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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고치고 또 고친 일본의 ‘오리발 항복 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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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고치고 또 고친 일본의 ‘오리발 항복 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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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일본이 1945년 ‘무조건 항복’을 하기 직전의 일이다. 그들은 항복이 아니라 전쟁이 끝났다는 내용의 이른바 ‘천황 조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각 서기관장 사코미즈(迫水) 등이 조서의 ‘기초작업’에 들어갔다. ‘역대 조서집’, ‘내각 고유집’이라는 자료와, ‘한자대사전’, ‘국어(일본어)사전’ 등을 뒤지며 초안을 작성하기로 했다. ‘한학자’도 2명이 작업에 참여했다.

초안이 완성되자 논쟁이 벌어졌다. 쟁점은 초안 가운데 “전세가 일본에 불리해져서”라는 문구였다.

육군대신이 주장했다.

“이 문구대로라면 지금까지 ‘대본영’의 발표가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된다. 더구나 전쟁은 진 것이 아니라 단지 호전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육군대신은 따라서 “전국(戰局)이 호전되지 않아”로 고쳐야 한다고 우겼다. 반면 해군대신과 일부 각료들은 초안대로 하자며 반대했다.

회의는 계속되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기저기 손을 대다 보니 초안 가운데 모두 ‘23군데’가 고쳐졌다. 글자 수로는 ‘101자’였다.

‘18군데, 58’자는 수정했다. ‘4군데, 18자’는 새로 적어 넣었다. 모두 합치면 ‘45군데, 177자’나 되었다. 이를 최종 등사해서 ‘궁내성’으로 보냈다.

그랬는데도 고친 곳이 또 있었다. 육군대신이 “전국이 호전되지 않아”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부분이었다. 이 문구는 “전국이 반드시 호전되는 것은 아니어서”로 정정되었다. ‘알쏭달쏭하고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바뀐 것이다.

‘천황의 항복조서’는 이렇게 고치고 또 고친 끝에 완성되고 있었다.

신(神)으로 모시던 그들의 ‘천황’이 ‘인간’으로 전락, ‘항복조서’를 읽기 전에 또 하나의 발표가 있었다. ‘대본영’ 내놓은 마지막 발표였다.

“우리 항공대는 8월13일 오후 가시마 해협 동쪽 25리 해역에서 항공모함 4척을 근간으로 하는 적 기동부대를 포착, 공격하여 항공모함 1척을 대파시킴.”

그리고 1시간 30분 후에 ‘천황’은 ‘항복 조서’를 읽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일본 국민은 마지막까지 속고 있었다. 일본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중국 침략에서 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전쟁을 ‘15년 전쟁’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리고 있다. 침략 사실도 패전 사실도 ‘15년 전쟁’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패전(敗戰)’이 아니라, ‘종전(終戰)’이라고 악착같이 주장하고 있다.

자기들 국민뿐 아니다. 일본은 세계를 향해서도 거짓말이다. 전쟁을 도발, 수백만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가해자’이면서도 되레 원자폭탄을 맞은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는 버릇은 75년이 흐른 지금도 ‘진행형’이다.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독도 문제가 그렇고, 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강제 징용 문제도 다르지 않다. ‘오리발’ 내밀기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