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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삼국지 관우의 ‘9전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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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삼국지 관우의 ‘9전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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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삼국지의 영웅’ 관우(關羽)는 뛰어난 무예와 용기를 갖춘 장군이었다. 한 자루 청룡언월도와 적토마로 싸우면 이겼다. 그래서 사람들이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본거지인 형주(荊州)에서 번성(樊城)을 공격할 때는 쉽지 않았다. 자그마치 9차례 공격을 모두 실패했다.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시쳇말로 쪽이 팔린 것이다.

1차 실패했을 때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동문을 통해서 형주성으로 돌아왔다.

2차 실패. 이번에는 남문으로 들어왔다.

3차 실패. 서문이었다.

4차 실패. 소북문을 통해 들어왔다.

형주성에는 5개의 성문이 있는데, ‘대북문’으로는 들어올 수 없었다. 인구가 많은 번화가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눈에 띄면 체면이 깎일 우려가 있었다.

관우는 그러고도 계속 실패를 거듭했다.
9차 실패. 이번에는 아예 성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군사들을 들판에서 노숙시켰다.

하지만 이튿날 날이 밝자 관우는 당당하게 대북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9차례나 번성을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제 백성 앞에서 약속하겠다. 10번째에도 공격해서 이기지 못하면 내 목을 내놓겠다.”

그러더니 머리털을 한 움큼 베어내 자신의 의지를 강조했다.

백성들은 그런 관우를 믿었다.

“장군이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으니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백성들은 풍악을 울리며 10번째 공격의 승리를 앞당겨서 축하했다. 대북문 밖 거리의 이름도 ‘득승가(得勝街)’라고 고쳤다.

관우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사들을 훈련하고 인재를 뽑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다. 10번째 공격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었다. ‘득승가’는 ‘승리를 정말로 얻어낸 거리’가 될 수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관우는 자신의 잘못 또는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고 나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정책을 잘못하고도 잘했다고 우기는 그런 지도자가 아니었다. 오늘날의 많은 지도자와는 달랐다.

정치판의 ‘예형 설전’에 ‘삼국지’의 관우와 장비도 등장하고 있다. ‘시무7조’ 조은산이 ‘설전’에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조은산은 자신의 블로그에 “졸지에 논객 진중권이…목이 달아나는 불귀의 객으로 전도됐다”며 “177석의 거대 여당에 맞서 세 치 혀와 글월로 외로이 고군분투하는 그를 예형 따위가 아닌 관우, 장비에 비유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 않겠나” 주장하고 있었다. 박진영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삼국지 예형’에 비유한 데 대한 반박이었다. 조은산은 “정치라는 것이 실로 팍팍하다 못해 가루가 날릴 지경”이라고 꼬집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며칠 전 관우 이야기가 있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의 형주(징저우)에 무려 57m나 되는 관우의 조각상이 있다. 형주시가 ‘삼국지의 영웅’을 기념하겠다는 명분으로 세운 ‘세계 최대 청동 조각상’이라고 했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쥐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중국 당국이 조각상의 높이가 규정 위반이라며 ‘철퇴’를 내렸다는 보도였다. 대한민국 정치판에 등장한 관우를 중국에서는 그 조각상을 철거할 모양이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