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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아침노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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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아침노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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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장마가 시작되면서 숲길 산책이 뜸해졌다. 자주 비가 내리는 탓도 있지만 요즘 비는 일기예보와는 상관없이 국지성 호우가 퍼붓는 경우도 많아 준비 없이 집을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창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의 동정을 살피곤 한다. 맑은 날은 도봉산의 흰 바위벽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지만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면 도봉산은 우연에 가려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늘 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산을 바라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여 내 곁에도 그런 사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날씨가 궁금하여 창문을 열어젖혔는데 도봉산 뒤편 하늘이 환하다. 마치 구름 위에 분홍과 주황의 형광물감을 뿌려 놓은 듯 곱게 물들어 있다. 카메라를 찾아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동쪽 하늘을 바라보니 온통 붉다. 오랜만에 보는 장엄한 아침노을이다. 옛말 중에 아침노을을 보면 문밖을 나서지 말고 저녁노을을 보면 천 리라도 가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놀이 지면 마파람이 일고 곧 비가 올 징조요, 저녁노을이 지면 맑은 날이 이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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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터득한 옛사람의 삶의 지혜다. 해가 뜰 때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아침노을은 저녁놀과 마찬가지로 빛의 산란현상에 의하여 생겨난다. 해가 뜰 때는 태양의 고도가 낮아 빛이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멀어서 파장이 짧은 청색은 산란으로 없어지고 파장이 긴 적색 부분만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아침노을이다. 아침노을은 동쪽에 고기압이 있어서 날씨가 개어 있는 징조이므로 고기압 후면에 들며, 뒤따르는 기압골이 접근할 수 있으므로 비 올 가능성이 높다.

보다 멋진 노을사진을 찍을 욕심에 이리저리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 보지만 그때마다 전깃줄에 걸리고 건물에 가려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시야가 확 트인 중랑천변에 나가면 멋진 노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파람을 맞으며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지만 천변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노을빛이 사라진 뒤였다. 자연은 수시로 우리에게 멋진 장면을 펼쳐 보이며 환상적인 체험을 하게도 하지만 결코 우리를 위해 따로 배려하지는 않는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지나간 것은 절대로 리플레이가 되지 않는다. 자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때를 잘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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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지레 낙담하거나 실망할 이유는 없다. 자연은 눈여겨보면 언제라도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바쁘게 구름을 실어 나르는 마파람을 맞으며 천변을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자전거 도로 옆 산책로엔 아침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잰 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수중보 근처엔 가마우지들이 어로를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고 천변엔 새로운 꽃들이 피어났다. 노란 달맞이꽃과 색색의 백일홍, 그리고 점박이 나리꽃과 보랏빛 벌개미취도 눈에 띈다. 봄에 꽃을 피웠던 산딸나무와 산사나무, 모과나무엔 제법 커다란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온 세상이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물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꽃들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야생의 위로를 쓴 에마 미첼은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설 때 일시적으로 흥분을 느끼는 현상을 ‘ 채집황홀’이라고 했다. 답답한 집안을 벗어나 천변을 따라 걷거나 숲을 찾아가면 언제라도 그 황홀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