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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허수경 ‘저녁 스며드네’와 이유신 ‘행정추상(杏亭秋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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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허수경 ‘저녁 스며드네’와 이유신 ‘행정추상(杏亭秋賞)’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마음 동그라미, 단추를 ‘미움’으로 닫아서는 안 된다. ‘사랑’으로 열어야만 한다. 그것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아주 천천히. 시간을 두고서. 그리고 저 원망의 시작이 내 마음이 먼저 시킨 것인지, 남이 꼬드긴 것인지 하나씩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이다

저녁 스며드네 / 허수경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

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

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

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

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

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

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빛 아래 그렇게 그렇게

스며드는 저녁, 저녁 스며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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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신 ‘행정추상(杏亭秋賞)’, 18세기, 종이에 담채, 개인소장.


허수경(許秀卿, 1964~2018)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 2005년)에 그 서늘한 시가 보인다. 어쩐지 소리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냄새(고기 타는)도 좀 난다. 급기야 허기가 진다. 자꾸 나는, 입맛을 다진다. 여하튼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저녁을 들어 올리고 싶어진다. 흥을 일으킨다. 시에서 오감이 만져진다. 스민다. 괸다.

허수경은 “한 편의 시가 쓰일 때마다 새 언어, 새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은 좋은 시인이었다. 한국영화 <취화선(醉畵仙)>(2002년)에서 주인공 오원(吾園) 장승업(배우 최민식)이 그랬던가. 노안도를 그려달라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탁을 일언지하로 “환쟁이에게 반복은 끝이다”라고 아마 말했을 것이다. 이는 허수경의 말과 서로 통한다. 의미하는 바, 다르지 않다. 이 때문이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 사랑의 ‘○’

우리들 마음에 괴는 동그라미는 참 많다. 긍정적인 에너지로는 희망, 소망, 사랑, 애정, 우정 등이 있다면 부정적인 에너지로는 절망, 원망, 미움, 이별, 아픔 등이 존재한다. 우리말로 쓰자면 동그라미 ‘o'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앞으로 또 살아가면서 사고팔고(四苦八苦)에 점점 더 익숙해질 것이다. 누구든지 예외는 없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를 무릇 만나게 되어 있어서다.

더욱이 연인 혹은 가족 사이의 ‘애별리고(愛別離苦·사랑함에도 이별해야 되는 고통)’는 우리를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고통)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종종 아파하고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허우적대는 것이다. 또한 ‘원증회고(怨憎會苦·원망하고 증오함에도 만나 부부, 가족, 형제, 친구가 되는 고통)의 삶에 이르게 되면 개판의 막장 드라마를 마구 쓰게 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마음 어느 동그라미’의 실체 모습이다. 그 중 하나, 긍정의 최고는 ‘사랑’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를 만나고 그와 헤어진다. 또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녀에게 다가서거나 그녀에게 다가와 어느 날엔 상처주고 아프게 한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 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 사랑이 있는, 저녁은 상상만 해도 행복이 스민다.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 즉 사랑이 안개처럼 슬근슬근 다가와 ‘나’를 동그랗게 안아주는 저녁은 그래서 과거 혹은 미래엔 꼭 있어야 한다. 설사 그 저녁이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빛 아래 그렇게 그렇게/ 스며드는 저녁, 저녁 스며드”는 때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늦가을일지라도.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는 아무도 내 곁에 없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단적으로 가리킨다. 그래서 어디에도 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고립의 적막함과 고독함은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원망을 낳게 한다. 스스로 타인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높은 담을 쌓거나 멀어지는 거리감을 치도록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한국영화 <궁합(宮合)>(2018년)에서 극중 송화옹주(배우 심은경)이 아버지에게 울면서 한 말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하기 싫다는 뜻이다. “그놈의 사랑이 뭣이 중요하데~”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이미 꼰대이고 늙은이가 아닌 낡은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궁(宮)은 ‘집 궁’으로 읽는다. 합(合)은 ‘합할 합’이란 뜻을 가진다. 따라서 소위 ‘궁합’이라고 하는 것은 ‘집이 합쳐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성의 심장에는 그 여자의 집이 들어 있어야 하고 여성의 심장에는 그 남자의 집이 들어 있어야 부부(人)로 하나(一)가 되어 속궁합(口)이 들어차서 잘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부만 그런 게 아니다. 친구 사이도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이 점에서 가족 관계도 예외일 수 없다. 서로 같은 모양의 집(宮)을 이상적으로 꿈꾸고 있어야 다 같이 더불어 잘 살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우리’가 되는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벗이 있기에 “살아남아 고기를 굽”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 가족, 친구의 관계는 한 줄기 빛이 되고, 따뜻한 불이 되어 어둠을 밝힌다.

잎들은 와르르, 은행나무 정자에서 늦가을을 감상하다

허수경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조선 후기에 주로 활동했다는 여항문인이자 화가인 이유신(李維新, 생몰년 미상)의 <행정추상도(杏亭秋賞圖)>와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행정추상도>를 보면 정자 안에 벗들이 모임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자 한쪽 구석에 술상이 보인다. 멀리 지금의 서울 부암동 일대를 차지하는 북악산 성곽이 옅은 먹으로 나타나고, 정자 주변 울타리엔 국화가 무더기로 피어 있다. 은행나무 맞은편에 단풍나무가 거하게 취한 친구들의 얼굴보다 더 붉어져 있다.

화면 위쪽, 단풍나무 가까이 화제시가 시작되는 부분에, 계란 모양의 붉은 양각의 도장이 찍혔다. 도장에 새겨진 글씨는 무엇일까. 이는 미술평론가 손철주가 쓴 명저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김영사, 2016년)에 따르면, ‘부족위외인도야(不足爲外人道也)’라고 한다.

해석하자면, “바깥세상 사람들(外人)을 위하여(爲) 이곳을 말(道也)하지를 말라(不足)”는 그런 내용이다. 얼마나 풍경이 기막히게 좋고 무릉도원처럼 보였으면 저런 볼썽사나운 글귀의 도장을 새기고 찍었던 것일까? 하여간 일곱 글자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가 그 출처이다. 나머지 도장 하나은 국화 위에 보인다. 그 위로는 네 글자의 한자, ‘행정추상(杏亭秋賞)’이 적혀져 있다. 이는 ‘은행나무 정자에서 가을을 감상하다’라는 뜻이다.

손철주의 설명은 이렇다.

아래 찍힌 도장을 볼까요. “왕래무백정(往來無白丁)이라. 오고 가는 사람들 중에 백정은 하나도 없다.” ‘흰 백’ 자에 ‘장정 정’ 자를 썼는데, 백성(百姓)과 똑같은 말입니다. 그러니 “오고 가는 사람들 중에 백성은 하나도 없다”, “전부 다 많이 배우고 떵떵거리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풍류를 아는 놈들만 이 자리에 있다”, 뭐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이런 도장을 저렇게 천연스럽게, 그림을 그려놓고 자기들끼리만 알자고 도장을 탁 찍어놓았습니다. (같은 책, 150쪽 참조)

一間城下屋 (일간성하옥)

寒菊耐秋風 (한국내추풍)

采采霜楓葉 (채채상풍엽)

染來兩頰紅 (염래양협홍)

한 칸짜리 북악산 성벽 아랫집

갈바람에도 가을국화는 피어나네

화려하구나(은행나무), 서리 맞은 단풍나무

(술기운이 올라)참석한 이, 벗들의 두 뺨까지 빨갛게 물들이네

그림 속 제화시 내용을 보자. 오언절구이다. 총 스무 글자. ‘천원(泉源)’이라는 아호를 쓰는 사람이 즉흥적으로 쓴 것으로 추측이 된다. 우리말의 번역은 내가 직접 했다. 이 오언절구에서 가장 중요한 한 글자는 ‘래(來)’ 자에 있다. 은행나무 정자에는 여섯 명이 올랐다. 친구의 초대로 온(來) 것이다. 그들의 면면은 아주 가까운 사이, 벗들일 것이다.

하지만 정자 난간에 기대어 울타리가 국화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두 노인을 보자. 그들의 표정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혹여 먼 곳으로 떠나간, 그래서 올(來) 수 없는 친구를 그리워하며 아픔을 견뎌내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얼굴의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갈바람 불고 가을에 국화가 피면 이승을 떠난 친구가 그리워지는, ‘한국내추풍(寒菊耐秋風)’이란 시구엔 그런 애틋한 마음이 견디고(耐) 있음이다.

우리 첫 눈 오는 날, 모이자. 눈 속에서 고기 먹자

옛 그림을 보면 우리 나무로 정자나무로 쓰임새가 좋은 은행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참 많이 보인다. 조선 후기의 서화가 임득명(林得明, 1767~ ?)은 겸재(謙齋) 정선의 문인으로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고 한다. 그의 아호가 송월헌(松月軒)이다. 송월헌 임득명이 그린 <설리대적>이란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을 두고서 손철주는 ‘맛있는 그림’으로 평한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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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득명 ‘설리대적(雪裏對炙)’, 18세기, 종이에 담채, 삼성출판박물관.


옛 사람의 호(號) 짓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 방향을 좇는다. 하나는 자신이 사는 곳의 지명을 취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주소지와 흡사하다. 나머지 하나는 집을 짓고 집의 이름을 붙이는데 그것을 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는 아호(雅號)로 쓰인다. ‘아호’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기 위한 자기 닉네임이다. 가령 ‘겸재’ ‘현재’ ‘단원’ ‘혜원’ 등이 그렇다. 보통 아호는 스승이 짓거나 친한 친구, 아니면 본인이 직접 짓기도 한다. 영화 <취화선>에서 보니, 장승업의 멘토 김병문(배우 안성기)이 ‘오원’이라는 한자를 세 가지 준비해 아호를 정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장승업은 ‘오원(吾圓)’이라는 아호가 맘에 들어 선택한다.

집을 짓고 이름을 붙이는 것을 흔히 ‘당호(堂號)’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쓴 ‘매월당(梅月堂)’이란 당호는 누구나 선비라고 한다면 부러워할 만한 조선의 대표적인 브랜드 네이밍일 것이다. 율곡 이이의 모친, 신사임당의 ‘사임당(師任堂)’이란 당호 또한 여자들이 몹시 선망하는 대표 당호일 것이다. 명문가 양반가, 안뜰의 집은 남편의 사랑채 당호가 붙고, 뒤뜰의 집은 부인의 안방 당호가 붙여진다.

사설이 길어졌다. 다시 그림 속으로 돌아가 보자. 그림의 배경을 이루는 사랑채에 심은 나무가 그야말로 솔밭(松林)으로 마당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채 지붕은 모옥(茅屋)으로 뒤로는 산이요, 앞으로는 실개천(옥계천)이 흐르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이지 싶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창(窓)이 넓은 집은 보통 당호를 지을 때 끝 자로 ‘헌(軒)’를 쓴다.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軒’이라는 글씨가 보이면 꽤 넓은 통창 구조를 가진 사랑채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림 속 모옥은 임득명의 집일 것이다. 당호는 ‘송월헌’이고. 한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 몇몇 친구끼리 약속이 사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고기 구워 먹자고 말이다. 커다란 창가에 성인 남자 십여 명 남짓 모임을 가진 것 같다. 오로지 ‘설리적(雪裏炙)’을 먹기 위해서. 눈길을 뚫고 먼 곳에서도 벗이 찾아왔을 것이다. 이와 관련, 손철주의 설명은 이렇다.

임득명도 중인 계급으로, 인왕산 아래 옥계천에 사는 중인들과 함께 시 모임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옥계시사(玉溪詩社)’라고 하는 그 모임. (중략) 열세 명의 중인이 1년에 열두 번을 모였는데, 이 시 짓는 클럽이 34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중략) 그 모임의 서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장기와 바둑으로 사귀는 모임은 하루를 가기 어렵고, 술과 여색으로 사귀는 모임은 한 달을 가기 어렵고, 잇속을 따져서 모이는 모임은 1년 가기 어려우니, 살아서 평생 갈 수 있는 모임은 문장을 남기는 모임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인간다움과 고격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인문적 향기와 예술적 풍아가 물씬한 그런 모임. 그것이라면 평생을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같은 책, 151~153쪽 참조)

앞에서 두 편의 그림을 본 이유가 있다. 허수경의 <저녁 스며드네>라는 시의 전문이 풍기는 격조와 아취가 ‘아름다운 모임(雅集)’으로 내게 읽혀지고 심금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주’유천하, 내가 꿈꾸는 벗들과의 여행

40여 년 세월을 함께 한 초등학교 반창 친구들과 국내 ‘주’유천하를 꿈꾸고 있다. 전주는 다녀왔다. 다음은 경주를 계획 중이다. 전주·경주·진주·영주·상주·공주와 같이 ‘주’ 자가 붙은 도시는 낮은 한옥과 유림의 냄새가 여전하다. 논산·마산·울산·오산 등의 ‘산’ 자가 붙은 도시도 한학과 유학의 고장이 덜 퇴색되어 있어 여행을 가면 옛 그림의 풍경이 곧장 펼쳐진다.

“도시 문화는 역사나 기억의 퇴적 위에서 자란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 )가 쓴 <건축을 꿈꾸다>(안그라픽스, 2012년)에 ‘매우 인상적인 글’이 등장한다.

일 년에 열두 번. 아니다. 사계에 한 차례. 가까운 벗들과 함께 ‘주’유천하를 누비면서 늙어가고 싶다. 이미 사십에서 오십 때에 우리나라 성인은 노안(老眼)이 벌써 찾아오고 있다. 나 또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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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창 ‘월야노안(月夜蘆雁)’, 16세기, 종이에 먹,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


옛 사람들은 그림 속에 갈대(蘆)와 기러기(雁)를 통해서 자신의 노안(老安)이 평안해지길 기원했다. 권력과 명예, 부와 성공을 거머쥔 양반일수록 사랑채 벽면에 <노안도(蘆雁圖)> 그림 한 폭을 걸기 욕심을 냈다. 그런다고 노년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엔 신사임당의 장녀이자 율곡 이이의 누나 이매창(李梅窓, 1529~ )이 그렸다는 한 폭의 <월야노안도> 그림이 있다. 벗들과 헤어진, 저녁 보름달 뜬 날이면 나는 기러기 한 마리가 되어 무거운 가슴으로 고개를 든다. 보고 싶은 친구가 생각나서 자꾸만 그리운 것이다.

마음 동그라미, 단추를 ‘미움’으로 닫아서는 안 된다. ‘사랑’으로 열어야만 한다. 그것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아주 천천히. 시간을 두고서. 그리고 저 원망의 시작이 내 마음이 먼저 시킨 것인지, 남이 꼬드긴 것인지 하나씩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노년이 평안해지려면…그리움의 보름달을 안고 홀로 잠드는 저녁이 지금 그렇게 동그랗게 나를 안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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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허수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2005.

허수경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난다, 2020.

손철주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김영사, 2016.

안도 다다오, 이규원 옮김 <건축을 꿈꾸다>, 안그라픽스, 2012.

탁현규 <사임당의 뜰>, 안그라픽스, 2017.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