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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어른이 사라지는 한국…아버지부터 달라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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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어른이 사라지는 한국…아버지부터 달라지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95)] 부전자전과 긍정적 동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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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사를 공동 창업해 30대 초반인 1995년부터 세계 최고의 부호(富豪)가 된 빌 게이츠(오른쪽)와 최근 작고한 부친 빌 게이츠 시니어. 게이츠 부자는 부전자전이라는 말 그대로 성품이나 행동 등이 닮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를 공동 창업해 30대 초반인 1995년부터 세계 최고의 부호(富豪)가 된 빌 게이츠(Bill Gates)의 부친 빌 게이츠 시니어(Bill Gates Senior)가 지난 9월 14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그와 아들과의 관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빌 게이츠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만큼 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도 "아버지는 내가 되려는 모습 전부였다"라며 아버지를 애도(哀悼)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늘날 빌 게이츠는 단순한 세계 최대의 부호로만 명성이 높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부인과 함께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여 다양한 자선활동으로 더 유명하다. 이런 활동의 토대가 된 것도 바로 그 아버지 게이츠 시니어의 삶의 모습이었다. 아들이 "자선활동에 대한 요청이 넘쳐나는데 여력이 없다"고 말하자, 게이츠 시니어는 "내가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현재 게이츠 재단의 전신이 된 ‘윌리엄 H 게이츠 재단’의 시작이었다. 이 재단에 게이츠 부부는 50억 달러(약 5조9000억 원)의 주식을 기부했고, 게이츠 시니어는 아들 부부와 함께 공동 의장으로 활동했다.

빌 게이츠 시니어와 주니어의 관계를 보면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한자어의 뜻대로 풀이한다면 '아버지(父)가 자식(子)에게 전(傳)하고, 또 그 자식이 자식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결국 아버지의 성품이나 행동, 습관 등을 아들이 전해 받는다는 뜻이다. 물론 전해 받는 내용 중에는 긍정적(肯定的)인 것도 있고 부정적(否定的)인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긍정적인 내용을 말할 때 주로 사용한다. 우리 속담에는 "씨도둑은 못 한다"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자식은 부모의 모습을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 부친 사망…아들과 관계 주목
"아버지는 내가 되려는 모습 전부였다"

부전자전이 일어나는 기저에는 '동일시(同一視)'라는 심리적 작용이 있다. 동일시는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요인이다. 보통 청소년기를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라고 하지만, 사실 자아정체성(自我正體性)은 한평생 지속해서 이루어진다. 에릭슨(Erik Erikson)에 의하면, 자아는 "아동기 동안에 이루어지는 중요한 동일시를 선택적으로 강조하고, 자기-이미지들을 점진적으로 통합해냄으로써" 자아정체성을 형성해낸다. 자아정체성을 쉽게 설명하면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대답을 만드는 것이다. 이 질문에 나름 답을 찾고 그것을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면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자아정체성과 동일시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영어 단어를 살펴보면 좋다. 자아정체성을 영어로는 'identity'라고 한다. 그리고 동일시는 'identification'이라고 하고 동사형은 'identify'이다. 일반적으로 동사형 identify는 'with'와 함께 쓰일 경우 '...과 동일시하다'의 뜻이 된다. 예를 들면 'identify with mom'이라고 표현하면 '엄마와 동일시한다'라는 뜻이 된다. '동일시(同一視)'는 '같다고 보는 것'이니까 '어머니와 동일시한다'는 뜻은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한, 즉 같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와 동일하다고 여기는 것"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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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부친과 함께 자선재단을 운영했다. 사진=뉴시스

어렸을 때는 여러 대상과 동일시한다. 심지어는 동일시하는 대상이 매일 바뀌기도 한다. 어제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지만, 오늘은 '소방관'이 되겠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대상과 동일시했던 아동기를 거치면 그중에 자신이 진짜 닮고 싶은 대상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확실한 자아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누구'와 같다고 여기는지, 즉 누구와 동일시하는지가 자아정체감 확립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일차적 동일시의 대상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부모나 형제 등 가족일 경우가 많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은 자식은 부모를 동일시해서 자아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뜻이다.
동일시에는 '부정적 동일시'와 '긍정적 동일시'가 있다. 긍정적 동일시는 동일시하는 대상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 위에서 그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와 긍정적 동일시를 한다면 아버지와 닮으려는 것이고, 아버지처럼 살아가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의식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난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자신이 아버지를 닮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모르면서 닮아가는 것이다.

부정적 동일시는 동일시하는 대상과 달라지려는 것이다. 만약 딸의 마음속에 "나는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성장한다면, 어머니에 대해 부정적 동일시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딸은 엄마와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성품 행동 습관 아들이 받아
긍정 동일시가 자아 정체성 확립 도움

부정적 동일시보다는 긍정적 동일시가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 동일시의 대상이 닮고 싶은 역할모델(role model)이 되기 때문이다. 닮고 싶은 모델을 바라보면서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대조적으로 부정적 동일시는 특정 대상처럼 되지는 않으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모습으로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역할 모델이 없기 때문에 자아정체성을 확고히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긍정적 동일시할 대상을 어디선가는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대상을 찾지 못하면 '역할혼미(役割昏迷)'에 빠져 닻이 없는 배처럼 정박하지 못하고 조류에 떠다닐 뿐이다.

아버지와의 긍정적 동일시가 남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도 검증되었다. 1920년 후반부터 하버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종단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적응을 잘 한 집단과 못한 집단을 구분하는 몇 가지 항목 중에 '연구대상자의 경력선택이 아버지와 동일시한 것을 반영', '어린 시절 환경이 좋지 않음' 등의 항목에서 두 집단의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즉 아버지와의 긍정적 동일시가 하버드 대학생들의 미래의 적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에서 더욱 주목되는 점은 '어린 시절 환경이 좋지 않음'과 '아버지가 다녔던 대학에 자녀도 다님'과 '자녀의 적응이 좋거나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음' 등의 항목에서 두 집단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아버지와의 긍정적 동일시(자녀가 자발적으로 아버지가 다닌 대학에 진학)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부전자전'이 일어나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긍정적 동일시의 대물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는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재능 있는 남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연구했다는 제한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성들과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연구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도 역시 동일하였다. 75년간의 종단적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결론은 '좋은 인간관계'만이 인간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출신지와 직업, 재산은 행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긍정적 동일시의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다. 즉 자녀가 본받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자녀교육은 말로 하는 훈계나 조언이 아니라 직접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의 성실하고 즐거운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모처럼 살겠다"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재산이나 지위를 물려주는 것보다 자녀의 행복한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자녀들의 긍정적 동일시의 대상이 되는 부모들이나 어른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더 이상 부모나 기성세대를 긍정적 동일시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적 동일시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현상은 본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도 큰 비극이다.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도 종교계 교육계 정치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 동일시의 대상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마음속에 긍정적 동일시의 대상을 여럿 품고 사는 개인과 사회가 건강하다. 빌 게이츠는 블로그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버지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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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