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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서정주 ‘무등無等을 보며’와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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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서정주 ‘무등無等을 보며’와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그 많은 과일 중에서 에밀 졸라는 하필이면 왜 사과 바구니를 선택했을까. 여기서 사과는 ‘감사(感謝)한 결과(結果)’의 줄임말 ‘사과(謝果)’로 메시지가 읽혀진다. 아는 그림이다. 하지만 몰랐던 이야기이다. 그 찐한 우정을 내가 처음 접하면서 낙서한 내용은 ‘감사의 결과’로써 보게 되는 ‘사과 그림’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을 때면 으레 사과 한 상자를 택배 선물로 명절마다 보냈을 테다. 신기하다. 그것을 저 서양의 어린 중학생도 알고 행동한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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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無等을 보며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져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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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La Montagne Sainte-Victoire)’,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미술관.


어느새 빨간 장미와 이팝나무의 흰 꽃, 아카시아가 활짝 핀 5월이 되었다. 문득 달력을 쳐다본다. 오산신협에 갔다가 챙긴 달력엔 어린이날(입하), 어버이날, 유권자의 날,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신협선구자 선종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부처님 오신 날, 세계인의 날, 부부의 날(소만), 바다의 날, 방재의 날이 들어 빼곡했다. 기왕불구(旣往不咎)라고 했다. 그러니 지나간 날은 그렇다고 치고 앞으로 올 날 중에 ‘부부의 날’(5월 21일)이 저게 언제부터 있었는가, 궁금증이 일었다. 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다음이 그것이다.

2003년 12월 18일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제출한 '부부의 날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청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결의되면서 2007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날짜는 해마다 5월 21일이다. 5월 21일에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부부의 날은 1995년 5월 21일 세계최초로 우리나라 경남 창원에서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기념일 제정운동이 전개되었다. 제정 목적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부부의 날은 핵가족시대의 가정의 핵심인 부부가 화목해야만 청소년문제·고령화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법정기념일이다. 공휴일은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부부의 날, 이것을 숫자로 옮기면 ‘0521’이 된다. 다시 이것을 한자로 옮겨 적었다. 소개한다. 사자성어로 ‘영오이일(榮吾以一)’이 되겠다. 뜻은 이렇다. “하나(一)가 됨으로서(以) 우리(吾) 가정은 화목한 번영(榮)을 추구할 수 있었다”라는 말로 의미가 부여되는 셈이다.

서정주판 부부의 세계! ‘무등(無等)’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 그는 대한민국, 이 땅에서 꽤 오랜 세월 시인으로 살았다. 우리 나이로 86세에 졸했으니, 비교적 장수를 누린 편이다. 아무튼 서정주의 아호인 ‘未堂’의 뜻부터 살펴보자. 여기서 ‘堂’은 집이 아닌 ‘마루’를 구체적으로 가리킨다. 이와 관련, 고전 <논어> 선진에 등장하는 한 대목(승당입실)을 여기에다 소개한다.

공자께서 “유의 슬을 어찌 나의 집에서 연주하겠는가?”하시자, 다른 제자들이 그를 공경하지 않았다. 공자께서는 “유의 학문은 당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했을 따름이다”라고 하셨다.

(子曰: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 不敬子路.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어느 분야이든 학문의 세계에선 스승에게 배우는 제자가 어엿한 고수가 되는 과정을 두고, ‘승당입실(升堂入室)’로 비유하곤 한다. 스승과 나란히 방(室)에 앉아 학문을 토론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춘 제자-논어에서는 ‘안회’가 그렇다-는 입실이 허락된다. 하지만 그보다 약간 미치지 못할 경우엔 마루에서 스승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다음은 마루 밑에 마당에서 앉아 듣는 제자도 있었는데, 이를 보통 문인(門人)이라고 했다. 그만큼 스승과 가까이 대면하는 수업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경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3천 제자를 둔 공자와 한 방에서 공부할 수 있는 안회를 제외하고는 자로가 그 다음 수준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니 너희 문인 제자들은 자로를 함부로 봐서 안 된다, 라는 경고를 공자가 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인 서정주가 스스로 ‘미당(未堂)’을 내세움은 그저 겸손함일 테다. 아직 자신의 시세계가 세계적인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대가들과 한 방에서 논할 만하지 않다, 라는 낮춤일 테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未) 마루(堂)에도 오르지 못한 시인일 뿐이라는 뜻에서 아호를 쓴 것일 테다. 그의 인생역정에 친일(親日)이 실은 있었고, 전두환 정권에도 아부했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는 오점이나, 한 시인으로서 서정주는 수많은 문인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스승의 자취로 여전하다는 점은 불현듯 후기 인상주의를 개척한 프랑스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의 업적과도 능히 견주어 볼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하튼 서정주의 부인은 누구인가. 방옥숙(方玉淑, 1919~2000)이라고 한다. 또한 서정주는 말년에 서울 남현동 집(봉산산방)에서 행복한 부부의 세계를 여러 차례 집으로 놀러온 제자들에게 들킨 바가 있다고 전한다. 그것은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주는 애정의 행각일 테다. 아무튼 서정주는 노년에 발생하는 기억력 감퇴를 줄이기 위해서 아침마다 세계의 산 1624개와 각 나라의 수도 이름을 외웠다는 풍문이 있긴 하다. 또한 세잔이 그린 자화상을 연상시키는 명시 ‘자화상’에서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적었는데, 이 구절은 인구에 유행처럼 널리 회자되고 있음이다.

최근에 다시 읽고 있는 책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필사하고픈 글을 발견한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사랑은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잔인함 정도는 철천지원수 저리 가라다. 우리는 사랑이 충만함의 강력한 원천이길 바라지만, 사랑은 때때로 무시, 헛된 갈망, 복수, 자포자기의 무대로 변한다. 우리는 부루퉁하거나 쩨쩨해지고, 성가시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어떻게 혹은 왜 그런지 이해조차 못하고서 자신의 삶과 한때 자신이 좋아한다고 맹세했던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알랭드 보통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94쪽 참조)

보통씨의 글이 꼭 한국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꼭 본 것처럼 폐부를 쿡쿡 찌른다. 그렇기 때문에 섹스리스(sexless) 부부들을 위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부부의 날’이 제정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니 어쩌랴. 오는 5월 21일은 만사 제쳐두고 부부는 합방을 시도해 봐야 할 테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차별이 없는 세상, 무등(無等)에 닿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6.25 전쟁으로 불안과 공포 가난으로 삶이 피폐해진 어느 날 시인이 광주에 있는 무등산을 보며 삶의 깨달음을 얻어 쓴 시가 시 「무등을 보며」이다. 당시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지만 점심을 굶을 정도로 극도의 물질적 궁핍 속에서 고생을 했던 시기이다. 무등산의 갈매빛 등성이는 긴박한 전쟁도 아랑곳하지 않고 햇빛에 반짝이며 수많은 생명들을 포용한 채 숨쉬고 있다. 그와 같은 산을 바라보며 가난한 남루의 자신은 떳떳하다고 시인은 자부한다. (중략) ‘청산’ ‘지란’ ‘청태’ 등의 푸른색의 식물적 이미지와 푸른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무등산의 수직적·상승적 이미지를 통해 고매한 정신적 가치와 삶에 대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김원효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212쪽 참조)

그렇다. 산은 함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무등(無等)의 세계로 입산을 허락한다. 프랑스 화가 세잔이 그토록 사과 그림에 매달리고, 생트 빅투아르 산을 찾아간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했을 것이다.

‘백수’ 세잔을 차별하지 않는 저 무등(無等)의 세계 ‘생트 빅투아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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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팔레트를 들고 있는 자화상’,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스위스 뷔를레컬렉션.


액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난 폴 세잔은 프랑스 남서부의 바위 언덕과 소나무 숲을 노닐며 자랐다.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와 어릴 때부터 친구였으며 아버지는 모자 공장 운영으로 은행을 설립한 자산가였다. (중략) 세잔이 스무 살이 된 1859년, 아버지 오귀스트 세잔은 마을 외곽에 있는 저택 자 드 부팡을 매입했다. 아버지는 세잔을 법학대학에 보냈지만 그는 다른 꿈을 키웠다. (중략) 세잔의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에 실망했지만 그림에 전념할 수 있게 허락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었다. 아버지의 지원을 받게 된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와 파리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중략)

세잔에게 가족들과 함께하는 자 드 부팡의 집은 정신없는 파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였다. (중략) 세잔은 파리에서 모델이자 재봉사였던 마리 오르탕스 피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 모르게 파리에서 오르탕스와 함께 살았고 1872년 아들 폴이 태어났다. (중략) 1877년 제 3회 ‘인상파’ 전시회에 모네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하지만 세잔은 자신이 파격적인 인상파 화가들의 흐름에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나갔다. 이 시기쯤 세잔은 근방의 여러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엑상프로방스의 생트 빅투아르 산등성이를 그리는 일에 푹 빠졌다. 좋은 각도를 찾으려고 주변 지역을 돌며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이 모티프를 그렸다. (재키 베넷 <화가들의 정원>, 59~6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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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온실 속의 세잔 부인’,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노년에 이르러서 세잔 부부의 세계는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그랬는가. 지어미와 지아비의 자화상은 각각 스위스와 미국에 전시되어 있다. 이 점이 무척 안타깝다. 그것과 관련, 미술평론가 유경희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처럼 검소와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세잔은 결혼 후에도 가족들, 특히 어머니와 누이에게 의탁하여 살았다. 두 여자는 세상 물정을 몰랐던 그가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세잔은 아들에게 의탁하여 생활한다. (중략) 세잔은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유지했지만 아내와는 함께 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은 깊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편의 모델 제의에는 기꺼이 응해주었다.” (유경희, <창작의 힘-예술가 24인의 일상과 취향>, 245쪽 참조)

그렇다. 세잔을 오늘 날, 세계적인 유명 화가로 키운 비밀의 팔할(八割)에도 서정주가 말했던 그 ‘바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세상물정을 아예 모르고자 했던 화가로서 세잔이 바라고 그토록 원하는 바대로 가족의 지원과 헌신, 사랑이 늘, 항상, 언제나 ‘곁’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잔은 왜 그토록 무등의 산을 그린 것이고 또한 과일 ‘사과’에 골몰하면서 매달렸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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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병과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먼저 세잔의 그림, <병과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 그림을 설명하면서 일찍이 미술평론가 유경희 작가는 책에서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이가 다 부러질 것처럼 딱딱하고 견고해 보인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책은 명화에 숨은 비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사과 하나로 미술계를 제패한 화가라는 평을 듣는 세잔. 그의 사과와의 인연은 부르봉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훗날 프랑스 유명 문학가로 성장하게 되는 에밀 졸라와의 인연도 이때부터였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파리에서 온 졸라는 특이한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였다. 그때마다 세잔은 그를 두둔했고 그러던 어느 날 졸라가 세잔의 집으로 사과 한 바구니를 들고 찾아오면서 둘의 진짜 우정이 시작되었다. (유경희 <교양 그림-아는 그림 몰랐던 이야기>, 89쪽 참조)

과일 사과, 그림의 메시지가 되다

그 많은 과일 중에서 에밀 졸라는 하필이면 왜 사과 바구니를 선택했을까. 여기서 사과는 ‘감사(感謝)한 결과(結果)’의 줄임말 ‘사과(謝果)’로 메시지가 읽혀진다. 아는 그림이다. 하지만 몰랐던 이야기이다. 그 찐한 우정을 내가 처음 접하면서 낙서한 내용은 ‘감사의 결과’로써 보게 되는 ‘사과 그림’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을 때면 으레 사과 한 상자를 택배 선물로 명절마다 보냈을 테다. 신기하다. 그것을 저 서양의 어린 중학생도 알고 행동한 것을 보면….

그러다가 숨은 이야기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보통씨가 말한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라는 지적처럼 어른이 되어서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은 서로 원수가 된다. 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고 원인을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30년 우정이 항아리에 담긴 물처럼 와장창 깨졌다. 에밀 졸라가 자신의 소설에서 세잔을 모델로 작업실에서 목매달아 자살한 ‘좌절한 천재 화가’로 인물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에 세잔은 충격을 엄청 받았다. 그리하여 졸라와 우정을 하루아침에 끝장을 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세잔의 사과 그림 메시지는 ‘사과(謝過)’로 써야 맞을 테다. 잘못(過)을 사(謝)과하라는 무언의 메시지일 테다. 이렇듯 과일 사과는 두 가지 의미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 하나는 ‘감사의 결과’이고 또 하나는 ‘너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요구일 테다.

어쨌거나 부부의 날은 도둑고양이처럼 홀연 들이닥치고 만다. 나와 너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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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 스틸컷.


여기 불륜으로 한 가정이 박살이 났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아빠 이태오가 아들 준영에게 울먹이며 말하는 그 명대사!

“준영아 넌 아빠처럼 살지 마. 니 곁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걸 잊어버리면 아빠처럼 멍청한 짓을 하게 돼. 널 제일 아껴주고 지켜주는 사람을 잊어버리면 모든 걸 잃는다는 거 명심하고, 알았지? 아빤 잊어버리고 살아, 다신 안 나타날게.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나는 TV를 시청하다가 언뜻 저 깊은 울림을 주는 대사가 좋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한 바 있다. 그렇다. 후회는 항상 늦다. 절호의 타이밍을 맥없이 놓치게 마련이다.

아무튼 5월은 꽃 사는 날이 많아지는 달이다. 부모님에게, 스승님에게. 그러나 정작 아내 혹은 남편을 위해 꽃을 사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당면한 우리들의 문제일 것이다. 이번 부부의 날엔 한편의 시와 그림을 보자. 그러면서 모처럼 잠자리 분위기를 만들어보자. 이왕이면 과일 사과를 하나씩 각자 들고서 내미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좀 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화원에 가서 꽃을 직접 주문해 보는 것이다.

아침 일찍 꽃시장에 다녀왔다. 우울할 때면 꽃을 사는 습관 때문이다.

(중략)

“이 꽃 이름이 뭔가요?”

“마리골드예요”

“이걸로 한 다발 주세요.”

“누구에게 선물하실 건가요?”

“아뇨. 그냥 꽃이 예뻐서요.”

“그럼 자신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거네요. 이 꽃의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거든요. 분명 행복해질 거예요.”

(우지현 <혼자 있기 좋은 방>, 41쪽 참조)

나도 그렇지만, 친구도 지금은 싱글이다. 친구의 정남 만년로 사무실 미니 텃밭에서 자라는 메리골드를 보면서 우지현 작가의 글이 불쑥 생각났다. 부부의 날에 함께 잠을 잘 수 있는 아내는 내겐 없다. 하지만 애인이 생겼으니 꽃집에 가보려고 한다. 가서 메리골드를 한 다발, 사서 선물로 미리 전달하고자 한다.

나의 살림살이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樓에 지나지 않”으나 저 눈부신 오월이 우리들 곁에 왔으니 어찌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겠는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나니까.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서정주 ‘자화상’ 부분)

나는 서정주의 시 ‘자화상’을 보면서 자꾸만 폴 세잔의 많은 자화상 그림이 겹쳐졌다. 기왕불구…

지나간 것은 이미 과거사이다. 흘러간 강물이니 내가 붙잡으려 애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부터 먼저 챙기자. 오월은 오로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인 것처럼 세심하게 행동하고 볼 일이다,

◆ 참고문헌

김원호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한나래플러스, 2013.

심경호 <논어2-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민음사, 2013.

알랭드 보통, 김한영 옮김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문학동네, 2018.
재키 베넷, 김다운 옮김 <화가들의 정원>, 샘터, 2020..

유경희 <창작의 힘-예술가 24인의 일상과 취향>, 마음산책, 2015.

유경희 <교양 그림-아는 그림 몰랐던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2016.

우지현 <혼자 있기 좋은 방>, 위즈덤하우스, 2018.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