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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한국인 코로나 ‘보복 소비’ 광풍 10대 명품 매출 10조 원…사회 양극화 또 다른 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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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한국인 코로나 ‘보복 소비’ 광풍 10대 명품 매출 10조 원…사회 양극화 또 다른 일면

지난 12일 오전 8시 50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백화점 개장 시간(10시 30분)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12일 오전 8시 50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백화점 개장 시간(10시 30분)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
지난해 한국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장기화라는 악재에도 명품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며 국내 명품 시장 규모가 독일을 제치고 세계 7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로 여행과 외출이 제한되며 ‘집콕’에 지친 소비자들이 고가의 명품 구매를 통해 이를 보상받으려는 ‘보복 소비’가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똘똘한 집 한 채’라는 인식이 ‘똘똘한 백, 쥬얼리, 시계 하나’까지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17일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가방·지갑·쥬얼리·시계 등 명품 매출은 125억420만 달러(약 13조9,672억 원)로 전년(125억1730만 달러)과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명품 매출이 19% 급감한 2869억 달러(약 320조4,673억 원에 그친 데 비해 타격이 거의 없었다. 반면,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을 제외한 주요국 명품 매출은 큰 폭으로 줄었다. 세계 1위 명품소비국 미국의 경우 652억3400만 달러(약 72조8,664억 원)로 22.3% 급감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글로벌 명품 시장 매출 비중은 2019년 8위에서 지난해 독일의 104억8700만 달러(약 11조7140억 원)을 제치고 7위에 올랐다. 5위 영국 146억 달러(약 16조3,082억 원)와 6위 이탈리아 145억 달러(약 16조1,965억 원)와 격차도 크게 좁혔다. 이러한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이들 업체의 국내 매출액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는 한국에서 총 2조40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으며 세 곳의 합산 매출은 전년 대비 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다 구찌, 크리스찬 디올, 프라다, 페라가모 등 10대 명품브랜드 매출을 합치며 4조 원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소속 브랜드 루이비통의 국내 법인 루이비통 코리아 매출은 지난해 33.4% 뛰어 1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마지막으로 국내에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2011년(4973억 원) 이후 9년 만에 두 배 넘게 성장했다. 또 처음으로 실적을 공개한 에르메스 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5.8% 증가한 4191억 원으로 집계됐다. 마찬가지로 처음 실적을 공개한 샤넬은 면세점 업계 타격에도 불구하고 9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거뒀다.

이처럼 국내 명품산업의 급격한 성장의 배경으로는 코로나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고 있는 데 따른 안정감과 억눌린 소비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명품산업 호황은 위축됐던 소비 심리가 폭발하면서 명품 구매로 이어진 ‘보복 소비’와 부의 과시를 위해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는 ‘베블런 효과’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가 명품을 개성 표출 수단으로 여기는 ‘플렉스(flex)’ 문화도 일조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보상심리가 강화된 상황에서 개인의 가치관에 초점을 맞춘 고가 소비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불을 지른 것은 백화점 등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한 요인도 컸다. 지난 신년세일을 조용히 넘어간 주요 백화점들은 지난 2일부터 일제히 봄 정기세일 행사를 벌이고 있다. 오프라인 행사는 물론, 언택트(비대면) 마케팅으로 주요 소비층인 MZ세대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을 분석한 결과, 백화점에서의 명품을 비롯한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은 전년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의 30%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23.3% 보다 6.7%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다만 이 같은 성장과 좋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주요 업체들은 표정 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600~700명대를 오갈 정도로 날마다 늘어나면서 대규모 재확산이라는 악재가 다시 닥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만약 대규모 점포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영업을 중단해야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되면 이와 무관하게 영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거리 두기 방침을 지켰더라도 확진자가 연달아 발생한다면 부정적 이미지도 생길 수 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하게 되면 또다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런 소비 심리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은행에서도 지난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100.5로 전월 대비 3.1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 동향지수(CSI) 중 6개 주요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심리지표로 기준값 100보다 크면 경기 상황을 낙관적으로, 적으면 비관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즉, 소비자들이 향후 지갑을 열 의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교수)은 “코로나 장기화로 재택근무와 ‘집콕’이 확산하면서 본인에게 자기에 투자하는 ‘포미족’ 소비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며 “만족을 주는 제품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 소비가 중요해진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최재섭 남서울대 교수도 “소비자가 유지하던 일정한 소비 패턴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막히면서 고가 제품을 소비하려는 ‘보상소비’ 흐름이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며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인해 소득 양극화가 심화 된 상황에서 연장된 소비 양극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명품브랜드는 일반 소비재와는 달리 일정한 기간이 지난 중고품일지라도 상당한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이점도 있다. 또 명품 소비의 주력계층으로 등장한 요즘 젊은 층은 명품을 접근이 어려운 사치품으로 생각지 않으며, 몇 달 소비를 하지 않고 돈을 모아서라도 아주 비싼 제품 하나를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까닭에 명품 구매 열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사회 양극화 갈등의 또 다른 빌미가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