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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불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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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불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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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산업2부장.
최근 관심있게 읽고 있는 책이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원제:The Tyranny of Merit)이다.

마이클 샌델은 몇 년 전 한국사회에 ‘정의’라는 사회의 담론과 이슈를 불러왔던 명저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치학 교수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의’라는 테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정의’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다 책보다는 TV 강연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터라 솔직히 딱히 기억에 각인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다시 샌델 교수가 ‘공정하다는 착각’을 출간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예전과 달리 ‘조금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가고 있다.

아직 완독을 못한 상태이지만, 책의 핵심 내용은 미국 사회가 그동안 신분고하, 피부색깔, 직업 귀천에 상관없이 신분(계층) 상승의 작동원리로 과시하고 자부해 온 ‘능력주의’가 사실은 공정 또는 공평 하지 않다는 것이다.

출세를 위한 기회가 보장만 된다면 개인 누구나 능력껏 노력해서 성공의 대가를 쟁취하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 신자유주의(세계화)와 만나면서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과 분노를 심어주면서 미합중국이란 공동체의 화합과 연대를 해체시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승자의 오만 사례로 미국 일부 부유층이 자녀를 유명 대학에 보내기 위해 저지른 입학 브로커 부정 스캔들을, 패자의 분노 사례로 미국 백인 노동자계급이 워싱턴정가의 아웃사이더인 도날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사건을 각각 꼽았다.
트럼프가 아닌 바이든을 우여곡절 끝에 승자로 선출한 지난해 12월 미국 대통령선거 이전에 책이 출간된 터라 센델 교수의 능력주의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클린턴·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후보조차도 ‘오만한 승자’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바이든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라고 유추해 본다.

이처럼 약 250년 가까운 미국 역사에서 국가와 개인의 성장사다리 역할을 해 왔던 아메리칸 드림의 ‘능력주의’가 지금은 반대로 승자(상위층)와 패자(하위층) 간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에도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좋든 나쁘든 가장 막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의식주를 포함한 교육·문화·종교·경제에 이르는 저강도 영향은 물론, 정치·군사의 고강도 영향까지 한국은 어쩌면 철저히 ‘미국화(Americanization)’돼 왔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이번에 센델 교수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확연하게 느낀 미국과 한국 두 사회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미국이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 한국은 ‘불공정하다는 착각’에 매몰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공정과 한국의 불공정을 가르는 핵심은 능력주의의 결과를 수용하는 승자와 패자의 귀책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센델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능력주의의 폐단은 ‘나는 경쟁의 승자(winner)이니 나의 성공은 보상받아 마땅한 것’라는 승자의 오만을, ‘경쟁에서 도태한 나는 루저(loser)’라는 패자의 굴욕을 너무 당연시해 두 부류가 물과 기름 같은 화합할 수 없는 불평등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반면에 한국에선 개인이든 조직의 성패를 능력주의로 재단하지 않는다. 승자든 패자든 ‘능력 밖’의 환경적 요인, 즉 ‘네 탓’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경쟁의 승패가 선천적 능력보다는 ‘부모 찬스’ 같은 후천적 기득권의 영향으로 좌우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센델 교수는 미국사회를 정의롭게 유지하려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승자와 패자를 아우르는, 특히 패자를 보듬는 공동체 연대의식의 회복을 주창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불공정하다는 착각’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공정한 능력주의를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