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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이성복 '느낌'과 윤용 '협롱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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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이성복 '느낌'과 윤용 '협롱채춘'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살면서 어쩌다 좋은 그림이 보이면, 옛 사람은 여백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아는 시를 옮겨 적었다. 지금 사람들이 놓치고 있거나 영영 잃어버린 ‘멋’이다. 시와 그림을 읽는 시간이 많은 시대가 나는 태평성대이고 르네상스라고, 휴식의 쉼표를 찍고자 한다

느낌 / 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윤용 '협롱채춘(挾籠採春)', 18세기,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이미지 확대보기
윤용 '협롱채춘(挾籠採春)', 18세기,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2020년 경자(庚子)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흰 쥐꼬리에 남은 코로나 흔적이 왔던 구멍 속으로 도로 바삐도 사라지길 그저 바랄 뿐이다. 1년에 두 번(봄, 가을) 전시회를 열었던 간송미술관이 내년 봄엔 아무 탈이 없이 대중에게 문을 활짝 열길 기원한다.

우리 옛 그림은 반드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훑어가듯 보라고 그랬던가. 간송미술관 연구원 출신의 미술사학자 고(故) 오주석 선생의 일침이었다. 그 덕분일까, 그것이 이젠 눈에 박혀서, 아주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윤두서의 그림은 성스러우면서 원숙하고 윤덕희의 그림은 어질면서도 원숙하며, 윤용의 그림은 신령스러우나 원숙하지 못하니 그것은 그가 젊었을 때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여기화가(餘技畵家) 다산의 말이다. 여기화가란, 요컨대 취미로 여가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이를 말한다. 말하자면 남자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대표적이고, 여자로는 5만원 지폐 주인공이기도 한 그 유명한 ‘신사임당’이 그럴 것이다.

선비 화가의 명성, 해남 윤씨 3대를 잇다


윤용(尹愹, 1708~1740)은 다산에겐 외할아버지가 되는 윤굉의 둘째 형이 된다. 다산의 친모 윤씨의 숙부인 셈이다. 윤씨의 할아버지는 윤덕희(尹德熙, 1685~1776)이고 증조부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75~1720)이다. 윤굉의 딸, 윤씨가 낳은 아들이 바로 정약용이다.

어쨌거나 ‘윤두서-윤덕희-윤용’으로 이어지는 3대의 해남 윤씨는 선비 화가 가문으로 명성이 대단했다. 그들 중에 최고의 명성을 누린 사람은 윤용의 할아버지 공재인데, 그는 겸재(정선)와 현재(심사정)와 더불어 ‘3재’로서 크게 인기를 누렸다. 양반 사회에서 회자되며 칭송을 받았다. 또 ‘3재’와 더불어 인기를 누린 선비화가로는 관아재(조영석)를 꼽을 수 있으며, 전문 화가로는 긍재(김득신)을 포함하여 조선 후기 회화사에서 ‘5재’로 빼놓기가 실은 어렵다.

그럼에도 옛 그림 <협롱채춘>을 보노라면, 나는 ‘느낌’이 강렬함에 매료된다. 그 뒷모습이 친근해서 자꾸 반한다. 스토리가 있는, 상상으로 나래가 자꾸만 펼쳐진다. 그러면서 시인 이성복(李晟馥, 1952~ )의 '느낌'을 낙서하듯 연필로 그림의 여백에다 받아 적고 싶고 동시에 느릿느릿 삐죽이며 읊조리게 된다.

윤용 '집고금화첩(集古今畵帖-협롱채춘(挾籠採春', 18세기,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윤용 '집고금화첩(集古今畵帖-협롱채춘(挾籠採春', 18세기,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윤용의 그림 제목인 <협롱채춘(挾籠採春)>의 한자 풀이를 하자면, “나물바구니(籠) 끼고(挾) 봄(春) 나물을 캐다(採)”로 옮길 수 있다. 이쯤은 되어야, 그림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다시 화면 상단 오른쪽에서 대각선으로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훑자면 흰 누비 수건을 머리에 눌러 쓴 여인이 한 손에는 날이 긴 호미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찬다. 이에 대해 간송미술관 백인산 연구실장의 설명은 쉽고 친절하다. 다음과 같다.

이른 봄, 따사로운 햇살이 겨우내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생명들을 불러일으킨다. 이맘때면 촌가 아낙네들은 나물을 캐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산과 들로 나간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나물 캐기가 별미를 얻기 위한 나들이일지 모르지만, 옛사람들에게는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고된 노동이었다. (중략) 흰 누비 수건을 머리에 눌러 쓴 여인이 한 손에는 날이 긴 호미를 들고, 옆구리에 조그만 망태기를 끼고 서 있다. 무릎께까지 걷어올린 속바지 아래로 드러난 튼실한 종아리와 들메를 한 짚신발이 야무지다. 영락없는 농촌 아낙네의 모습이다. 도회지의 맵시 있는 여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세련미는 없지만 꾸밈없는 소탈함이 정겹다.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 186~189쪽 참조)

영락없는 농촌 아낙네, 윤용의 첫사랑!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백인산 작가에 따르면, 윤용의 그림은 <집고금화첩(集古今畵帖>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림 옆에는 시서화에 정통한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가 뒤에 그림을 보고 감상평을 시로 대신했는데 그대로 여기에 소개하자면 이렇다.

비 젖은 싹 바람 맞은 잎 초록이 무성한데
雨苗風葉綠董董

고운 손 검푸른 머리 한궁(漢宮)에서 나온다
纖手靑絲出漢宮

눈앞 가득 만물이 이럴진대
滿眼蒼生總如此

차마 그림 속에서 칠하고 바른 것으로만 보겠는가
忍看塗抹畵圖中


원나라 문인 소관(邵貫)이 지은 '묵채(墨菜'를 신위가 인용한 것이라고 백인산은 책(같은 책, 192쪽 참조)에 적었다. 여기서 ‘묵채’라는 것은 ‘한련초(旱蓮草)’의 별칭이라고 한다. 참고로 한련초는 피(血)를 맑게 하고 지혈(止血)의 효과가 있으며 간장과 신장(肝腎)에 좋다고 한다. 약재로 머리와 수염을 까맣게 하는 효능과 치아를 튼튼하게 해준다, 라고 얘기한다.

소관의 시적 배경은 중국 한나라 때 미인, 왕소군(王昭君)이 궁궐에서 나와 봄철에 한련초를 캐는 모습을 상상한 것으로 보인다. 황제(원제)의 궁녀 왕소군은 절세미녀였으나, 궁중 화가 모연수가 실물을 못 생기게 그려, 흉노왕에게 시집을 간 비운의 여인이기도 하다. 백인산은 “그림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한시”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인 정지용의 명시'향수'라는 시를 인용하여 그림에 적고 싶은 소망을 책에 밝힌 바 있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부분을 인용해 적었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오히려 자하가 인용한 한시가 심금에 깊이 넓게 번지면서 닿는다. 윤용이 굳이 시골 아낙네의 뒷모습을 그린 이유가 마치 흉노왕에게 시집을 보내는 황제의 눈빛 연장선으로 그림을 그려졌다고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림 속 저 여인은 윤용의 첫사랑, 그녀(?)일지도 혹여 모를 일이다. 첫사랑 여인을 보내거나 잃어버린 남정네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앞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녀의 뒷모습만이 자꾸 눈가에 아스라이 어르는 것을.

생전에 윤용이 그림에 어울리는 제시를 적었다면 어떤 시를 골라 적었을까, 나는 이것을 상상하는 시간이 그림을 보면서 많았다. 그리하여 내가 윤용을 대신하여 고른 시는 다음과 같다.

陟彼阿丘 言采其蝱 (척피아구 언채기맹)

저 비스듬한 언덕에 올라가 그 패모(맹)라는 약초를 캐었도다, 라는 뜻이다. 고전 <시경>의 '용풍(鄘風) 재치(載馳)'에 나온다. 참고로 ‘패모’ 또한 약초인데, 꽉 막힌 기분을 풀어주고 근심을 없애주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하나 더 찾자면 이것이다.

一日不見, 如三月兮(일일불견, 여삼월혜)

하루를 보지 못함이 마치 백일(三月)이 된 것 같구나, 라는 뜻이다. 이 또한 출처가 같다. 왕풍, ‘채갈(采葛)’에 여덟 글자가 보인다. 윤용의 심정이 꼭 그러했지 싶다. 그렇다. “흰 누비 수건을 머리에 눌러 쓴 여인이 한 손에는 날이 긴 호미를 들고, 옆구리에 조그만 망태기를 끼고 서 있”는 뒷모습을 그림은 잃어버린 첫사랑, 부부의 인연으로 맺을 수 없어 다른 사내에게 시집을 보내야 하는 아픈 후회와 고통이 빚은 걸작으로 존재감이, 화가의 절제가 사뭇 돋보인다. 나는 그렇게 이 그림, <협롱채첩>을 멍하니 보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펼친 종이. 이윽고 종이 위로 눈물이 물방울로 떨어졌다. 한참을 마르지 않는다. 이에 붓을 겨우 들어, 조금은 진하게 동그라미로 봄철 나물을 그렸다. 눈물방울이 감춰졌다. 얼룩이 지고 비틀린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로 여인의 발밑으로 소담하게 싹이 오른 봄나물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그렇다. 살면서 ‘느낌’이 있는, 여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설령 만났다고 하더라도 처음은 서툴고 어리석어서 놓치고 끝내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다시 서른 즈음, 이전으로 회귀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다. 좋은 느낌을 주는 이성이 보일 때가 그러하다. ‘느낌’이란 게 생기니까, 그 ‘느낌’을 좀 아니까, 그런 거다.

서른 셋. 그 나이에 요절한 윤용은 어느 날 느낌을 참지 못해 여인의 그림을 그려냈고, 차마 앞에서 여인을 바라볼 수 없기에 뒷모습만 지켜보면서 그려냈던 것, 혹 이것이 아니었을까.

“고백하건대 이성복 선생의 시를 읽을 때만큼 시를 쓰고 싶을 때가 없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시를 쓰게 만든다.”

내가 좋아했던, 허수경 시인(1964~2018)이 쓴 신간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난다, 2020년)에 그 말이 보인다. 살면서 어쩌다 좋은 그림이 보이면, 옛 사람은 여백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아는 시를 옮겨 적었다. 지금 사람들이 놓치고 있거나 영영 잃어버린 ‘멋’이다. 시와 그림을 읽는 시간이 많은 시대가 나는 태평성대이고 르네상스라고, 휴식의 쉼표를 찍고자 한다.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 컬쳐그라퍼, 2014.

허수경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난다, 2020.

오주석 <한국의 美 특강>, 솔, 2003.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솔, 2006.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