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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모네 '수련과 일본식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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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모네 '수련과 일본식 다리'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나는 모네의 그림을 수많은 식당 창업자, 경영자가 꼭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모네의 수많은 그림에서 식당의 외부 색감, 조경의 배치, 인테리어 아이디어 등을 무상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가게의 차별화,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서다. 특히 정원이 딸린 식당, 아니면 교외 지역에서 카페 창업을 지금 구상하고 있다면 그림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여럿 얻기에 매우 쓰임새가 많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모네 '수련과 일본식 다리', 19세기, 캔버스에 유화, 미국 프린스터대학교 미술관이미지 확대보기
모네 '수련과 일본식 다리', 19세기, 캔버스에 유화, 미국 프린스터대학교 미술관


십이월의 오후 5시. 해거름에 검기울어 가는 내 방. 서재의 창가가 벌써 어둑해졌다. 형광등을 켜야 만했다. 지난 주말이었다. 나와 베프(친구) 셋은 북한강이 아름다운 ‘양평 수수카페(경기 양평군 양서면 북한강로89번길 16)’를 용케 찾았다.

우리는 카페 밖에 불터 둘레로 옹기종기 앉아서는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하염없이 ‘물멍’을 하고, 물끄러미 ‘불멍’을 즐기며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만큼이나 웃고 떠들었다. 그러면서 정신의 무지근함을 모두 한방에 날리었다. 이후 집으로 각자 돌아갔다.

아주 우연히 카페 여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카페 가까이 북한강 산책 길가엔 헐벗은 은행나무(500년)가 푸른 하늘 파란 강물 옆에 떡하니 필통처럼 붓인양 가지를 곧추세우고 있어 멋있다고.

그러면서 은행나무가 언제든 사랑하고 싶은 밤, 눈(雪)이라도 푹푹 내리는 그런 날이 오면 여기로 찾아오세요, 하면서 손짓을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그녀에게 난 말했으리라. 또한 이곳은 시시각각 일기(日氣)가 변하는 것이 수려한 산수화 겨울 풍경이 거칠고 투박한 솜씨이지만 금방이라도 쓰윽 하면서 자연(나무들)이 그려낼 것만 같아서 더욱더 아름다워 보이는 거라고. 우리는 환하고 사소하게 담소(談笑)까지 즐겼으리라.

아무튼 은행나무는 ‘사랑나무’가 되어도 좋다. 은행이 풍성하게 달리는 것처럼 아이 없는 부부가 찾아오면 자식이 생길 것만 같고,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들에겐 ‘합격나무’가 되어도 좋다. 이렇게 나무에다 전설의 스토리를 입히자, 라고 나는 카페 여주인에게 제안했던 것 같다. 그러든가 말든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면서 잠시 멍해지는 시간의 불멍. 이것이 겨울 여행의 진정한 낭만이 아닐까.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잠깐이나마 담그는 시간의 물멍은 또 어떠한가. 물을 가까이 하면 뇌가 활력을 얻어 촉촉해지는 기분이 든다. 스트레스가 물 따라가서는 곧 사라지는 내면을 조우하게 된다.

중국이 자랑하는 대시인 두보가 그랬던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편안히 앉아 있으니 아득히 흥이 난다(江流大自在 坐穩興悠哉)”라고 적었던가. 북한강이 보이는 양평 수수카페에 가면 시인이 느꼈던 흥취가 내 영혼의 바닥에 샘물처럼 괸다. 그래설까, 열 글자의 한시를 간판 빈 구석에다 내리 휘갈겨 쓰고 싶은 강한 욕구와 충동이 일었다.

산골, 외진 식당에 펼쳐진 모네 그림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白石, 1912~1995) 시인의 두 줄에서 식당 상호를 훔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산골’이란 이름을 단 식당이 있긴 있다. 전국으로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음식장사로 대박을 친 사례를 꼽자면,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가능골에 위치한 ‘산골’을 빼놓을 수 없다.

‘산골’은 미꾸라지 매운탕이 전문 메뉴로 아주 맛있어 전국에서 유명한 식당이다. 친구와의 약속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그곳을 지난 가을 찾아갔다. 딱! 한 번이다. 그럼에도 기억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곳이다. 끌림이 생겨서다.

커다란 창가. 창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다가 밖을 내다보면 서양의 화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작품 중에 유명한 그림 <수련과 일본식 다리>가 고스란히 자연에 녹아진 것이 눈에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해마다 8~10월 사이에 가면 좋을 듯하다. 그야말로 식후경(食後景) 장관이 그만이다. 아주 쏠쏠해서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이라면 마음챙김은 부가서비스 덤이 될 것이다.

미꾸라지 매운탕 한 그릇을 배가 부르게 먹고 난 뒤 식당을 나와 벗과 함께 산책하면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재미란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여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직접 가봐야 그 맛을 만끽하고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나는 모네의 그림을 수많은 식당 창업자, 경영자가 꼭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모네의 수많은 그림에서 식당의 외부 색감, 조경의 배치, 인테리어 아이디어 등을 무상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가게의 차별화,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서다. 특히 정원이 딸린 식당, 아니면 교외 지역에서 카페 창업을 지금 구상하고 있다면 그림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여럿 얻기에 매우 쓰임새가 많을 것이다.

산골로 가는 것, 팍팍한 세상 따위 말끔히 지우는 여행


정선 '단발령망금강산', 18세기, 비단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이미지 확대보기
정선 '단발령망금강산', 18세기, 비단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다시 나는 백석의 명시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옛 그림을 하나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 최고의 화가 정선의 <단발령망금강산>이 그것이다. 같은 제목을 단 비슷한 그림이 하나 더 간송미술관엔 있긴 하다. 하지만 난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이 더 좋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림 속에는 백석의 시가 일부분 나타나서 그런 거다. 참고로 미술 전문 기자 출신의 윤철규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정선 그림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을 교묘하게 섞어 놓아서 보는 사람이 그림 세계로 빠져 들어가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어. (중략) 이 그림을 봐도 그래. 나무가 많은 흙산의 고개 위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 있지. 자세히 보면 힘든 언덕길을 오른 뒤에 숨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란 걸 알 수 있지. (중략) 고갯길 중턱으로 시선을 돌리면 짐을 잔뜩 진 노새를 끌고 뒤쳐져서 올라가는 사람이 보여. 이것을 보면 누구나 저절로 ‘아, 가파른 고개인가 보다’ 생각하게 해. 그러면서 힘든 고개를 다 올라온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하게 되지. 또 갓을 쓴 사람의 손짓을 따라가 보면 구름 속의 금강산을 가리키고 있지. 이 손짓 하나로 그림을 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림 속의 금강산 구경에 따라 나서게 돼. (윤철규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76쪽 참조)

백석의 시는 당나귀를 언급하는데 윤철규의 그림 해설은 노새를 등장시켜 설명한다. 이 점이 차이점이다. 아무튼 노새는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의 잡종 동물인 셈이다. 실은 당나귀 보다는 몸집이 크고, 일반적인 말(馬) 보다는 몸집이 왜소한 것으로 보면 노새가 맞다. 그렇기에 당나귀의 지구력과 말의 발 빠른 기동성을 유전자의 장점으로 취한 것이 노새의 정체성이라고 보면 얼른 이해가 될 것이다. 때문에 그림 속의 등장하는 말은 실은 당나귀가 아닌 노새로 봄이 옳다. 노새는 먼 산길을 장시간 오르면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강점이다. 무수한 흰 바위의 금강산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단발령 정상, 평평한 땅 분지(盆地)에 오르려면 옛 조선에서는 노새가 필요했다.

노새를 타고 끌면서 양반과 머슴 십(十) 수명이 가장 먼저 전망하기에 딱 좋은 장소(단발령)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내가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하면서 손짓하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여행의 목적,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274쪽 참조)

그렇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산골로 들어가서 탁 트인 경치, 아름다운 풍경을 어쩌다 만나면 이렇듯 너나없이 외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가가 보여주는 그림과 마찬가지로 한 편의 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감동 또한 벅찰 때를 마주치게 된다. 가령 백석의 명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나타샤는 시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여성상일 것이다. 여성상은 일종의 아니마(anima)로서 남자로 하여금 심장을 뛰게 한다. 그것을 4연 19행으로 이루어진 시의 전문은 우리에게 선물한다. 이에 대해 공광규 시인의 해설은 깔끔하다. 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참고하기에 좋다. 다음과 같다.

시는 눈 내리는 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화자의 정서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출출이는 뱁새이고, 마가리는 오막살이의 평안도 방언이며, 고조곤히는 고요하다는 평안도 방언입니다. 눈의 순결성과 밤의 포근함을 배경으로 하여 세상에서 얻은 상처를 위로해 줄 정신적 공간에 대한 공경과 열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타샤, 흰 당나귀 등의 이국적 소재는 이국적인 정취를 묻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소재가 눈 내리는 밤과 어울려 화자의 간절한 정서를 표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나타샤는 화자의 실제 연인이 아니라 실제로 없는 연인을 표상하는 것입니다. 그 연인의 이름이 서양식인 것도 동경과 열망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불결한 세상에서 벗어나 산골로 가서 살고 싶은 화자와 그가 기다리는 연인, 그리고 두 사람을 소망의 장소로 데려다 줄 매개적 존재로서 흰 당나귀를 적절한 소재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공광규 <시 창작 수업>, 676쪽 참조)

한편, 백석의 대표작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의 나타샤는 조선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던 해(1936년, 25세) 가을에 교사들의 회식 장소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백석의 연인 ‘자야(子夜)’라는 인물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도 있다. 이 설이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은 백석이 27세가 되던 해(1938년) 춘삼월에 시가 완성되어 처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거의 1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시의 울림은 여전하다. 이만하면 시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나는 백석의 시를 읽으면 이백과 두보가 아닌, 맹호연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러면서 알랭 드 보통이 쓴 글이 백석의 시를 말하는 것처럼 파란이 일어나면서 심금에 겹친다.

“위대한 시인은……어느 정도는 인간의 감정을 교정해야 하네……, 사람들의 감정을 좀더 건전하고, 순수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간단히 말해서 자연과 좀더 일치하도록 만들어야 하네.” (같은 책, 191쪽 참조)

그렇다. 백석은 내 보기에 한국의 ‘위대한 시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중국 당나라 때 위대한 시인으로 흔히 이백, 두보, 왕유를 공통적으로 꼽는다. 하지만 옛 조선에서는 맹호연(孟浩然, 689~740)을 더 극찬했다. 맹호연은 권력을 탐하는 관(官), 재물을 모으려는 부(富)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은거의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선(仙)인의 내공을 갖춘 인물이었다.

관부선, 세 가지 열차를 모두 타본 사람은 없다


사노라면 누구나 관부선(官富仙) 열차에 탑승하고자 욕심을 낸다. 하지만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 역사상 실은 드물다. 거의 없다. 이 점이 중요하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장수(長壽)까지 하늘이 허락하랴. 그럴 리 없다. 또한 돈이나 권력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자와 권세를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부러움이 있다면 맹호연 같이 살고 싶다는 것.

조선의 화가이며 겸재의 제자이기도 한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명문가 자제로 태어났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조부의 역모 사건으로 가문이 풍비박산이 나자 양반 신분을 잃고 평생을 중인 계급으로 살아야 했던 기구하고 불우한 화가였다. 이 점에서 경성, 지금의 서울을 떠나 남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스스로 북으로 올라간 시인 백석은 화가 심사정과 같이 삶이 곤궁했고 불우했다.

심사정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18세기, 비단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18세기, 비단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그럼에도 타인의 시선이 그렇다는 것이지, 꼭 그들 자신이 그랬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난했지만 결코 ‘나’를 잃지 않는 작품을 우리에게 명작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남부럽지 않다고 해야 한다. 심사정이 그린 <파교심매도>는 중국 당나라 때 이름난 시인 가운데 맹호연의 고사를 밑그림으로 취한 작품이다. 맹호연은 시도 잘 짓고 식견도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관운이나 재물운이 없었다. 게다가 과거 시험도 여러 번 낙방했다. 그렇지만 자신을 불우하다고 여기지 않고 자연과 전원을 벗 삼아서 시를 짓고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다고 전한다. 그에 관한 숨은 이야기 중에 하나가 그림의 소재가 된 것이다.

파교(灞橋)는 당나라 때 수도였던 장안 근교에 있던 다리를 말한다. 말하자면 다리를 건너면 자연 산골이 시작이 되고,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면 장안의 도시가 되는 경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림을 보자. 그림에는 당나귀인지 노새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산골이 시작을 알리는 파교 앞에 도착한 말을 탄 흰 도포 차림의 선비가 보이고, 뒤따르는 동자는 긴 막대기에 잔뜩 짐을 묶어 걷는 장면이 나온다. 배경은 그야말로 눈이 푹푹 쌓인 모습이다. 이들이 깊은 산골을 찾아 여행함은 무릇 눈 속에 핀 매화꽃(雪中梅)을 가까이서 보고 감상하기 위함이다. 노새 엉덩짝을 보자면 적색의 천으로 술병이 하나, 안장(鞍裝)의 색깔로 곱게 감싸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술병에 든 술은 소주에 가까운 청주(淸酒)일 것이다. 화가 심사정은 맹호연의 고사에 빗대어 자신의 모습을 그림 속 주인공으로 투사했을 것이다. 그 심정이 화제(畵題)에 적힌 한자에 보인다. 뭐라고 적은 걸까.

화면 꼭대기 우측에서 시작되는 검정 붓글씨. ‘灞橋尋梅(파교심매)’는 말 그대로 ‘파교 건너로 매화꽃 찾기’가 되겠다. 다음 이어지는 문장 네 글자. ‘丙戌初夏(병술초하)’라고 적혔다. 병술년(1766년, 영조 42년) 초여름에 그렸다는 뜻이다. 심사정이 환갑을 한 해 앞둔 나이 60세 때에 그린 것이다.

백석. 모네. 심사정. 정선. 맹호연…


나는 백석의 시를 통해 하룻밤에 세 명의 화가를 만나고 이 겨울 맹호연과 반대로 친구 서넛과 어울려 기필코 한여름이 오면 다시 산골(식당)을 찾고자 꿈을 꾼다. 그곳에서 모네의 그림과 백석의 시를 다시 또 감상해 보고 찬찬히 읽을 것이다. 가난한 내가 행복을 즐기는 여행 방식은 대개 이렇다.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백석 시전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매직하우스, 2019.

공광규 <시 창작 수업>,시인동네, 2009.

윤철규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토토북, 2014.

김광우 <마네와 모네>, 미술문화, 2017.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여행의 기술>, 청미래, 2011.

이주향 <아모르파티>, 맥스미디어, 2020.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