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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최금진 '아파트가 운다'와 정선 '압구정(鴨鷗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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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최금진 '아파트가 운다'와 정선 '압구정(鴨鷗亭)'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하고자는 바(欲)를 우리는 열정(熱情)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순수하지 않아서 사심(私心)이 밑에 깔리면 하고자는 바는 욕심(慾)으로 변질이 되어 버린다. 결국엔 비난을 받는다. 하고 싶은 것이 열이라면 여섯에서 다섯 사이에서 멈추는 것을 종종 중용(中庸)이라고 한다. 또한 중심(中心)이 잡혔다고 한다

아파트가 운다 / 최금진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엔 싸움이 많다

건너뛰면 가 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밑이 검고 헬쑥하다

누군가는 죽여달라고 외치고 또 누구는 실제로 칼로 목을

긋기도 한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체이탈한 영혼들처럼 기다란 복도에 나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여자들은 남자처럼 힘이 세어지고 눈빛에선 쇳소리가 울린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

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팬다

아침에 보면 십팔평 칸칸의 집들이 밤새 욕설처럼 뱉어낸

악몽을 열고 아이들이 학교를 간다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아파트 화단의 꽃들은 표정이 없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전보다 조금 더 살림을 말아먹은 아내와

그들을 자식으로 두고 죽은 노인들이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교과서를 족보책처럼 싸짊어지고 아이

들이 돌아오면

아파트는 서서히 눈에 불을 켠다

이빨이 가려운 잡견처럼 무언가를 갉아먹고 싶은 아이들을

곁에 세워놓고

잘사는 법과 싸움의 엉성한 방어자세를 가르치는 젊은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밤이면 아파트가 울고, 울음소리는

근처 으슥한 공원으로 기어나가 흉흉한 소문을 갈기처럼

세우고 돌아온다

새벽까지 으르렁거린다

십팔, 십팔평 임대아파트에 평생을 건 사람들을 품고
아파트가 앓는다, 아파트가 운다

아프다고 콘크리트 벽을 쾅쾅 주먹으로 머리로 받으면서

사람들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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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압구정(鴨鷗亭)', 18세기,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앞의 시는 최금진(1970~ ) 시인의 첫 시집인 <새들의 역사>(창비, 2007년)에 보인다. 30대 후반의 왕성한 혈기에서 뿜어지는 시작(詩作)의 기세가 자못 ‘실경(實境)’의 풍격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실경’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진실한 경지’를 일컬음이다.

이에 대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거짓이나 허구의 풍경도 아니고, 들뜨고 과장된 감정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과 감정을 가리킨다”라고 책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책은 ‘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이란 부제가 돋보이는 <궁극의 시학>(문학동네, 2013년)을 말함이다. ‘실경’은 어쩌면 실제의 경치를 뜻하는 ‘실경(實景)’일 수도 있고, 작가의 눈으로 거른 ‘진경(眞景)’이란 말로 대체가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금진의 시는 우리네 인간사 풍경과 단면을 시로 다룸에 있어서 독창적인 면이 조선의 최고 화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그림과 일이관지(一以貫之) ‘진경’이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회화사에 정통한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는 ‘진경산수’의 ‘진경’은 ‘실제 경치를 그린 그림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신선이 사는 땅이라는 선경(仙境)’의 의미로 확대하여 풀이한 바 있다.

따라서, 정선의 진경산수화 그림은 실제의 경치를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그렸다고 보는 것보다 화가인 자신의 낭만과 이상이 녹아지고 곁들여졌다고 보는 편이 맞다.

반면에 최금진의 시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소외의 현실을 자본주의와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확장시켜 시화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해온 시인”(김사인 評)이라는 점에서 낭만 대신에 절망이,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사실적인 묘사의 ‘진경(眞景)’에 실로 가깝다고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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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소악루(小岳樓)', 18세기,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쓴 책! 이른바 <사소절(士小節)>은 한자의 뜻 그대로 ‘선비들이 지켜야 할 아주 사소한 예절’을 다루고 있다.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이덕무는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책머리에 밝히면서 리더들의 정치 교과서이자 역사서인 <서경(書經)>의 말을 가져다가 인용한 바 있다. 다음의 여덟 글자(八字)가 그것이다.

不矜細行 終累大德 (불긍세행 종루대덕)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을 해치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좋은 말이다. 말하자면 작은 행동 하나도 소중하게(矜) 다루지 않는다면 결국엔 여태껏 내가 쌓아 온 큰 공이 와르르 무너진다(累)라는 그런 얘기다.

실제로 우리 모두가 이름을 알고 있는 잘 나가던 정치인(?)이 어느 날엔가, 하루아침에 ‘성(性) 스캔들’로 말미암아 얼마나 허무하게 속수무책 무너졌던가를 생각하면 ‘저! 팔자’를 양복 안주머니에 메모해 가지고서 수시로 꺼내들고 무시로 볼 일이다. (아니 그런가?)

여기서 우리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시작법(詩作法)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다산은 아들 학연에게 여덟 글자 ‘不傷時憤俗非詩也’(시대를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로 시짓기의 의미를 전언한 바 있다.

아울러 또 팔자 ‘不愛君憂國非詩也’(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아들에게 가르친 바 있다.

허리벨트를 풀면 무릇 남자의 물건이 불쑥 보인다. 보기 흉하고 민망하다. 마찬가지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 설정된 녹지대를 말함)가 풀리면 서울과 도시는 “아프다고 콘크리트 벽을 쾅쾅 주먹으로 머리로 받으면서/ 사람들이 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녹색의 실종으로 홀연 ‘살맛’을 잃게 될 것이다.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

300년 전 한강을 중심으로 한양(京)과 교외(郊外)의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광(名勝)을 65세의 화가 정선은 당시의 한강 주변 명승지를 일일이 찾아서 실경(實景)에 가깝게 그렸다. 대한민국보물 제 1950호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녹색과 연두색으로 칠한 청록 담채법(淡彩法)의 화풍은 18세기 조선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그린벨트나 마찬가지였다.

그 가운데 <압구정(鴨鷗亭)>을 먼저 보자. 뭔가 잡히고 느껴질 것이다. 정자가 자취를 감추고 대신에 아파트단지가 한강변에 들어서 있을 뿐이다. 어디 강남 땅뿐이랴.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 강남의 땅엔 지금 수많은 아파트단지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다행이 강서 가양동을 배경으로 그린 <소악루(小岳樓)>는 현재도 남아 있다. 물론 강동의 잠실은 이젠 나루터가 아니다. 뽕밭도 아니어서 온통 고층빌딩과 무수한 아파트단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저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아파트”가 한강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아파트가 앓는다, 아파트가 운다

이 시 한 줄이 13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 귓가에 맴돈다. ‘살맛’을 잃어 정신을 놓게 만든다. 살맛은 성인 남녀가 절정에서 느끼는 그 섹스의 맛! 그것에만 오로지 있는 게 아니다.

다르게는 사람과 사람들이 손을 잡는 악수(幄手)의 맛! 이 또한 ‘살맛’이다. 그런데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는 ‘코로나19’로 본의 아니게 친한 이들의 살맛을 진정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실은 남의 살(고기)이 더 맛있다. 그렇긴 시인도 마찬가지다.

섬진강 시인(김용택)은 남의 시를 잘도 읽고 베낀다. 이 점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이다. 그는 <시가 내게로 왔다 3>(마음산책, 2010년)에서 최금진의 시를 읽고 짤막하게 촌평을 달았다.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그대로 소개한다.

자본이 모아놓은 온갖 이해득실들이 치고받고 득실거리며 부딪치고 불꽃을 튕긴다. 자본이 뱉어낸 이 불꽃들의 아우성은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 유인지경(?)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모아놓고, 시인은 우리더러 두 눈 똑똑히 뜨고 들여다보라 한다. 뭐가 보이냐고. 자꾸 무엇이 보이냐고 자세히 들여다보라 재촉한다. ‘건너뛰면 가 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밑이 검고 헬쑥’한 저 이웃들을 보라 한다. (같은 책, 81쪽)

건너뛰면 가 닿을 것 같은 집집

서울 도시의 자화상이 그렇다. ‘집집’이 비좁다.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까닭에는 군데군데 청색과 녹색이 일부 보여서다.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환경을 보전하려는 녹지대(그린벨트)는 그래서 우리 땅에서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와 그림을 읽는 금요일은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 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패”는 남편과 아버지가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후손에게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십팔, 십팔평 임대아파트에 평생을 건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 이웃으로 살고 있는 실정을 가장 먼저 정치인과 국회의원들이 바로 인식하고, 집 소유를 두 채, 세 채 갖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지 않도록 자중해야 한다. 그것은 태평성대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아울러 ‘허리벨트’를 함부로 풀어서 성추행 고소와 망신을 당하는 정치전선의 지도자가 부디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을 꼭 일독하는 고전(古典)으로 받아들여 이 시대에 온갖 루머로 난무하는 고전(苦戰)을 제발이지 치루지 않길, 나는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진심(盡心)이다.

여비서가 있다면 필독!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육욕칠정(六慾七情)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칠정은 희(喜), 노(怒), 애(哀), 구(懼:불교에서는 樂), 애(愛), 오(惡), 욕(欲)을 가리킨다. 육욕은 이성과 몸을 합하고 싶은 색욕(色慾), 미모를 탐하는 형모욕(形貌慾), 애교에 빠지는 위의자태욕(威儀姿態慾), 목소리에 반하는 언어음성욕(言語音聲慾), 부드러운 살결을 탐하는 세활욕(細滑慾), 사랑스런 인상에 끌리는 인상욕(人相慾), 이 여섯 가지를 말한다. (조성기 <양반가문의 쓴소리>, 김영사, 165쪽)

어찌 완벽한 사람이 있겠는가. 실수도 하고 갈팡질팡하니까 ‘사방팔방이 모자람’의 ‘사람’이고 인간(人間)인 것이다. 그에게 흠이 없다면 신(神)이지 그는 이 세상에 산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고자는 바(欲)를 우리는 열정(熱情)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순수하지 않아서 사심(私心)이 밑에 깔리면 하고자는 바는 욕심(慾)으로 변질이 되어 버린다. 결국엔 비난을 받는다. 하고 싶은 것이 열이라면 여섯에서 다섯 사이에서 멈추는 것을 종종 중용(中庸)이라고 한다. 또한 중심(中心)이 잡혔다고 한다. 이 점을 이 시대의 리더여! 결단코 잊진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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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최금진 <새들의 역사> (창비, 2007)

김용택 <시가 내게로 왔다 3> (마음산책, 2010)

조성기 <양반가문의 쓴소리-이덕무 ‘士小節’ 이 시대에 되살려야 할 선비의 작은 예절> (김영사, 2006)

안대회 <궁극의 시학> (문학동네, 2013)

이우복 <옛 그림의 마음씨> (학고재, 2006)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