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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유병록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와 신윤복 '월하정인(月下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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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유병록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와 신윤복 '월하정인(月下情人)'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첫 만남을 통해 연애를 실컷 하고 결혼에 골인한다면 주례사 대신에 유병록의 시 를 예쁘게 필사해 신혼 방에 액자로 걸어두고 보길 바라는 바이다. 이왕이면 날로, 달로 까먹지 말고, 외우고 낭송하고 실천하길 간절히 나는 희망한다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 유병록

우리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 있겠어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요

겨울이 와도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지 않기로 해요

봄을 반성하지 않기로 해요

봄이에요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봄

금방 흘러가고 말 봄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봄

짧디짧은 봄

우리 그저 바라보기로 해요

그뿐이라면

이번 봄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center
신윤복 ‘월하정인(月下情人)’, 혜원 전신첩, 18세기, 종이에 채색, 간송미술관.


시가 무슨, 대중가요 노랫말 같다. 시인 유병록(庾炳鹿, 1982~ )의 매력 발산이다. 발라드(譚詩) 풍의 이 시는 왠지 정인(情人)이 무대에서 듀엣이 되어 속삭이듯 나직하게 불러야 할 것만 같다. 그것이 제맛이다. 소문에는 결혼식 축하 시로 쓰인 거라고도 한다. 그럴 것이다. 화자로 남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먼저 “우리/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라고 소프라노로 노래하면, 이윽고 남자가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 있겠어요”라고 바리톤으로 화답하듯이. 물론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여”라는 부분에선 남녀가 화음을 맞추며 같이 부르는 게 당연할 터.

어찌 보면 달콤한 노랫말 같기도 하고, 또 어찌 읽으면 슬프되 서로에게 상처를 주진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가 간신히 결혼을 축하하는 시로 울림과 격조를 아우른다. 독자에게 선물한다. 노랫말 같은 이 시의 출처는 유병록의 두 번째 시집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창비, 2020년)에 나온다.

‘봄’의 생각 변주곡

유병록의 시에서 ‘봄’은 두 가지로 읽힌다. 계절이 품은 자연의 ‘봄(春)’이 그 하나요, 나머지는 남녀의 연애, 심지어는 결혼까지 잇는 그 만남의 첫 단추, ‘봄(見)’이 그것이다.

사계(四季) 중에서도 나이 든 인간만이 유독 짧다고 불평하는 것이 봄(春)의 고유한 특성이다. 여름·가을·겨울, 이것들은 글자 그대로다. 발음 같이 덩달아 길어져 지루하다. 지겨움을 덧붙인다.

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기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문학동네, 2018년)에도 ‘우리’가 등장한다. 우리란 남녀를 말한다. 말하자면 그 흔한 사랑을 다룬다. 다음과 같다.

우리는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잔인함의 정도는 철천지원수 저리 가라다. 우리는 사랑이 충만함의 강력한 원천이길 바라지만, 사랑은 때때로 무시, 헛된 갈망, 복수, 자포자기의 무대로 변한다. 우리는 부루퉁하거나 쩨쩨해지고, 성가시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어떻게 혹은 왜 그런지 이해조차 못하고서 자신의 삶과 한때 자신이 좋아한다고 맹세했던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같은 책, 94쪽 참조)

‘다짐’은 항상 남녀 간에 ‘약속’으로 표현이 된다. 약속은 가까워질수록 ‘맹세’로 거듭나고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키기도 어렵거니와 실행함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으로 고통을 수반하도록 요구한다. 더군다나 ‘첫’이라는 시점이 잘못 끼워지고 날이 지날수록 ‘너에게는 왜 나인가?’하고 슬픔이 찾아온다. 고민이 되어 ‘나’를 또 방황케 이끈다.
유병록은 ‘슬픔’은 “양말에 난 구멍 같다/들키고 싶지 않다”(<슬픔은> 전문)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해진 척”(<슬픔은 이제> 부분)은 할 수 있어도 머잖아 상대방에게 진심은 들키게 마련이다. 즉 ‘척’해 본들 아무런 소용없다. 그닥 처세에서 쓸모가 없다.

중국 청나라 초기. 가시(歌詩)에 능했던 납란성덕(納蘭性德, 1655~1685)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시 한 구절 “인생이 첫 봄과 같다면(人生若只初如見)”으로 진솔하게 노래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섬세함의 감수성, 시의(詩意)가 젊은 시인 유병록 시집에도 군데군데 발견된다.

젊은 나이에, 아들을 잃은(혹은 아내를 상처한) 아버지로서 유병록(남편으로서 납란성덕)의 아픔과 고통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봄’이 무엇보다 선행되길 바랄 것이다.

연애 중이거나 결혼을 앞두고 남녀는 곧잘 다짐을 한다. 약속을 한다. 맹세한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어느 날에 한 마음의 다짐 천년이 지나도 그대로이고요/ 다음 생애도 우리 인연은 아마도 맺어질 거예요.
(一日心期千劫在/後身緣恐他生裏)


납란성덕의 노래(<금루곡(金縷曲>)는 실은 무겁다. 다만 지켜내려는 연인이 실은 없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반면에 유병록의 노랫말은 조금 가볍다. 다만 지켜낼 수는 있을 것만 같은 수더분한 그 만만함이 좋다. 실은 연인이, 부부가 지켜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낭송하면 그 느낌은 더욱더 살아날 것이다.

겨울이 와도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지 않기로 해요

봄을 반성하지 않기로 해요

봄이에요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봄

금방 흘러가고 말 봄

그렇다. 여기서 ‘봄’은 화양연화의 봄(春)을 노래하는가 하면, 짧디짧은 만남의 시간을 아쉬워하는 봄(見)으로 교차되면서 그림처럼 펼쳐지고 음악처럼 들리면서 무수한 변화를 일으킨다. 좋은 시란, 이런 거다.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봄이고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봄이 전부인 “그뿐이라면/이번 봄”의 다짐은 하지 않기 보다는 해도 좋을 것만 같다. 기어코 ‘그’를 대면하고 싶다. 사랑 나누고 싶다.

‘봄’은 달빛을 타고, 우린 첫 만남!

앞의 그림, <월하정인>은 보면 볼수록 내가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 감상하는 맛이 좋다. 그림의 반절, 중앙에 접힌 선(線)을 예전엔 무시했다. 지나쳤다. 그런데 “사는(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중국 명(明)나라 때, 서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의 화론서 중 하나인 <화안(畵眼)>(시공아트, 2004년)을 보니, 이런 글이 눈에 보였다. 다음이 그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반드시 나누어지는 것과 합쳐지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중에서 화면을) 나누는 붓의 운용이 가장 큰 핵심이다. 화폭 전체에도도 나누어짐이 있고, 각각의 부분에도 나누어짐이 있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한다면, 그림 그리는 방법을 대부분 파악할 것이다. (같은 책, 47쪽 참조)

말인즉 그림 그리는 방법까지는 몰라도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동기창이 말한 그것을 100여년 후의 신윤복(申潤福, 1758~ ? )이 참고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 그림에는 화가의 의도가 반절로 접힌 그림의 묘용의 이치를 감상자가 깨우치도록 인도하는 것만은 명확하다.

그림을 보자. 선남선녀가 담벼락 모퉁이에서 그저 바라보고 있다. ‘봄’인 것이다. 선비 차림의 남자의 시선은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의 몸은 부끄러운 듯 옆으로 틀면서 배배꼬고 있다. ‘첫’ 만남일 것이다. 아니면 한 두어 번 정도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자세히 알 순 없지만.

간송미술관 출신 미술평론가 탁현규 작가의 그림 설명은 이렇다. 다음과 같다.

비록 얼굴 일부를 가렸지만 그럼에도 이 여인은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최고의 미인이라 할 만합니다. 초승달 같은 눈썹, 호수 같은 눈망울, 오똑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계란 같은 얼굴형, 그야말로 조선 미인의 전형입니다. (중략) 저고리 깃과 끝동은 고운 자줏빛이고 비단신도 자주색으로 맞췄네요. 장옷은 치마와 색상을 맞추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푸른 색과 자주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옷차림이 됐습니다. 여인의 짝인 선비 또한 귀공자임에 틀림없습니다. 키도 훤칠한 데다가 이목구비가 뚜렷해 오늘날이라면 꽃미남 소리깨나 들었겠네요. 하얀 중치막에 푸른 띠, 여기에 색상을 맞춘 푸른 신, 그러나 이 선비의 의복에서 압권은 진자주색 갓끈입니다. (같은 책, 73~75쪽 참조)

그림이 반으로 접힌다. 이건 그림의 구도이고 책인<혜원 전신첩>에 등장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두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던 차에 초승달 밑으로 적힌 신윤복의 글씨 내용이 도대체 뭐라고 적은 것인지 살펴 순서대로 옮겨 적자면 이렇다.

月沈沈夜三更 (월침침야삼경)

兩人心 (양인심)

事 兩人知 (사양인지)

蕙園 (혜원)

“달빛은 어둑어둑 밤은 삼경(밤 10시~다음날 새벽 1시를 말함)인데 두 사람의 심사(속내)는 둘만 알고 있을 뿐. 혜원”으로 그 한문의 뜻을 풀이할 수 있다. 선남선녀, 즉 연인의 속내는 연애하는 당사자만이 알뿐, 그림 감상자는 짐짓 그것을 알 수가 없노라고, 능청을 떠는 문구의 내용이 아닌가. 하긴 그렇다. 연인이나 부부가 아니고는 어찌 그 속내를 함부로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우리가 그 두 사람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장치로 신윤복은 그림을 반으로 접어서 보라고 안내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반을 접으니 신혼살림 집으로 보이는 허름한 방으로 들어간 남녀가 얼른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림 속의 선남선녀처럼 첫 만남을 통해 연애를 실컷 하고 결혼에 골인한다면 주례사 대신에 유병록의 시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를 예쁘게 필사해 신혼 방에 액자로 걸어두고 보길 바라는 바이다. 이왕이면 날로, 달로 까먹지 말고, 외우고 낭송하고 실천하길 간절히 나는 희망한다. 연애와 달리, 결혼이란 생활은 현실이기에 될 수 있으면 서로 다짐을 많이 하지 않을수록 좋을 테니 말이다.

신혼 ‘봄’의 강, 꽃, 달, 밤으로의 초대

“소설은 스토리를 읽습니다. 그 재미있는 스토리는 한 번 읽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소설책은 번역으로도 읽을 수 있고, 단숨에 몇 페이지씩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다릅니다. 시는 읽고 또 읽고, ‘소리’를 내어 자꾸 읽어야 합니다. 시는 ‘스토리’가 아니라 ‘소리’가 요긴합니다. 모든 시는 시인의 모국어로 낭송해야 운율(韻律)이 살아납니다. 그 언어를 모르면 그 언어로 쓴 시를 읽기 어렵습니다.”

이 말은 시를 낭송하길 강조한 지영재 선생의 편역 역작, <봄의 강, 꽃, 달, 밤>(을유문화사, 2017년) 서문에 등장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유병록의 시 또한 그렇게 ‘소리’를 내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봄에 결혼한 신혼의 부부가 시집을 펼쳐 시를 찾아서 소리를 내어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읽는다면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한 여행은 더욱더 값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의 아들과 딸이 이제부터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리면, 나는 부조금은 적게 하는 대신에 시집을 따로 사서 신혼인 그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

중국 당나라 시인, 장약허(張若虛, 660~720)가 쓴 시 제목이다. 유병록 시인의 시를 가만히 처음 읽었을 때 ‘봄’이란 시어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똑 같은 시제를 두고, 중국시 전문가인 지영재 선생은 ‘봄의 강, 꽃, 달, 밤’으로 편역을 했다. 그런가 하면 성신여자대학교 중문과 유병례 교수는 ‘봄강 달빛 아래 넘실대는 그리움’이라고 풀이한 바 있다. 남성의 목소리로 시를 읽기엔 지영재 선생의 원문 해석이 좋고, 여성의 입장에서 시를 낭송하고 보기엔 어쩌면 유병례 교수의 해설이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나는 두 권 다 소장하고 있다. 두 권의 책 모두 활자도 크고, 해설도 충실해 우열을 가림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튼 ‘봄’(春, 見)은 ‘달’을 매개로 한다. 신윤복의 그림은 여인의 눈썹을 닮은 초승달이라서 좀 이상타. 하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바가 ‘첫’에 있다고 나는 본다.

신혼의 첫날 밤. 유병록의 시와 장약허의 시를 들고 강이나 바닷가에서 달이 초승달인지 보름달로 떴는지 구경할 일이다. 물론 꽃구경도 봄철 결혼의 특권이니 해야 한다. 대자연의 초대 앞에서 이것저것 구속하는 다짐이나 약속, 맹세 따위 제발 신혼의 부부여, 하지 말자. 그림 속 남녀처럼 인생에서 첫 만남을 겨우 가진 연인처럼 다정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아무 다짐도 하지 않고 잠드는 신혼의 ‘봄’으로 서로를 안내하자. 이윽고 한 줄의 시로 말하자.

“우리 그저 바라보기만 해요”

이조차도 부족하고 허전한 느낌을 도무지 지울 수 없다면 우린, 가수 이소라의 노래 <봄>을 함께 노래하자. 참 좋다!

“하루 종일 그대 생각뿐”인 봄은 그대에게 더 가까워지는 손 닿을 만큼의 봄(見), 겨울이 가고 오는 그 봄(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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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유병록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창비, 2020.

탁현규 <삶의 쉼표가 되는, 옛 그림 한 수저>, 이와우, 2020.

알랭 드 보통 외, 김한영 옮김 <영혼의 미술관>, 문학동네, 2018.

동기창, 변영섭 외 옮김 <화안(畵眼>, 시공아트, 2004.

지영재 <봄의 강, 꽃, 달, 밤>, 을유문화사, 2017.

유병례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라>, 시와진실, 2015.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