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G 칼럼] 조선시대에도 ‘택배’가 있었다?

공유
0

[G 칼럼] 조선시대에도 ‘택배’가 있었다?

center
사진=픽사베이

서울에서 행세 좀 하는 집안의 아들이 강원도 인제의 사또로 부임했다. 밥상을 받았더니 시원하고 맛있는 김치가 있었다. 갓으로 담근 김치라고 했다.

메밀국수를 이 갓김치의 국물에 말아서 먹으면 일미라고 했다. 기름진 음식에 질린 입맛에는 그럴 듯했다.

사또는 모처럼 부모에게 효도하겠다며 갓김치 한 동이를 서울로 보내기로 했다. 일꾼을 사서 여비와 함께 주소를 자세하게 일러주며 출발시켰다. 오늘날의 ‘택배’였다. 여비를 지급했으니, ‘택배비’는 ‘선불’이었다.

자동차라는 것은 당연히 없던 시절이었다. 인제에서 서울까지는 장장 500리 길이었다.

‘장거리 택배’가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지게’ 덕분이었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 온 서양 사람들은 ‘지게’를 보고 감탄했다. ‘탁월한 운반수단’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서양 사람은 ‘지게 예찬론’을 폈다.
"지게는 아주 이상적으로 고안되어 있어서, 엉덩이와 등, 어깨에 무게를 고르게 전달한다. 그래서 다리만 지탱할 수 있는 한, 엄청난 짐을 운반할 수 있다.… 조선 사람을 빼고는 이런 방법을 착안한 민족이 없다. 중국 사람들은 어깨 위에 걸친 막대의 양쪽에 짐을 걸고 무게 중심을 맞춘다. 그러나 그 짐이 분할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일 경우에는 막대의 다른 편에 무게가 같은 물건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 사람은 지팡이의 힘을 빌려서 일어서는데, 이때 짐의 무게를 등 전체에 고루 전달시키면서 상체를 불쑥 일으키는 것이다.…”

이 일꾼이라고 예외는 있을 수 없었다. 지게에 김치동이를 올려놓고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걸어야 했다.

그렇지만, 고생스러웠다. 날은 더웠고 김치는 무거웠다. 도중에서 사 먹는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택배’는 힘든 노동이었다.

일꾼은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마다 김칫국물을 한 그릇씩 퍼서 마셨다. 그랬더니 음식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김칫국물을 야금야금 축낸 결과,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망우리 고개쯤에서 바닥나고 만 것이다.

국물 없는 김치만 전달할 수는 없었다. 근처의 도랑물을 동이에 가득 채워서 시치미를 떼고 갖다 바쳤다. 이를테면 ‘배달 사고’였다.

사또의 부모는 아들이 보내온 갓김치를 맛보고 실망했다. 국물이 싱거운데다가 군내까지 나는 것 같았다. 강원도 사람들은 입맛이 참 별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택배기사’에게 사례하고 있었다.

14일은 ‘택배 없는 날’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택배기사의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집 앞에 놓을 택배에도 행복한 마음이 담길 것”이라고 응원한 바 있다.

택배업계는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정례화하자는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돌이켜보는 ‘조선시대의 택배’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