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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삶의 불멸성에 관한 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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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삶의 불멸성에 관한 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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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
메이드인댄스예술원과 윤수미 무용단 공동 주최로 이연수·윤수미의 춤 ‘BETWEEN HERE AND THEN, 여기와 그때 사이’(2020년 12월 7일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가 공연됐다. 동덕여대 무용과를 대표하는 두 교수 이연수(현대무용), 윤수미(한국무용)의 공동 안무는 10년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의 콘셉트는 심규만이 맡았고, 2008년 작 <프린세스 바리>의 일부를 동인(動因)으로 삼는다.

<PRINCESS 2020>은 ‘다큐멘터리 무용극’이다. 전작 <프린세스 바리>의 구조에 무용수 개개인의 경험이 접목되고, 각각이 바리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로 극을 이끈다. 오픈 조명에서 보았던 무대 위의 무심한 물병은 생명수. ‘삶의 불멸성’을 상징한다. <프린세스 바리>는 ‘버려진 자의 이야기’로써 버림받은 경험을 고통스럽게 끄집어내어 경계를 넘어간다. 밧줄은 버림받은 기억을 상징하고, 원작 ‘바리공주’가 보여주는 ‘삶의 불멸성’을 무용수 자신에 대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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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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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

<PRINCESS 2020>은 놀라움으로 가득 찬 인생에 대한 관조이며, 순간마다 매혹과 반감을 느끼게 한다. 스스로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 속의 자신과 조우한다. 샹들리에는 버림을 받았던 시간 혹은 공간의 표현이다. 꽃은 ‘사랑’이며 생명수와 연결되는 소중한 포인트가 된다. 강렬한 소음과 움직임은 반복적 리듬을 탄다. 느리게 단(壇)을 가로질러 중앙에 걸터앉으면, 샹들리에가 내려온다. 이연수와 무용수의 움직임, 밧줄이 섞이고, 소음이 반복된다.

출연자 차지은, 박윤지, 손 민, 조단비가 소속되어있는 메이드인댄스는 밀레니엄 이래 춤 예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국과 동양의 움직임과 전통 등에서 발견되는 독창적 표현양식을 실험하면서 서울 중심의 다양한 예술가 집단으로 성장해 왔다. 인간의 일상뿐만 아니라 원형적이고, 존재론적인 층위를 반영하는 시적 감수성을 포착해 춤, 퍼포먼스, 신체 연기로 아우러지는 피지컬 퍼포먼스(Physical Performance)로 춤 영역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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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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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

안무가는 바리공주를 빌어 자신의 절대 고독을 표현한다. 고독을 표현해내는 행위는 움직임의 반복을 통해 드러나고, 작품에서 사용된 음악은 슬픔과 쓸쓸함으로 퀼트를 이룬다. 시게루 우메바야시(Shigeru Umebayashi)의 사운드는 어두운 골목길을 스칠 때마다 느끼는 슬픔을 이식시키고, 가수 베스 기본스(Beth Gibbons)의 저음의 가창은 음울을 가중한다. 작품을 특정 짓는 요소의 하나는 장편의 과장을 상기시키는 장(場)을 가르는 막강한 소음이다.

무채색 조명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단순 공간이다. 자신을 버렸지만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생명수를 찾아 떠나는 딸 ‘바리의 여정’이 그려진다. 지속되는 철판 소리는 ‘유리창 너머의 세상’인 저승길로 향하는 침묵의 소리다. 죽음은 침묵이고 죽은 자의 ‘들리지 않는 침묵’을 소음의 근원인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대신한다. 관객이 듣는 침묵 사이로 여정이 보인다. 소음과 음악이 충돌되면 시간이 쌓인다. ‘소란과 고요’에 빠져들면서 심연 속 자신과 우연히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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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

<PRINCESS 2020>의 의상은 단순한 색(色)과 미(美)를 창출하면서 중성적 태도를 보인다. 흰색 호리전트는 이승과 저승을 가로막은 ‘유리창 너머의 세상’이며, 무채색 무대는 희미한 기억의 표현이다. 이 작품의 움직임의 모티브는 신기(神氣)가 서려 있는 ‘플라멩코’ 춤이다. 삶의 애환이 담긴 플라멩코는 버림받은 자의 삶과 닮아있다. 발동작과 손동작을 사용하여 대화할 수 있는 춤이다. 상상의 촉감으로 ‘치유’를 경험하는 플라멩코는 배달겨레의 ‘굿’과 연결된다.

일본 순정만화의 감정을 쌍끌이한 듯한 깊은 서정을 안고 대형 천이 등장하고, 꽃을 든 연인이 관객석으로 서서히 다가올 시점에 이연수가 등장하고 종(終)을 위한 대사들은 해설의 역할을 한다.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어’는 버림받은 기억, ‘이슬방울에 빠져볼거나’는 인간의 눈에는 부조리한 명부의 세계를 표현해낸다. 긴 통로는 명부로 가는 길 없는 길이다. 다시 샹들리에 아래 춤이 이어지고, 소음도 반복되지만, 전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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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안무의 'PRINCESS 2020'

이연수,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문명 비판적 철학적 명제에 심취한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 그녀는 현재적 삶과 존재, 현생 인류가 자연에 저지른 행동에 비교적 부정적이다. <PRINCESS 2020>'은 사약을 받고도 군주에 대한 충정과 조국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충신의 모습이다. 그녀는 인간의 비겁한 행위는 미워하나 인간 자체의 순수성이 회복되리라고 믿는다. 그녀의 내년 호모 사피엔스는 소음을 걷어낼지 궁금해진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