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기고] 日 큐슈 지역의 여행 억압수요를 대체할 콘텐츠에 주목해야할 때

공유
0

[기고] 日 큐슈 지역의 여행 억압수요를 대체할 콘텐츠에 주목해야할 때

류영진 기타큐슈시립대학 지역전략연구소 특임준교수




여행수요 억압과 한국에 대한 욕구

최근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한국 여행에 대한 수요는 말 그대로 억압상태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사례들이 그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0년 11월 26일, 도쿄의 치요다구의 한 호텔에서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가 개최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아시아나항공사와 협력해 47명의 손님들에게 기내식을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행사에서는 직접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대접했고 중간에 기장의 방송도 연출됐다. 평소 한국에 관심이 있고, 즐겨 한국을 방문하였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여행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였다. 그런데 놀라운 부분은 이벤트에 지원한 사람들이 무려 750명이나 됐다는 점이다. 단지 기내식을 먹기 위한 16:1의 경쟁률이었다. 또한 2020년 12월 1일 KOTRA 오사카 무역관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젊은 층들이 한인타운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Go To 캠페인을 통한 여행비 지원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COVID-19의 영향력이 무색할 정도로 한인타운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한류를 비롯한 다양한 한국 콘텐츠들이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환경에서 뿐만이 아니다. 최근 일본 내에서도 Netflix, 아마존 프라임 등 SVOD 서비스의 이용률이 급격하게 치솟고 있다. 물론 이는 전 세계적인 경향이지만 재미있는 점은 주로 소비되는 콘텐츠가 무엇이냐이다. 현재 <사랑의 불시착>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들은 일본 SVOD 서비스의 상위 콘텐츠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웹 만화에 있어서도 일본의 플랫폼 시장 점유율 1위, 2위 그리고 4위 기업은 한국계 기업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오사카에서는 K-Book 페스티벌이 열리고 다양한 한국의 도서들이 번역됐다. 또한 온라인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 등이 기획됐다. 드라마나 아이돌에 국한된 한류가 아닌 좀 더 포괄적 의미에서, 동시에 상당히 세분화된 관점에서 한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필요성마저 느껴지는 대목이다.

위와 같은 몇 가지 상징적인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본은 최근 1년간 COVID-19에 대처하기 위해 급속하게 원격노동의 환경을 정비하며 노동의 영역에 있어서 꾸역꾸역 인프라를 만들어왔다. 지금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노동’의 영역에서 만큼은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제 ‘여가’의 영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듯하다. 코로나 속에서 살아남는 것에 적응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재정비할 여가에 대한 욕구를 다시금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공포 속에서도 일을 포기할 수 없었듯이 이제 여가도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전국적인 팬데믹 상황 속에서 여행이라는 여가 활동, 특히 국제적인 여행은 크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여행에 대한 욕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향유의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이라는 국가. 더 정확하게는 한국이라는 ‘콘텐츠’를 추구하는 방식도 점점 더 다양하게 소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현재 일본 내의 대도시권에서는 시부야109, 신오쿠보, 츠루하시 등 이미 어느 정도의 집적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 한국에 대한 콘텐츠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Go To 캠페인 이후로는 그 수요흡수 반경을 더 넓히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지역이 하나 있다. 바로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하는 규슈지역이다. 상대적으로 도쿄나 오사카와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서도 한국과의 상대적 접촉빈도는 대도시권에 뒤지지 않는 지역, 그 곳이 바로 규슈이다. 즉, 한국에 대한 억압수요가 결코 적지 않으나 대도시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단이 부족한 곳이 바로 규슈이다.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한 규슈지역의 여행 억압수요

먼저 규슈지역의 여행수요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추정해보자. 일본 전체의 한국에 대한 여행 수요를 우선 들여다보자. JTB종합연구소의 아웃바운드(outbound) 일본인 여행연보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은 약 327만 명이었다. 2015년 184만 정도였던 한국 방문 일본인들은 이후 4년간 매년 약 16.5%의 증가율을 보여왔다. 저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발표한 2019년 일본 국적 출국자가 약 2000만 명이니 한 해 동안 외국을 나선 일본인들의 16.29%가 한국을 찾은 셈이다. 같은 해 동안 일본인에게 인기 있는 다른 여행대상국들을 봐도 대만 방문이 약 216만, 홍콩은 약 107만, 하와이 약 154만, 싱가포르 약 88만이었다. 2018년 통계이긴 하지만 중국을 방문한 약 269만 보다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더 많았다. 즉, 일본은 전체적으로 한국에 대하여 높은 여행수요를 가지고 있다.

이제 규슈지역을 보자. 아쉽게도 규슈지역 사람들의 이동만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를 추론해볼 수 있는 자료들은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하는 공항관리상황조사를 살펴보자. 후쿠오카공항의 경우 2010년 8237편이었던 국제선 이착륙이 2019년 1만 9654편까지 증가했다. 승객은 약 121만에서 무려 319만까지 3배 가까이 증가하게 된다. 후쿠오카공항과 같은 수준의 제2종 공항인 기타큐슈공항의 경우도 2010년 210편에 불과하면 국제선이 2019년에는 1454편까지 증가하고 승객도 약 3만 명에서 152만까지 50배 증가했다. 여타 규슈의 여객공항들도 10여 년 동안 폭발적으로 그 수요를 증가시켜 왔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표와 같다.


국제선 이착륙(회)
국제선 승객 수(명)
2010
2019
2010
2019
후쿠오카 공항
8,237
19,654
1,217,759
3,192,413
기타큐슈 공항
276
1,454
30,616
152,909
구마모토 공항
174
668
19,184
86,145
오이타 공항
143
461
14,971
52,570
미야자키 공항
286
431
33,645
49,226
가고시마 공항
365
1,653
40,255
202,272
사가 공항
4
751
170
101,832
자료: 「공항관리상황조서(국토교통성항공국)」

비단 공항이용 수요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후쿠오카시 항만공항국이 2017년 10월 발표한 <하카타항 후쿠오카 공항의 개황> 자료에 따르면 하카타항의 국내항로 이용객은 오히려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항로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2년 약 196만 수준이었던 국제선 승하객 인원 수는 2017년에는 약 325만 명에 달하게 된다. 특히 하카타항은 한-일 간의 정기 항로편이 운항되는 곳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또한 필자는 2017년 발표한 논문 「경험경제이론에 기반한 경험요소, 기억, 만족도에 관한 분석(원제: 経験経済理論(4Es)に基づいた経験要素・記憶・満足度に関する分析)」에서 부산을 방문한 일본인들의 비율과 패턴을 분석한 바 있는데, 총 외국인의 비율 중 일본인이 32%를 점하고 있었으며 이 중 두 번 이상 부산을 찾은 재방문율은 69.4%에 달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규슈지역의 통계자료들은 승하객 전체를 다루고 있다는 데이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대로 한국으로의 일본인 출국자들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높은 수준의 이용수요 증가에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함께 팽창하고 있음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특히 2019년은 무역분쟁 및 불매운동과 같은 정치 이슈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저 수치들은 더욱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들이 규슈지역과 한국 사이의 이동과 교류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며, 이동 및 교류의 늘어난 빈도는 문화적 친근성을 확보해준다는 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던 일상이 억압되면 그것은 강렬한 욕구가 되기 마련이다. 특히 규슈지역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도쿄권이나 간사이 지방에 비해 훨씬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이국이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하여 한국 음식점을 찾아가야 하지만 규슈 사람들은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을 찾아갈 수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하카타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건너가서 토요일을 즐기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배로 후쿠오카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던 곳이 규슈이다. ‘JR규슈 고속선’에서 주말을 제외하고 1년간 마음껏 하카타-부산 사이를 오가는 고속선 티켓을 5만 엔에 출시한 적이 있었다. 티켓은 삽시간에 매진되었다. 왕복에 채 2만 엔도 들지 않는 저가항공사를 통하여 주말마다 한국을 방문하던 대학생들이 필자의 제자들 중에도 여럿 있었다. 이렇듯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지역은 적채된 욕구로 인한 잠재수요들이 충분히 있는 상황이다.

의사관광 콘텐츠(Dummy Tourism Contents)의 필요성

규슈에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고민은 ‘어떤 것’을 ‘어떻게’라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먼저 한 가지 짚어둬야 하는 점은 기본적으로 콘텐츠 사업들은 어떤 특정의 단독 상품이 아니라 연계와 클러스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케팅은 물론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다. 단순히 하나의 굿즈. 또는 특정 콘텐츠의 테마 상점이나 셀렉트숍 형태의 접근은 ‘지속가능성’ 부분에서 반드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기넬리우스가 처음 주장했고 맥키와 제라스에 의해 최근 화제가 되는 ‘스토리노믹스(Storynomics)’라는 개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소비자들은 이에 반응하며 콘텐츠는 흡인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콘텐츠 상품의 다양한 집적은 일종의 ‘의사관광 콘텐츠’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즉, 직접 체험할 수는 없지만 간접 또는 가상의 체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규슈 사람들은 한국의 유명 드라마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시고 맥주 한잔에 치킨을 뜯는 장면을 봤을 때 그냥 가까운 부산행 티켓을 끊으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이태원클라쓰>를 본 일본인들이 이전 같으면 한국의 이태원을 직접 가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이런 수요를 붙잡는 것은 단순히 소비자를 확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국가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일상 수준에서의 친근함은 정치적 지형과는 다르게 특히 소비 시장에서는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의사관광 콘텐츠들은 마치 한국을 여행하는 것만 같은 ‘분위기’, ‘경험’, ‘에스닉’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도 상품이 될 수 있으며, 더하여 기존의 상품에도 후광효과를 더해주는 촉매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말 그대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상품의 이동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기념품·화장품·식품·의류 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적저작물·문화콘텐츠·플랫폼, 더 나가서는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기초자재와도 연결된다.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 파인과 길모어는 현대의 상품은 점점 더 체험과 경험이 중시될 것이라는 ‘체험경제이론’을 1998년 발표했다. 최근 수년 사이에 체험경제이론은 관광 및 콘텐츠산업 분야, 도시계획 분야 등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 이론은 다양한 체험요소들이 집적된 ‘스윗스팟(Sweet Spot)’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규슈지역에는 한국을 체험할 수 있는 이렇다 할 ‘스윗스팟’이 없다. 지금까지의 상황에 비춰서 생각해 보면 규슈지역은 물론 규슈의 중심지인 후쿠오카에도 이렇다 할 만한 콘텐츠 상품들이 없으며, 그러다보니 체계적인 집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규슈는 상당한 잠재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에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진정될 것 같지는 않으며 설사 진정된다 하더라도 국제적 이동이 다시 본래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공포를 경험한 이들에게 느껴지는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현재 상황 속에서 한국에 대한 수요를 가진 규슈의 소비자들은 그 억압된 수요를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수요에 응당 답해줘야 하는 것은 한국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를 전파하는 마케팅, 그리고 사업 간의 협업이 아닐까?

※ 이 원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