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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나희덕 '방을 얻다'와 정선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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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나희덕 '방을 얻다'와 정선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그렇다. 시를 읽고 상상이 가능해지는 옛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옛 선비들과 어울리는 책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흥분이 고양되는 일이다. 그러기에 충분하다

방을 얻다 / 나희덕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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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18세기,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2002년 겨울. 그 해가 지나고 나는 처음,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되었다. 서른 즈음이다. 영주 부석사를 기어코 찾게 한 책이 손에 있었다. 최순우(崔淳雨, 1916~1984)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그것이다. 책을 밤새 읽었다. 2002년이 끝날 무렵, 또 이 책을 덜컥 잡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2012년 겨울이 되어서 다시 또 읽었을 것이다.

2020년 12월이 곧 코앞이다. 서재에서 그 책을 찾아 또 꺼냈다. 이유가 있다. 나희덕(羅喜德, 1966년~ ) 시인의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년)을 되풀이 탐독하다 '방을 얻다'에 꽂힌 탓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와 나희덕 시가 참! 희한하게도 심상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유종호(柳宗鎬, 1935년~ ) 선생이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 2019년)라는 책엔 이런 글이 보인다. 다음이 그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권면하면서 호응과 동조를 기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중략)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지음(知音)과 함께 공감을 나누는 것은 이 세상의 낙의 하나다. (중략) 우리가 시를 읽고 문학 작품을 즐기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지 작품의 제작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같은 책, 5~6쪽 참조)

앞의 유종호 선생의 글에서 나는 위안을 크게 얻었다. 그 누구라도 아니,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나와 같이 시와 그림을 통해 감정 이입과 호응, 동조와 공감을 해주리라는 막연히 기대하는 마음이 은근 속으로 치밀어 올랐다. 이 때문이다.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 깊은 한옥, <인곡유거도>

앞의 그림을 한 번 살피자. 인곡(仁谷)은 말 그대로 서울 서북쪽 성내에 있는 인왕산(仁王山)의 ‘仁’ 자와 골짜기의 ‘谷’ 자가 합쳐진 말이다. 말하자면 ‘인왕산 골짜기’ 어드메에 그림 속 마당 깊은 한옥집이 하마 있었을 터이다. 나머지 ‘유거(幽居)’라 함은 번잡한 도시의 ‘속세를 떠나 외딴 곳에서 집 짓고 사는’ 그런 청빈한 삶을 말함이다.

혜곡(최순우) 선생의 설명은 이렇다. 다음과 같다.

어디서 보았는지 지금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난날 겸재 관계 자료를 들추어 보다가 인곡이 서울 북교(北郊)의 어드메라고 생각했다. 이 그림을 보면 인왕산 기슭 어디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자하문 밖 어디구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적한 여름 산거의 그윽하고도 조촐함이 나로 하여금 언뜻 그곳에 옮아 앉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끔 해주었다. 마치 어디서 산비둘기의 구구 하는 청승맞은 울음소리가 들려 오는 듯도 싶고, 또 토담 밖으로 도란도란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해서 산거 생활의 이상이 참으로 몸에 밴 사람의 그림이구나 싶기도 했다. (중략) 먼 산은 검은 암벽으로 표현하고 가까운 산은 미점(米點)으로 표현한 숲의 바탕에 역시 암벽이 깔려 있어서 서울 북교의 산들이 지니는 생리를 잘 파악해서 그린 작품이다. 비록 소폭 그림(27.3×27.5cm)이지만 토담 안뜰에 드러난 수양버들 한 그루, 그리고 오동나무로 보이는 무성한 교목 그늘에 칡덩굴이 뻗어 나간 그윽한 뜰 안에 동창을 열고 앉아 무릎 아래 책을 펴 놓은 선비 한 사람의 모습이 말하자면 나 자신인가도 싶고 또 다른 사람이라 해도 시새울 수 없는 청정한 자세로 느껴지는 것은 도시 그림의 품격에서 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같은 책, 336~337쪽 참조)

나희덕은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으로 좁히면서 구체화하여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가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라고 적었으나 실은 풍경이 겸재의 그림 속 배경의 한옥과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고 나는 쉽게 공감한다. 시적 풍경이 그림과 매우 비슷함이 역력하다.

나는 그림 속 사방관을 쓴 아저씨에게 불쑥 다가가서 나희덕이 그런 것처럼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라는 식으로 말을 걸고 싶었다. 그러면 금방이라도 “방을 한 칸 빌려주는 것은 어렵고 하룻밤 묵는 것이야, 괜찮소만”하고 점잖게 선비께서 응답해 줄 것만 같다. 그렇다. 시를 읽고 상상이 가능해지는 옛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옛 선비들과 어울리는 책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흥분이 고양되는 일이다. 그러기에 충분하다.

나희덕 시의 모성적 따뜻함

맨 앞에 소개한 '방을 얻다'라는 시의 전문은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년)에 보인다. 이 좋은 시를 나는 참, 여러 번 되풀이 읽고 또 겹쳐서 읽었다. 특유의 모성적 따뜻함이 스며드는, 인정이 뿌듯한 느낌을 전달해주는 이 시만의 매력 때문에 그랬지 싶다.

어찌 보면 짧은 단편(23쪽) 이야기, 소설 같다고나 할까. 숫돌에 낫을 갈고 있는 아저씨는 어느 종갓집 차남 같기도 하고, 머릿수건이 촉촉한 아주머니는 가문의 사당에 격식을 갖춰서 절을 올린 며느리(한자 ‘安’ 자의 속뜻)로서 인물상이 얼핏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 구수한 사투리(“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와 또 만나게 되면 빙그레 연신 입가에 미소가 맴돌게 된다. 아울러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라는 부분에서 안채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반전이 일어나는 부분에 닿으면 거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고 끈덕지게 수용하면서 따스하게 감싸며 껴안으려는 시적 화자의 마무리가 긴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부러 쉼표(,)을 찍어서 독자로 하여금 시의 이야기를 경청하도록 만드는 이 부분이 참으로 압권이다. 하물며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라는 화자의 넉넉한 그 마음씨가 “수더분한 꽃들”의 향기처럼 운치가 있어 정겨워 보인다.

시 속에 등장하는 한옥에 안채, 혹은 별채엔 어쩌면 이런 기막힌 대련의 글이 적혀 있을지도 혹 모를 일이다. 다음이 그것이다.

방은 운치가 있으면 그만이지 어찌 꼭 넓어야 하며

꽃은 향기가 있으면 그만이지 많은 필요가 있겠는가

室雅何須大 (실아하수대)
花香不在多 (화향부재다)

나희덕 시에 등장하는 한옥의 분위기와 마당 꽃들의 모습에서 그 집의 문이나 기둥에다 나는 써 붙이고 싶었다. 열 글자의 한자, 대련(對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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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독서여가도(讀書餘暇圖)', 18세기, 비단에 채색, 간송미술관


은자의 산거 생활, 마루 위에 앉아 계신 ‘그’의 청빈(淸貧)

겸재 정선의 그림, <독서여가도>는 우리에게 꽤 친숙한 작품이다. 나는 기실 학창시절, 저 그림에 그닥 감흥이 없었다. 나이 오십이 넘고 예순이 가까워지는 이제야 저 그림이 던져주는 울림이 실로 깊고 넓음을 겨우 알겠다.

<독서여가도>는 우리 보물 제 1950호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간송미술관) 상권 맨 처음에 나온다. 여기서 ‘첩(帖)’은 ‘화첩(畵帖)’을 뜻한다. 화첩이란 ‘그림을 엮은 책’이란 얘기이다. 따라서 경교명승첩은 한양과 한강을 중심으로, 인근 교외의 명승지를 담은 정선의 그림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관련, 2017년 가을. 서울 간송미술관에서 ‘정선 필 경교명승첩’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그때엔 내가 미숙하여 직접 감상할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끝나고 기회가 또 올 것이다. 그러면 꼭 직접 가서 감상할 것이다. 얘기가 좀 빗나갔다. 다시 앞의 그림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미술사 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는 탁현규의 저서 <그림소담>(디자인하우스, 2014년)에서 정선의 <독서여가도>를 잘 설명한 글을 또 마주친 적이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사방관에 중치막 차려입은 노년의 선비가 쥘부채를 쥐고 송판 툇마루에 앉았다. 선비는 청화백자 화분에 활짝 핀 연보랏빛 작약 한 송이에 마음을 빼앗겼다. (중략) 삿자리가 정갈하게 깔린 방 안에는 커다란 책장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책이 잔뜩 쌓여 있다. (중략)
손에 쥔 부채에도 수묵산수화가 담겨 있다. 조선 선비들은 글과 그림과 함께 노닐어도 언제나 현실을 알았다. 좋은 종자를 얻어 예쁜 화분에 비옥한 흙 채워 심고 때맞춰 물 주고 가꿔 솟아오르는 꽃대에서 참 삶의 소중함을 경험했다. 그리고 말없이 피어오르는 생명의 아름다움도 생각했다. 이것이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독서인이 걷는 삶이고 걸어야 할 삶이다.
(같은 책, 24~26쪽 참조)

나는 <독서여가도>라는 그림을 다시 살피면서 <인곡유거도>의 부록으로, 혹은 안채가 아닌 별채로 상상했다. 기와의 지붕이 아닌 초가의 지붕에서, 은퇴한 늙은 선비(정선의 자화상)가 자기 방에서 독서하다 말고 짬을 내어 햇살 좋은 마당을 향한 툇마루에 비스듬히 앉아 그윽한 시선으로 작약 꽃을 감상하는 시간이 정말 남부럽지 않게 느껴진다. 아, 저것이 은자의 산거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시나브로 나도 모르게 ‘그’가 사는 열린 대문 안으로 바짝 다가서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정갈한 툇마루 아래 놓인 가죽신에 내 발이 들어가는 착각을 할 정도로 마음으로는 이미 나는 시와 그림 속에서 세들어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다산 정약용은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본 듯한 ‘은자가 사는 법’을 제자 황상에게 글로 보인 적이 있다. 다음과 같다.

장소는 경치가 좋은 곳을 골라야 한다. 그러나 강을 낀 산은 시내가 있는 산만 못하다. 동네 입구에는 높은 암벽이 있고, 조금 들어가면 확 터져 눈이 즐거워야 복지(福地)라 할 것이다. 가운데 자리 좋은 곳에 초가집 서너 칸을 지어라. (중략) 문미(門楣)에는 옆으로 길게 된 담묵의 산수화를 붙이고, 문 곁에는 고목(槁木)과 죽석(竹石)울 그려넣거나 짧은 시를 써넣어라. 방안에는 서가 두 개를 놓고 1300, 400권의 책을 꽂아라. (중략) 책상 위에는 <논어>1권을 펴놓고 곁에는 질 좋은 배나무로 만든 탁자 위에 도잠(陶潛), 사령운, 두보, 한유, 소식, 육유의 시와 중국의 악부(樂府), 그리고 역대 시집 등 몇 질을 올려놓아라. (중략) 담장 안에는 갖가지 화분을 놓는데, 석류·치자·백목련 같은 것을 각각 품격을 갖추어 놓되 국화는 가장 잘 갖추어야 한다. (중략) 집 뒤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용이 휘감고 범이 움켜잡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야 한다. (박철상 <서재에 살다>, 245~247쪽 참조)

제자 황상에게 스승 다산이 하는 설명이 마치 겸재 정선의 두 그림 <인곡유거도>와 <독서여가도>를 코앞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 그림 같아 보인다. 나희덕 시인이 한때, 마흔 가까운 나이에 이르러서 전남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에 방을 얻고 싶었던 그 한옥의 마당이 점점 더 귀해지는 시대를 우리 사회가 맞이하고 있다.

마당 깊은 한옥. 그곳이 이제 카페가 되고, 스몰웨딩 예식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렇지만(그라제마는) 집안 내력이 짓든 데라서 외지인에게 팔지 않고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한옥을 고수하려는 며느리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작고 하찮은 것들로 치부되었던 상식은 곧 깨질 것이다. 작고 하찮은 것들이 이젠 ‘아름답다’라고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나희덕의 시에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 한쪽 구석진 곳에는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등장하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으며 서서 기다릴 것이다.

나나 너나 다람쥐처럼 드나들거나 혹은 하루빨리 그곳으로 찾아오길 기다리며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으면서 빙그레 우리들을 맞이할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세상일에 집착하지 말고 내 방에서 시와 그림을 통해 그저 은일(隱逸)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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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사, 2004.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02.

탁현규 <그림소담>, 디자인하우스, 2014.

박철상 <서재에 살다>, 문학동네, 2014.

시라카와 시즈카, 심경호 옮김 <문자강화 1>,바다출판사, 2008.

유종호 <작은 것이 아름답다-시, 깊고 넓게 겹쳐 읽기>, 민음사, 2019.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