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연해주 진출 우리 영농기업, 현장을 가다

공유
0

연해주 진출 우리 영농기업, 현장을 가다

- 2018년 현대농장 인수한 롯데상사, 성공적으로 현지 경영 안착 -

- 연해주지역, 해외영농진출 중 가장 성과 높고 진출 전망 여전히 밝아 -




10월 말, 러시아 연해주의 끝도 보이지 않는 들판에는 대형 콤바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콤바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탈곡을 마친 콩 껍질이 쌓였다. 대형 트럭들은 콤바인이 수확한 콩들을 실어 나른다. 연해주의 황금 들녘에는 아침부터 저녁 해가 지기까지 대형 기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루 수확 면적은 약 400~450ha(약 120만~135만 평)에 달한다. 수확 기간에는 주말도 없이 움직인다고 했다.

연해주 롯데농장의 수확 장면
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KOTRA 블라디보스톡 무역관 촬영

KOTRA 블라디보스톡 무역관은 연해주 롯데상사 농장의 수확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는 러시아 농업진출 대표주자인 롯데상사의 땀과 미래가 보였다.

롯데상사 연해주 농장의 현재


롯데상사는 현대중공업이 2009년부터 운영해 왔던 연해주 농장을 2018년 인수했다. 현대중공업은 핵심분야에 집중하자는 경영방침을 세우고, 2017년 비핵심 분야에 해당하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호텔과 농장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이 착실하게 경영을 해왔고, 핵심 기술인력들도 그대로 인계받을 수 있었던 롯데상사는 2018년 성공적으로 연해주 농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롯데상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하롤에서 제1농장, 미하일로프카 지역에서 제2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 파트너사와 함께 약 2만ha의 경작지를 확보했고, 이 중 1만 2500ha의 땅에 콩과 옥수수, 귀리를 재배한다. 안양시 면적의 약 2.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지난 해 기준 콩 생산이 12,000톤, 옥수수가 11,000톤, 기타 1,500톤으로 총 2만4,500톤을 생산했다.

롯데상사 농장의 위치

주: 주황색 점은 경쟁사 농장의 위치
자료: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

4월부터 파종을 시작해 9~11월 수확을 한 후에는 정선 프로세스를 거친다. 원료를 넣으면 원료정선기, 풍력석발기, 건식세척기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색채선별기를 통해 색별로 분류를 한다. 이렇게 정선작업까지 마치면 제1농장과 제2농장에 위치한 사일로(곡물보관장소)에서 출하 전까지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면서 보관한다.

롯데상사 농장의 영농 일정
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

인수 후 2년이 지난 지금, 롯데상사의 최원보 법인장은 “롯데그룹의 밸류체인 내에서 연해주 농장이 자리를 잘 잡았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옥수수는 국내로 들여와 삼양사 등으로 공급하고, 삼양사가 이를 전분당으로 제조하면 다시 롯데칠성, 롯데제과 등이 이를 활용해 음료와 과자를 생산한다. 대두는 현지에서 판매하거나 중국으로 수출하고 일부 물량을 국내로 들여와 된장, 간장 등 장류와 두유를 만들고 있다.

작년부터는 연해주 농장에서 생산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상품의 가공과 생산은 국내 어깨동무협동조합이 보유한 해썹(HACCP)인증 공장에서 진행했다. 이 두부는 저렴한 가격에 고소한 맛으로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다. 한국의 소비자들 사이 GMO이슈 등에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한 국내 언론에서는 어깨동무 연해주 콩 두부는 상품의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료의 재배부터 수입, 제조와 판매까지 전 과정의 시스템화를 구축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하였다.

어깨동무 연해주콩 두부

자료: 롯데쇼핑

롯데상사 연해주 농장의 미래


롯데상사는 올해 경작면적을 약 25% 늘렸다. 작년까지 1만ha만 경작했던 것을 올 해 파트너사의 유휴 경작지 추가 확보와 기타 경작지 추가 매입 등을 통해 12,500ha까지 확대한 것이다. 꾸준히 주변 농지를 실사하고, 경지정리가 잘 된 땅을 매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서 연해주 정부와 극동투자수출지원청과도 면밀히 협력하고 있다.

한편, 판로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 동안 러시아 내수 판매에만 머물렀던 것에서 2018년부터 중국에 수출하고, 한국에도 들여와 가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과거 대부분 러시아 내수에만 의존했지만 지금 현재 내수 판매는 10% 미만이다.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에 따르면, 현재 생산되는 곡물 중 내수 판매는 7%에 불과하며, (러시아 딜러를 통한) 중국 수출이 64%, 한국으로의 반입이 29%이다, 향후에는 일본 수출도 추진 중이다.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의 판로

자료: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

물론 롯데상사가 러시아에서 영농 사업을 추진하면서 애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연해주 수출항에 곡물터미널이 없다는 점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개발 목적이 군사항이었기 때문에 부산항처럼 넓은 배후단지가 없다. 이 때문에 상업적이 터미널이 부족하며, 곡물 선적을 위한 특별 시설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롯데상사는 수출 선적을 할 때마다 원시적인 방법으로 4~5일에 걸쳐 배에 싣고 있다. 이 기간 대형 선풍기를 이용해 곡물의 습도를 유지하는 것도 여건 고역스러운 작업이 아니다. 이렇게 선적한 곡물이 인천이나 부산항에서는 4시간 정도 하역작업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인프라가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수출 항구의 인프라가 개선될 경우 롯데상사 러시아 농장의 미래상은 현재 상상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그래서 일리가 있다.

또한 위기 때마다 러시아 정부가 꺼내 드는 수출제한 조치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러시아 정부는 국내 곡물가 안정을 위해 대두 수출을 금지하고, 옥수수 수출 쿼터제를 도입했다. 다행히 우리 정부와 힘을 합쳐 슬기롭게 대처했지만, 이런 제한조치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러시아 농업 진출 전망, 여전히 밝아


우리 기업들의 해외 농업 진출은 2007~2008년 세계적인 곡물 파동이 있는 직후 시작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쌀 자급률이 100%를 넘었던 덕에 큰 화는 면했지만, 사료용 곡물 수입이 거의 100%에 달했던 우리나라도 곡물 파동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었다.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약 30개국 가까이 농업 진출을 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곳은 단연 러시아 연해주 지역이다. 16개사가 진출해 지금 10개사 남았다. 생존율이 60%가 넘는다. 전체 해외 진출 영농기업의 평균 생존율이 35%인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처음 진출했을 당시에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낮은 생산성, 대규모 경작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고생했지만, 시행착오를 이겨내며 해외 영농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해외농업 진출 생존율
지역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남아시아
동남아시아
기타(남미 등)
진출기업(개사)
16
17
43
92
19
생존기업(개사)
10
4
14
28
10
생존율(%)
62.5
23.5
32.6
30.4
52.6
자료: 해외농업자원개발협회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농업 경쟁력이 다른 지역 대비 높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기후 온난화로 농업에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고 있는 데다, 러시아 정부도 극동러시아 개발에 대해 적극 지원하면서 도로 확충 등 인프라가 개선되고 있는 점은 희망적이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배추나무 등 우리나라 강원도에서 재배되던 고랭지 작물의 대체 재배지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해주 진출 한국 영농기업 현황
기업명
진출연도
농지확보(ha)
영농작물
아그로상생
2008
16,000
밀, 콩, 벼, 기타
남양
2009
2,094
콩, 귀리
바리의꿈
2009
60
콩, 메밀, 보리, 귀리
팜스토리
2009
11,894
콩, 옥수수, 귀리
롯데상사
2009
22,500
콩, 옥수수, 귀리
아로
2009
3,586
밀, 콩, 보리, 귀리
피오네르보스토카
2013
240
양상추, 배추
포항축협
2013
3
귀리, 조사료
루까보트
2018
552
양상추, 단호박, 양파
주 : 팜스토리 - 서울사료
자료 : 한국농어촌공사 연해주 영농지원센터 취합 자료 현행화

향후 진출기업을 위한 전문가 의견


최초 연해주 지역 영농 진출에 많은 기업들이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이유는 대규모 농업에 대한 지식 부족이었다고 지적한다. 연해주 영농지원센터는 극동지역에서는 한국과 같이 노동집약적인 농업이 아니라 광대한 면적의 조방농업을 해야 하므로 농업의 개념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의 최원보 법인장도 “연해주 농업은 장치산업이며, 공정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한국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마트팜 기술의 무차별적인 적용도 경계해야 한다. 굉장히 넓은 면적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드론을 통한 농약 살포 등이 필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장은 “여기서는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는 게 비효율적이다. 지형이 미국처럼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드론으로 고르게 살포하기 어렵다. 그리고 바람도 많이 불어 드론을 띄우기도 쉽지 않다. 또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국경수비대에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한국산 농기계보다는 러시아산 혹은 글로벌 기업의 대형 농기계가 적합한 것도 간과하기 쉬운 항목이다. 한국산 농기계가 전자식에다 최신식이지만 소형이라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연비가 떨어져도 러시아산 농기계를 장기 저리 리스로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재배 품종도 살펴야 한다. 과거 연해주에서 쌀 농사가 주목받는다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이야기다. 농업용수의 사용료가 없는 우리나라에 비해 연해주에서는 일정 금액의 농업용수 사용 비용을 징수하고 있다. 이는 벼농사에 장애 요인이다. 또한 극동지역은 토지가 넓어 수리시설을 이용하여 용수를 공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파종 후 천수 전의 형태로 운영이 가능한 작물이 적합하다. 이 때문에 연해주에서는 항카호수 근처 일부 지역에서만 벼농사를 짓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대두와 옥수수가 주요 작물이다.

롯데상사 러시아법인 제2농장의 사일로
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KOTRA 블라디보스톡 무역관 직접 촬영

롯데상사 러시아 법인 제2농장의 사일로와 정선작업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갑자기 궁금해 물었다. 법인장은 매일 이 먼 길을 출퇴근하고 농장을 둘러보는지. 법인장은 “신차를 뽑은 지 2년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주행거리가 16만km이다.”라며 답했다. 마지막 인사로 나눈 악수에서 더욱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자료: 롯데상사 러시아법인, 한국농어촌공사, 해외농업자원개발협회, 롯데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