의 설명은 이렇다.

1909년, 구례에서 칩거하던 매천(梅天) 황현(黃玹, 1855~1910)이 상경했다. 숨통이 할딱거리는 조선의 사직을 그는 눈으로, 귀로 확인했다. 그는 사진관을 찾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독사진을 찍었다. 챙 좁은 갓과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중략) 1911년, 화가 채용신은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골몰했다. (중략) 화가는 붓으로 황현의 혼백을 살렸다. 사진에 있던 갓과 두루마기는 드높은 정자관(程子冠)과 깃에 검은 천을 댄 심의로 바꿔 그렸다. 초시에 장원급체하고도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았던 황현의 유학자적 면모가 고친 차림새에서 도드라졌다.

안경 속에서 눈은 뚫어보지 않고 째려본다. 홍채 속의 반점까지 그려져 있다. (중략) 그의 유서에 결기가 푸르게 서렸다. ‘5백 년이나 선비를 길러온 나라에서, 국난을 당해 죽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원통치 않은가?’ 성글고 버석거리는 수염에서 강퍅함이, 긴 콧날과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 단호함이 엿보인다. 선비의 나약함을 다그치는 저 눈길, 그의 사시는 차라리 여기저기 다 보는 겹눈이다. (손철주 <사람 보는 눈-손철주의 그림 자랑>, 127~129쪽 참조)

너무 슬프면 눈물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채용신의 <황현 초상>이 무릇 보인다. 화가는 슬픔이 없는 십오 초의 느낌을 감상자에게 전달하고 황현의 혼백을 달래고자 정성껏 한 올 한 올 터럭까지 실제 인물과 닮도록 그렸을 테다.

며칠 뒤면, 곧 현충일이다. 유월 육일이 다가온다.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나는 기억하면서 호국영령의 명복을 잠시라도 빌어볼 테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바친 분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을 기리기 위한 날, 현충일(顯忠日)의 한낮은 비단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이고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고 할지라도 그날만큼은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라고 잠시라도 십오 초의 시간을 가지고서, 개인적으로 슬픔에 젖어볼 일이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이 시간을 빼고는 온종일 슬퍼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자꾸만 정치인들은 뉴스에서 15초 참배하는 것으로써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 같아 서글프다. 차라리, 9시 뉴스에서 그런 모습들 키 크고 배 불뚝 나온 검정빛 옷차림으로 제발! 안 보이길…. 그래서다. 그 날은, 뉴스 시간에 으레 TV 전원을 뽑고 싶다. 아울러 여행이나 웃고 떠드는 모임을 조금이라도 자제할 일이다.

◆ 참고문헌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2008.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007.

이주은 <당신도, 그림처럼>, 아트북스, 2009.

최석조 <도화만발>, 아트북스, 2019.

손철주 <사람 보는 눈-손철주의 그림 자랑>, 현암사, 2013.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