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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트럼프 내려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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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트럼프 내려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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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연암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청나라에서 만리장성을 구경했다. 장성을 오를 때는 힘들었다. 숨이 턱까지 닿아서 헐떡거려야 했다.

하지만 오르고 나니 좋았다. 박지원은 그 느낌을 '장대기(將臺記)'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의 거대함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성가퀴에 의지하여 사방을 둘러보았다. 장성은 북쪽으로 향해 달려가고 푸른 바다는 남쪽에서 넘실대는데 동쪽으로는 큰 벌판이 자리 잡고 서쪽으로는 산해관 안을 엿볼 수 있었다. 전망을 두루 살피기에 이 장대만큼 훌륭한 곳은 없을 것이다.…”

난생처음 장성에 올랐더니, 세상이 아래로 보였다. 천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올라가고, 구경까지 했으니 내려갈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몸이 후들거렸다. 현기증까지 났다. 겁이 저절로 났다.

“…벽돌로 만들어진 층계가 몹시 가팔라서 내려다보기 만해도 온몸이 후들거렸다. 하인들이 곁에서 부축하려고 했지만, 몸을 돌릴만한 자리조차 마땅치 않아서 형세가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나는 서쪽 층계를 따라 간신히 내려와서 땅을 딛고 설 수 있었다.… 장대 위에 오를 때에는 층계를 디디며 올라갔기 때문에 위험함을 몰랐는데 내려오려는 마음에 일단 아래를 내려다보니 디딜 곳을 찾지 못해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이다.…”

박지원은 이를 벼슬에 빗대고 있었다.

“벼슬아치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마침내 지위가 숭고한 자리에 이르면 두려운 마음과 외롭고 위태로움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데 뒤로는 1000길 낭떠러지가 있는 것이다.… 천고의 모든 것들이 그럴 것이다.”

만리장성뿐 일 수 없었다. 박지원은 올라 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려가는 게 껄끄러운 모양이다.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이번 선거는 전혀 끝나지 않았다”고 우기고 있었다.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도 불참하겠다고 했다. 퇴임하는 대통령이 후임자의 취임식에 불참하는 것은 152년만의 일이라는 보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하면서도 바이든 당선인에게 승리를 축하한다는 말도 없었다. ‘승복(conced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끝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도 해산을 종용하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평화적인 시위’만 당부했을 뿐이다. 그랬다가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탄핵’ 이야기까지 나오도록 만들고 있다.

선거 직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들려온 것은 “당신 해고야(You’re Fired)”라는 냉담이었다. “당신 해고야”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유행시킨 말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이 말을 ‘탄핵’ 대신 또 듣게 생겼다.

지난달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역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50%가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위대한 대통령․좋은 대통령’이라는 긍정적 답변은 30%였다. ‘그저 그렇다’ 16%였고, 4%는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렇게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신경 써야 할 텐데 막무가내인 듯싶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좀 읽었어야 좋았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