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타인을 '적폐'·'보수꼴통' 낙인찍기보다 자신을 돌아봐야"

공유
0

"타인을 '적폐'·'보수꼴통' 낙인찍기보다 자신을 돌아봐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96)] 나는 누구인가?

center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는 거울을 통해 누가 예쁜지를 물어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20세기 현대사 3부작'으로 불리는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으로 1500만부라는 초유의 판매량을 기록한 사실로도 알 수 있는 영향력이 큰 소설가 한 분이 최근 한 모임에서 한 발언이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분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앞부분 생략)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그들을 일본의 죄악에 대해서 편들고, 왜곡하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자들을 징벌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운동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가 적극 나서려고 합니다."

이 발언에 대해 저명한 시사평론가가 비난하면서 일이 커지고, 주요한 언론매체들이 소개하면서 그 파장이 더욱 커졌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아직 치료되지 않은 깊은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더욱 분명해졌다. 그 소설가는 더 나아가, "150만~160만을 헤아리는 친일파를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질서가 서지 않고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면서 해방 후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만들었던 '반미특위'까지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日에 유학갔다 오면 모두 친일 변질"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 발언 일파만파

노소설가의 발언 진위가 무엇인지는 필자의 관심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필자의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자극했다. 80년대 후반부터 30여 년간 교수 생활을 하면서 기쁜 일, 슬픈 일, 당황스러운 일, 자랑스러운 일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교수가 되자 학부 때 필자를 직접 가르쳐주셨던 교수님들이 계셨다. 이 교수님들과 가끔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면서 교수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조언을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분의 은사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교수님 한 분이 필자에게 질문을 하셨다. "한 선생은 노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때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울 때였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필자는 그때까지 노동조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필자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평소에 생각하던 대로 쉽게 대답하였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래야 노동자들도 응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지 않나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질문을 하신 노교수님이 "이제 보니 한 선생이 빨갱이군. 교수가 이러니 학생들이 뭘 배우겠나?" 하시면서 매우 걱정스런 표정으로 필자를 쳐다보셨다. 졸지에 '빨갱이'가 된 필자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자리에서 은사교수님에게 해명할 수 없어 가만히 있었다. 필자의 아버지는 평양에서 피난오신 분이다. 신학대학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었고,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필자의 고모)은 이화여전을 나온 후 평양에서 김일성 정권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옥사(獄死)하셨다. 이런 이유로 가족들이 극심한 고초를 겪으시다가 고향을 등지고 피난 오셨다. 이런 가슴 아픈 가족사를 아셨다면 필자에게 '빨갱이'라고 하실 수는 없으셨을 것이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깊은 상처 드러나
그의 발언 필자 80년대 아픈기억 자극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있다가 이번에는 학생대표가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 "선생님 과목 수강을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마치 최후통첩을 하듯이 말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해서 "왜 내 강의를 안 듣는데?"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교수님은 미제 앞잡이입니다. 미제 앞잡이의 강의는 안 듣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내가 왜 미제앞잡이인가?"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모두 미제 앞잡이입니다"라고 확신에 찬 어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일주일쯤 후에 학생들의 요청으로 강의는 재개되었지만 지금도 그때 일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사건으로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필자는 은사교수님에게는 '빨갱이'가 됐고, 제자들에게는 '미제 앞잡이'가 되었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이 과연 타당한지의 여부는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질문은 사실 다른 데 있다. 그 질문은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빨갱이인가 아니면 미제 앞잡이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닌가?" 이 사건에서 얻은 교훈은 한 마디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의 교수 생활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필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신이 좋은 대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가 한 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너 자신을 알아라(Know your-self)'라는 말은 사실 델포이 신전 기둥에 쓰여 있는 문구라고 한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많이 인용했다고 한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핵심은 결국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알아갈 수 있을까?

우리 자신을 증명하는 제일 중요한 신체 부위는 얼굴이다. 따라서 증명사진은 두말할 필요 없이 얼굴사진이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얼굴을 우리는 직접 볼 수가 없다. 손발을 다 볼 수 있는데 얼굴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참 모순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밖에는 얼굴을 볼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이 일관되게 왜곡된 모습을 비춰준다면 우리는 그 왜곡된 모습이 자신의 진짜 얼굴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무도 우리 자신을 직접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비유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마치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보듯이 우리 자신도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신을 알 수 있는 거울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評價)'이다. 특히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significant others)의 평가가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거울이다.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가 거울을 보면서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하고 묻는 과정과 유사하다. 거울이 "왕비님이 제일 예쁘십니다"라고 알려주어야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날 "공주님이 제일 예쁘십니다"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듣고는 '질투의 화신'으로 변해 공주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우리는 그만큼 외부의 평가에 민감하다는 것을 이 동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 증명 제일 중요한 신체부위 얼굴
왜곡된 모습 본다면 진짜 얼굴로 믿어

일탈 행동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규정하고 인식하는 지에 달렸다고 설명하는 사회학 이론이 '상징적 상호작용론'이다. 이 이론을 잘 설명하는 현상이 소위 '낙인효과'라는 것이다. 어떤 특정인의 행위가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났을 경우, 구성원들이 단지 도덕적인 이유만으로 당사자를 일탈자로 낙인(烙印) 찍으면 결국 그 사람은 범죄자가 되고 만다. 즉. 당사자의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거나 반도덕적 행위가 아닌데도 사회가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범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낙인효과는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어떤 범주로 규정할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최근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공개된 한 식당이 '코로나 확진식당'이라는 낙인이 찍혀 폐업할 형편에 놓였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한 부분만을 확대하여 자신의 도덕적 잣대로 '낙인'을 찍는 행위는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물론 모든 범죄자를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필자는 물론 지금도 자신을 '빨갱이'나 '미제 앞잡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일본에서 생활했거나 일본에서 공부한 분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들을 한 번도 친일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일본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객관적이고 냉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일본이 변해야하는 점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오히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지인들도 있다.

철없고 이념에 물든 20대 청년들이 단지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로 '미제 앞잡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치기(稚氣)로 보아줄 수 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그런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진영으로 쪼개져 상대방을 '적폐'라거나 '보수꼴통'이라는 오명(汚名)을 쉽게 씌우고 있다. 지금 이 사회의 어른들이 할 일은 '반민특위'를 다시 만들어 사회를 애증의 혼란 속으로 더 깊게 빠트리는 것보다 먼저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진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통합할 수 있는 지혜를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의 말대로, "아리랑을 쓴 작가로서 이것은 사회적,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left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