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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법인카드’ 긁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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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법인카드’ 긁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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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는 대쪽 같은 선비였다.

신채호는 나라가 망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의 중화보(中華報)에 논설을 썼다. 그 원고료로 ‘호구지책’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의(矣)’라는 글자 하나가 빠지고 말았다. 신문사에서 한 글자 정도는 지워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 임의로 삭제한 것이다.

자존심 상한 신채호는 즉시 집필을 중단해버렸다. 신문사 사장이 사과하러 찾아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원고료 외에 다른 수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그 ‘쥐꼬리 수입’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신채호도 돈을 간절하게 바란 적이 있었다. 고구려의 옛 터인 만주에서였다.

만주에는 고구려 고분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신채호는 그 가운데 하나라도 발굴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고구려를 보다 깊게 연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가난한 선비에게 발굴은커녕, 광개토대왕 비문의 ‘탁본’을 살 돈조차 없었다. 가격만 물어보고 그만둬야 했다.

신채호는 만주까지의 여비도 어렵게 마련한 터였다. 안타까웠다.

“몇 백 원만 있으면 묘 한 장을 파 볼 것이요, 수천 원 혹은 수만 원이면 능 한 개를 파 볼 것이다. 그리하면 수천 년 고구려 생활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꿈만 꾸었다.…”

결국, 관찰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광개토대왕릉과 그 오른쪽의 제천단을 붓으로 대충 본떠 그려 사진을 대신하였으며, 그 왕릉의 너비와 높이를 발로 밟거나 신체로 견주어서 측량을 대신했을 뿐이다.…”

신채호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부식의 고구려사를 만 번 읽는 것보다 나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학자들에게 ‘돈 욕심’은 신채호처럼 학문을 탐구할 때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렇지 못한 학자들이 생기고 있다. 이번에는 고려대 교수들이다.

보도에 따르면 교수들은 서울 강남구의 유흥업소에서 법인카드를 ‘긁고’ 있었다. 결제 금액이 적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카드 쪼개기’라는 방법을 사용했다고도 했다. ‘분할 결제’라는 방법이다. 그 비용은 연구비, 홍보 등 행정비, 산학협력단 간접비 등의 항목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교수들 중에는 장하성 주중대사도 포함되고 있었다.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카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장 대사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밝히고 있었다.

교수들이 연구비를 부풀려서 펑펑 쓰는 일은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극소수의 교수들이 그랬을 것이다. 절대 다수의 교수들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대학마저 정치판이나 장사판을 닮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많이 껄끄러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