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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유안진 '비 가는 소리'와 이인문 '산촌우여도(山村雨餘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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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유안진 '비 가는 소리'와 이인문 '산촌우여도(山村雨餘圖)'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코로나19와 긴 장마는 도무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다. 근심한들 전혀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것들도 어느 날엔가, 되돌아가는 때가 머잖아 올 것이다. 비 가는 소리로. 9월이 온다. 9월에는 ‘비(悲) 소식’이 없기를.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

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

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center
이인문 ‘산촌우여도(山村雨餘圖)’, 19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시는 유안진(柳岸津, 1941~ ) 시집 <다보탑을 줍다>(창비, 2004년) 첫 페이지에 등장한다. 좋다. 시 ‘비 가는 소리’는 꺼내 읽을 때마다 그 맛이 깊어지면서 새롭다.

비가 그치다. 이를 ‘우후(雨後)’로 쓰는 것이나 ‘우정(雨停)’으로 적는 것에 그 뜻은 다르지가 않다. 다만, 둘 다 ‘우여(雨餘)’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뒷맛이 감성적인 측면에서 조금 덜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산촌우여(山村雨餘)’란 말이 훨씬 더 좋다. 그것을 달리 ‘산동네의 비 가는 소리’로 풀이해서 읽고만 싶다.

우리의 고전이 된, 중국 명나라 말기 홍자성이 쓴 <채근담>(현암사, 1962년)에 이런 글이 보인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의 번역을 여기에다 옮긴다.

비 갠 뒤에 산빛을 보면 경치가 문득 새로움을 깨닫게 되고, 밤 고요할 때에 종소리를 들으면 그 울림이 한결 맑고 높아라. (雨餘에 觀山色하면 景象이 便覺新姸하고 夜靜에 聽鍾聲이면 音響이 尤爲淸越이니라). (같은 책, 77쪽)

나는 유안진의 시를 좇아 채근담의 글을 다시 보고, 그 다음에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 <산촌우여도>를 곁들여 한 주 동안이나 방구석에서 그것들을 감상했다. 그러노라니 눈이 문득 맑아졌다. 마음까지 한결 가벼워지고 밝아졌다. 기분이 고조되었다. 아주 좋아졌다.

비 그친 뒤에 산빛을 보자면 경치가 문득 새롭다. 이인문의 <산촌우여도>를 한참 보노라면 ‘비 가는 소리’가 산동네 마을 경계로 왁자해 보인다. 따라서 그 마을이 목적지인, 헐떡거리는 당나귀와 선비를 좇는 동자의 실루엣에서 거친 숨소리와 비 그치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보이는 것만 같다. 마을에 가까워 질수록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으로 들릴 것만 같다.

어쩐지 그림 속 안개는 진종일 내린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을 드러내는 산촌을 배경으로 살짝 왼쪽 위로 비껴나 있다. 평온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草屋雨餘雲氣溼 (초옥우여운기습)

開門不厭好山多 (개문불염호산다)

마을에 비 가는 소리 뒤로 먹구름 젖었으나

문 열어두면 많은 산 반기니 좋아 싫지 않네


그림 속 화제시의 ‘습(溼)’ 자는 ‘젖을 습(濕)’ 자와 같은 뜻을 지닌 한자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 낯설 수 있다. 제시의 글씨는 ‘기원(綺園)’의 작이다. 기원은 조선 후기 문인 겸 서예가 유한지(兪漢芝, 1760 ~ 1834)의 아호를 가리킨다.

유한지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리라”라는 명문장가로 이름이 유명한 유한준(兪漢雋)의 사촌형이기도 하다. 그는 전서와 예서를 특히 잘 썼다. 화제시는 예서로 쓴 것이다.

양반 유한지는 중인(中人:양반과 상민의 중간 계급) 출신의 3인방 화가인 소띠(1745년생) 동갑 이인문, 김홍도, 박유성과 고루 친교했다. 먼저 김홍도를 알았다. 이어서 김홍도와 동갑내기 벗이고 화가들인 이인문, 박유성과 차례로 교우를 맺었을 터.

18세기 중인들의 조용한 문화혁명, ‘字(자)’와 ‘號(호)’ 짓기 붐

조선은 양반 계급의 나라였다. 양반들은 이름(名)과 관례(字)와 함께 다방면의 정치적 문화적인 활동에 내미는 명함(號)을 가지고 다녔다. 명함이 많다. 그럴수록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한 셈으로 치면 된다.

숙종 이후 영조와 정조가 차례로 임금이 된 세상. 조선의 100년 경제와 사회는 중인 계급들의 활동이 도드라지는 시대이기도 했다.

양반들은 남자 나이 스물 안쪽에 성인식을 치르는 관례(冠禮)를 통해서 족보에 올리는 이름 말고 자(字)를 스승이나 일가친척 초대된 어른을 통해서 받았다. 양반 가문의 전통이었다.

반면에 중인 가문에선 이런 게 애초부터 없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富)를 더 일구고,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중인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당사자인 중인도 친교를 위해 ‘자와 호’가 양반들처럼 간절히 필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자호(自號)’가 생겨났고, ‘자자(自字)’가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선두 그룹에는 미술계에서 겸재 정선이 대표가 되었다. 이윽고 단원 김홍도가 크게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단원은 스스로 자를 지었다. ‘사능(士能)’이 그것이다.

‘사능’은 중국 고전 사서(四書)의 하나인 <맹자(孟子)>에서 취한 것이다. “일정한 재산이 없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가 그 출처이다.
그렇다. 김홍도는 중인 신분임에도 자신을 ‘선비’로 바로 세우고자 평생 노력했다. 그런가 하면 사능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이인문 역시 사서(四書)의 하나인 고전 <논어(論語)>에서 자자(自字)를 선택한다. ‘문욱(文郁)’이 그것이다.

“주나라는 두 왕조를 거울로 삼았으니, 찬란하구나 그 문화가(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라는 말 중에서 ‘문욱(文郁)’이란 두 글자를 특별히 따온 것이다. 선비로서 지키고자 한 예술의 경지, 찬란한 문화의 혁명을 너나없이 둘은 바라고 꿈꾸었으리라.

이인문은 말년에 깊은 산속 늙은 소나무(古松) 숲을 끼고 흐르는 시냇가(流水) 옆의 집(館)을 짓고 은자(道人)의 삶을 살고자 했다. 그가 그린 미술작품에 관지(款識)로 즐겨 쓴 아호(雅號)인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은 그의 또 다른 호(有春)가 이미 모두 지났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72세 때 그린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당나귀 대신에 소를 탄 선비의 모습이 대체되어 얼핏 보인다. 다른 그림인 <산촌우여도(山村雨餘圖)>와 비교하면서 보자면 우측으로 화면이 5분의 1 쯤 길게 늘어나 있다. 다른 장소(목조 다리)가 더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안개 위로 솟은 산세의 실루엣을 미점으로 표현해 녹음이 울창한 여름산수의 정취를 드러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의 평(<이야기 한국미술사>,마로니에북스, 2019)이다. 말하자면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에 산세의 실루엣을 한껏 화폭에 담아낸 작품이지 싶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집을 고스란히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김홍도 작 <추성부도(秋聲賦圖)>(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는 시의도(詩意圖)이자 대표적인 문인화(남종화풍)로 현실이 아닌 상상이 이루어 낸 그림일 것이다.

그러나 이인문의 작품들은 대개 현실을 반영한 사실적인 산수화(북종화풍)에 거의 가까운 것이 많다. 이것이 친구지만 서로 다른 개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어쨌든 18세기 조선의 문화 부흥, 즉 르네상스는 중인들의 적극적인 문화활동이 빚은 고품격 예술의 세계였다. 조용한 문화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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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추성부도(秋聲賦)',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지난 주 금요일(8월 7일)은 절기상 입추(立秋)였다. 다음 주말, 일요일(8월 23일)이 오면 처서(處暑)가 된다. 서늘한 기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며, 무더위가 가시는 즈음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연인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음력 칠월칠석(七月七夕)이 해마다 찾아온다.

해마다 찾아오는 때를 만났지만 마음은 착잡해진다. 무거워진다. 여느 해와 다른 긴 장마로 피해가 속출한 우리 사회와 이웃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올해는 코로나19와 유난히 긴 장마로 외출을 삼간 날이 더 많았다. 하릴없이 방구석에서 해찰하는 시간이 유독 잦았고 길었다.

<추성부도>는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歐陽脩)가 늙어가는 자신의 삶을 늦가을 달밤에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빗대 읊은 시이다. 김홍도는 시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갈필의 선묘를 사용했다. 마른 붓질로 묘사한 달빛 아래 드러난 바위들,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쏠린 나뭇가지, 흩날리는 낙엽 등에서 스산한 가을밤의 정조(情調)가 묻어나온다. 구양수의 씁쓸함에 회갑을 맞은 김홍도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여 남종산수화풍으로 재해석해 그린 득의작(得意作)이다. (<이야기 한국미술사>, 389쪽)

이태호 교수의 해설이다. 순조 5년(1805)에 그린 김홍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명문장 <추성부>를 김홍도가 자필로 화면 왼쪽에다 세필로 빼꼭히 채웠다. 글에 ‘기우유자(騎牛游子)’라 글귀가 슬몃 보인다. 기우유자는 ‘소를 타고 나다니는 사람’이란 뜻으로 김홍도 자신을 가리키는 글이기도 하다. 이를 평생 친구인 이인문이 몰랐을 리가 없다. 따라서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의 소를 탄 사람은 단원 김홍도로 봄이 맞다. 전혀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영혼이 깃든 그림의 단짝 친구이고, 자기를 인정해주던 유일무이한 벗! 지음(知音)이 세상에서 죽고 없는 현실을 생각해 보자. 그의 노년은 고즈넉하고 씁쓸해서 짙은 먹빛의 감정이 타들어가고 기운이 빠지면서 물기로 젖을 밖에 없다.

중국 송(宋)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와 이인문의 그림과 김홍도의 작품을 마주하면서 나는 시인 유안진의 ‘비 가는 소리’가 자꾸 보였다. “후두둑~.”

이따금씩 성긴 빗소리가 아득히 산 너머로 멀어지면서 희미하게 들렸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내게도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있긴 했다. 다만 그것이 “오는 줄을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우(愚)를 반복해 범했을 뿐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를 입 안에서 웅얼거리다 보면 슬픔과 기쁨이 한꺼번에 듣긴다. 몰려온다. 괸다.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걱정은 무슨 걱정 (無窮無合豈愁思)

뜬구름 같은 우리 삶에 이별 있음과는 견줄 것도 아니라네 (不比浮生有別離)

하늘 위에서는 아침저녁 만나는 것을 (天上却成朝暮會)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이라고 호들갑을 떠네 (人間謾作一年期)

조선 중기의 여성 시인 이옥봉(李玉峯)의 ‘칠월칠석(七夕)’이란 한시 한 수이다. 옥봉은 동시대의 송강 정철, 서애 류성룡과도 시가(詩歌)로 교우할 만큼 문재가 남다르고 뛰어났다고 이야기가 전한다.

앞의 칠언절구에서 ‘수(愁)’ 자를 보자. 글자는 ‘가을(秋)에 드는 생각(心)’을 함축하고 있다.

이 한 글자(愁)를 가지고 종횡무진 치닫는 시상(詩想)이 매인 구석이 없어 자유롭다. 의미도 예사롭지 않다. 그리 보인다.

1행은 ‘자유로운 성생활’이 녹아들고, 2행은 ‘운우지정’의 덧없음을 얘기한다. 결정적인 한 방은 3행에 있다. 이생이 아닌 저승에선 매일 같은 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4행은 결정타이다. 칠월칠석을 주변인들이 일 년에 한 번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돌올한 농담을 독자에게 던진다. 스스로 현실을 딛고 뛰어넘으라고 말이다. 말하자면 자유롭게 살을 부비고, 빠짐없이 매일 보고, 또 만남을 잇자는 뭐, 그런 얘기다.

정말로 그는 밝고 빛나는 눈을 가졌다.

시인 신경림(1936~) 선생은 유안진의 시집을 추천하면서 “현상을 걷어내고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 이것이 유안진 시를 읽는 첫째 재미일 것이다. 정말로 그는 밝고 빛나는 눈을 가졌다”라고 일찍이 우리에게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나는 동조한다. 또한 이 말을 빌어서 이인문의 그림 세계를 “밝고 빛나는 눈을 가진 조선의 화가”로 애써 기억하고자 한다.

아울러 구양수의 <추성부>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만물이 성할 때를 지나면 마땅히 죽게 되는 것이다 (物過盛而當殺)

(중략)

온 근심이 그 마음에 느껴지며 (百憂感其心)

모든 일이 그 몸을 수고롭게 하여 (萬事勞其形)

마음속에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有動于中)

반드시 그 정신이 움직이게 되니 (必搖其情)

하물며 그럼에도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생각하고 (而況思其力之所不及)

그 지혜로 할 수 없는 바를 근심하니 (憂其智之小不能)


코로나19와 긴 장마가 낀 올해는 내가 도무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다. 내가 근심한들 전혀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것들도 어느 날엔가, 되돌아가는 때가 머잖아 올 것이다. 비 가는 소리로.

8월의 장마, 비(雨)가 그쳤다. 9월이 온다. 9월에는 ‘비(悲) 소식’이 없길, 나는 그만하고, 돌아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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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유안진 <다보탑을 줍다> (창비, 2004)

이태호 <이야기 한국미술사> (마로니에북스, 2019)

김창환 엮음 <중국의 명문장 감상> (한국학술정보, 2018)

이장우 외 옮김 <고문진보 후집> (을유문화사, 2003)

홍자성 지음, 조지훈 역주 <채근담> (현암사, 1962)

이병한 엮음 <하루 한 수 한시 365일> (궁리. 2007)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