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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미안한지 말하고 상대방 고통 공감해야 화해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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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미안한지 말하고 상대방 고통 공감해야 화해할 수 있어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91회)] 진정한 사과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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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의실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여부 조사를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시장의 유언장 내용이다. 이 유언장을 새삼 인용한 것은 고인의 명예에 누(累)를 끼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과하고 용서(容恕)를 구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지만, 본의 아니게 고인에게 결례가 될까 염려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입시에 필요한 지식은 많이 그리고 잘 가르친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실질적 지식과 훈련은 아무 곳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위 유언장은 ‘죄송하다’ ‘감사드린다’ ‘미안하다’ 라는 사과와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내용이지만 이 글을 읽은 많은 분이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지막 “모두 안녕”이라는 마감은 더욱더 그렇다. 물론 글쓴이가 진정으로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글을 읽는 피해 당사자가 진심을 느끼지 못하게 쓰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글을 읽고 피해자가 쓴 호소문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호소문에서 피해자는 “...용서하고 싶었습니다...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그래서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피해자는 전혀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따라서 용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 결과는 당연히 너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원순 유언장' 피해자에 진심 못 전해
본의 아니게 고인에게 결례될까 염려
우리는 모두 긴 세월을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사과 해야 할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과오를 저지르고 살아간다. 또 친구에게 그리고 동료에게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럴 때는 진정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진정한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용서를 구하는 대상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적시(摘示)되어야 한다. 부부간에 사과(謝過)를 하는 경우에는 분명하게 ‘남편(혹은 부인)’에게 사과한다고 그 대상을 밝혀야 한다.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대상을 지칭하는 경우에는 누구에게도 진심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위 유서에서는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모든 분은 과연 누구일까? 이 모든 분에는 과연 피해자는 포함되어 있을까? 피해자에게는 죄송하기보다는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사과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만약 위 내용을 “피해자에게 죄송하다”고 적시했다면 피해자는 사과를 받았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용서하고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을까?

외도한 후 상담을 받으러 온 남편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남자들 다 한두 번 바람피우지 않나요?”라고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 말 속에는 남들도 한 두 번 다 하는 외도에 대해 부인이 너무 예민하게 군다는 불만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표현을 부인에게 한다면 당연히 부인은 사과를 받았다는 느낌은커녕 오히려 화가 더 날 것이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또 얼마나 잘 못 했는지 모르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상담자는 ‘대한민국 남자’라는 추상적인 표현대신 ‘나는’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하라고 주문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행동의 의미가 더욱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꼭 필요한 지식 안가르쳐줘
타인에 사과할 실수 저지르기 마련

둘째는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그 감정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위의 유언장에는 모두 자신의 감정만이 표현되어 있다. “죄송하다” “감사드린다” “미안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형식상으로는 사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감정표현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만이 드러나 있고 상대방은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상대방의 감정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드러내고 있다. 드라마에 부부싸움 후 남편이 부인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이 빨리 사과하고 사태를 수습하려고 진정성이 없이 “내가 미안해”를 남발하면 부인이 물어본다. “뭐가 미안한데?” 이 질문에는 남편의 사과가 진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부인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한다는 것은 나의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共感)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감을 표현해야 한다.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자신의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얼마나 괴로웠을 지에 대해 공감해야 한다. 만약 유언장에, 피해자를 적시하면서 “A씨, 내가 한 행동 때문에 A씨가 얼마나 괴로웠어요? 정말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고 화가 났겠어요. 정말 미안해요.”라고 썼다면 피해자가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느낌이 들어 더 많이 용서하고 마음이 더 가벼워졌을 것이다.

셋째는 진정한 사과에는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이 다짐이 없다면 앞선 사과의 말이 진정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피해자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사과를 받고 싶었고,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용서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용서를 하는 선행조건으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 는 ‘다짐’이 필요하다. 그래야 피해자는 안심을 하고 일상에 복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심어린 사과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피해자는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라고 절규(絶叫)하고 있다. 피해자의 분노가 풀리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절규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통해 화를 풀고, 하루 빨리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과를 한다면 힘들다고 울부짖는 절규를 막지 말고 받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비는 사람의 ‘도리’이다. 이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는” 결과를 초래한다.

​친구 동료에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
용서 구하는 대상 구체적으로 적시를

상담자로서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답을 찾을 찾기 위해 괴로워하는 피해자와,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억울한 피해자들에게도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 답은 이미 피해자의 글에 나와 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책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그 때의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마음 놓고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욕을 하셔도 됩니다. 얼마나 분하고 절망스럽고 외로우셨습니까?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지르지 못한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터뜨리고 울부짖으세요. 그래야 쓸데없는 화를 마음에 품고 자책하고 곱씹지 않게 됩니다. 늦지 않았어요. 당신의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있거든요. 마음속의 가해자를 향해 분노를 풀어야 합니다. 혼자 하시기 어렵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받을까 두려우시면 전문가에게 상담 받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비록 그 사건 자체를 잊을 수는 없지만, 그 사건에 연관된 감정의 응어리는 얼마든지 풀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악몽 같은 사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제는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혼자 힘들고 아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당한 이 고통을 용기있게 공론화했기 때문에 앞으로 같은 피해를 당할 수도 있을 많은 여성들을 구해냈다는 것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 피해자의 호소문 전문은 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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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