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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정호승 ‘어느 소나무의 말씀’과 이인상 ‘설송도(雪松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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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정호승 ‘어느 소나무의 말씀’과 이인상 ‘설송도(雪松圖)’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2020년. 직장인들의 본격적인 여름휴가! 그 때가 바짝 다가왔다. 올 여름은 먹을거리만 챙기지 말고 읽을거리로 시집 한 두어 권쯤 손수 챙겨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집 을 추천하고 싶다

어느 소나무의 말씀 / 정호승

밥그릇을 먹지 말고 밥을 먹어라

돈은 평생 낙엽처럼 보거라

늘 들고 다니는

결코 내려놓지 않는

잣대는 내려놓고

가슴속에 한가지 그리움을 품어라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도 굽어보신다

봄이 오면 눈 녹은 물에 눈을 씻고

쑥과 쑥부쟁이라도 구분하고

가끔 친구들과 막걸리나 마시고

소나무 아래 잠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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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상(李麟祥) '설송도(雪松圖)', 종이에 수묵,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21세기 한국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신조어)의 이중잣대가 정치판에 범람하여 요동치는 한 편의 풍속화 그림같이 보인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두고서 우리는 잠시나마 ‘잣대는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가슴 속에 한가지 그리움을 품을’ 줄 아는 최소한의 예우 따위는 일절 모른 척 외면하고 있다. 오로지 공격적인 비방과 적을 향한 상처주기 뿐이다. 이 점이 소시민으로서 나는 불편하다. 못내 아쉽다!

영화감독 이준익의 <왕의 남자>(2005년)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역사를 소재로 한 골계와 허구의 영화거니 그리 생각했다. 단정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공길(이준기)은 역사상 연산군 시절에 궁정배우로서 엄연히 실재했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영화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고(故) 사진실(史眞實, 1965~2015) 교수는 “풍자에 살고 자유에 살고, 두 광대 이야기”라는 글에다가 <연산군일기>(1505년 12월 29일)를 찾아서 적은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공길이라는 우인이 <늙은 선비 놀이>를 만들어 가지고 말하기를, ‘전하는 요·순 같은 임금이고 나는 고요 같은 신하입니다. 요·순 임금은 어느 때나 있지 않지만 고요는 어느 때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논어>를 외우면서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니 설사 쌀이 있은들 내가 먹을 수 있으랴!’(君君臣臣父父子子, 君不君臣不臣, 雖有粟, 吾得而食諸)라고 하였다. 임금은 말이 공경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형장을 치고 먼 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309쪽)

궁정배우 공길이 왕(연산군)에게 풍자의 해학으로 퍼부었다는 저 말은 실은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이 그 출처이다. 공자가 제나라 임금 경공에게 한 말이지만 수많은 조선의 사대부와 한국의 지식인들은 여태껏 잊지 않았다. 수시로 마음 깊은 곳에서 건져내고 있어서다. 말인즉 치국안민(治國安民)의 도리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원리와 다름없다.

잣대가 엄정했던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선배를 칭찬했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이 바로 그랬다. ‘능호관’은 당호(堂號)로, 그가 서울 남산 근처에 살던 집의 이름인데 가난한 친구를 위해 친구들이 돈을 추렴해 마련해 줬다는 고사(故事)가 전하고 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애국가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노랫말처럼 남산엔 소나무가 지금도 많다. 하긴 우리 산하(山河)에 소나무가 없는 곳이 있긴 한가. 아무튼 남산 능호관에서 말년을 보낸 이인상은 조선의 명문가이자 노론(老論)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증조부를 시작하여 내리닫이 ‘서출(庶出)’이었다. 그래서 그랬던가. 관직에 나가긴 했으나 미관말직에 전전했다. 기껏해야 찰방(종 6품)과 현감(정 6품)의 벼슬살이가 고작 끝이었다. 학문도 깊고 시문에도 탁월한 재주를 보였고 더욱이 서(書)와 화(畵)까지 다방면에 출중한 재주를 지녔으나 선비로만 그저 자족해야 했다.

설송도(雪松圖).
앞의 그림을 보자. 저건 소위 문인화란 거다. 선비의 뜻이 담겨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경(實景)의 소나무가 아닌 관념(觀念)의 소나무로 바라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본 듯한 나만의 착각은 애국가에도 나오듯이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실은 엇비슷한 것이 많은 까닭이리라.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1956~2005)은 일찍이 이인상의 <설송도>를 보면 “내 앞에 능호관 그 분이 실제로 서 있는 듯한 엄숙한 느낌을 갖게 된다”라고 했다. 그 정도의 내공이 없는 나로서도 처음 그림을 마주쳤을 때 느낌은 ‘숙연함’부터 그 자체였다. 이쯤에서 우리는 옛 그림의 탁월한 해설로 유명했던 오주석의 품평을 다시 경청할 필요가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화폭을 가득 메우고 서 있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화면 밖으로 잘려 나가 그 존재감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이다. 가지가 높고 빼어나서 낙락(落落)이라 하고, 아름드리 줄기가 까마득하게 자랐으므로 장송(長松)이다. 소나무가 늙어 낙락장송이 되고 보면 모진 눈서리나 비바람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온 천지에 흰 눈이 날릴지라도 묵묵히 그 시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늙은 나무인지라 가지는 성글지만 그 성근 가지에 이파리만은 더욱 빽빽하고 기세 좋게 솟아났다. 그것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 오히려 푸르르다. 그리하여 만인이 절로 우러러보며 범접치 못하게 하는 고요한 위엄에 차 있다. (오주석,<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195~197쪽)

이보다 이인상의 <설송도>를 잘 품평한 다른 해설을 난 아직껏 관련 도서에서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한 그루 소나무가 아니고 하필이면 두 그루를 한 종이에다가 오롯이 그린 걸까.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을 오주석은 책에서 친절하게 풀어줬다.

“가장 좋은 벗이 누구인가(勝友爲誰) 이에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길(乃指松曰), 그것은 푸른 얼굴의 늙은이(此蒼顔叟)” (같은 책, 198쪽)

여기서 벗은 이윤영(李胤永, 1714∼1759)을 가리킨다. 그는 이인상과 동시대(숙종과 영조의 치세 사이)를 같이 살아온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바위에 기대어 서로 열 십(十) 자로 교차하는 모양으로 나란히 선 두 그루의 소나무는 어쩌면 수없이(十) 또(又) 보고픈 친구(友)를 이인상이 ‘자기 응시’를 통해서 소나무와 바위에 빗대어 그림으로 나타낸 것일지도 혹 모를 일이다.

天下之大惡大禍 (천하지대악대화)

皆從不能堪耐澹迫中出來 (개종불능감내담박중출래)

中庸曰 (중용왈)

素貧賤 安於貧賤 (소빈천 안어빈천)

素患難 安於患難 (소환난 안어환난)

천하의 큰 죄악과 큰 재앙은 모두 능히 담박함을 견뎌내지 못하는 가운데서 나오게 마련이다.<중용(中庸)>에는 “빈천에 처하면 빈천을 편안히 여기고, 환난을 마주하면 환난을 편안히 여기라”고 했다.


한문은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사소절(士小節)>에 나오고 번역은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의 글이다.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이란 부제가 인상적인 명저 <죽비소리>에 보인다. 독자로서 ‘나’에 동참하는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이 나는 많아지길 바라고 있다.

만약에 서울특별시장 집무실 벽면 도배를 이인상의 <설송도>로 마쳤다고 한다면 과연 성추행이란 게 일절이라도 생겨나고 일어났을까. <죽비소리>에 ‘명결(明潔)’이란 글이 나온다. 다음과 같다.

문순공 이황이 단양 군수로 있다가 떠나갔을 때 일이다. 아전이 관사를 수리하려고 들어가 방을 보니, 도배한 종이가 맑고도 깨끗하여 새것 같았다. 요만큼의 얼룩도 묻은 것이 없었다. 아전과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다. (같은 책, 114쪽)

사근역(경삼남도 함양군) 찰방에 임명이 된 이덕무가 성공적으로 취임을 한 후에 비서격인 한 아전에게 물었다. “지난 오륙십 년 동안 이곳을 맡았던 선임자 가운데 가장 훌륭했던 인물이 누구냐”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전은 “이인상이었다”라고 곧장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로 인해 이덕무가 같은 서출 출신의 선배인 이인상을 유독 존경하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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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여행'&, 창비, 2013년. 사진=예스24


2020년. 직장인들의 본격적인 여름휴가! 그 때가 바짝 다가왔다. 올 여름은 먹을거리만 챙기지 말고 읽을거리로 시집 한 두어 권쯤 손수 챙겨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호승(鄭浩承, 1950~ ) 시인의 시집 <여행>(창비, 2013)을 추천하고 싶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가장 먼저 시집에서 볼 수 있는 시가 ‘여행’이다. 여행하거나 휴가 중에 혹여 어느 소나무 그늘 아래 쉬게 되거든 이인상의 <설송도>를 다시금 기억해 보자. 그림에 온통 번진 서늘한 한기로 인해 무더위가 조금은 가실 것이다.

천양희(1942~) 시인과 더불어 정호승의 시는 대체로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독자에게 허락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다시 앞의 소개한 ‘어느 소나무의 말씀’을 들여다가 보자.

가슴속에 한가지 그리움을 품어라

총 11행 시. 그 중 한가운데 있는 시 한 줄이 마치 이인상의 그림 앞 소나무의 굵은 기둥과 같이 느껴진다. 이 한 줄의 시가 전문을 일이관지로 꿰뚫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그리움’이고 곧 ‘사랑’이다. 사랑은 ‘사량(思量)’으로 다가선다. 그리하여 내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며 헤아리게 만든다. 아주 소중한 추억의 시간으로 안내하는 셈이다.

나는 시를 읽으면서 사계절을 꼿꼿하게 언제나 푸르른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가 이제는 좋아지기 시작했다. “밥그릇을 먹지 말고 밥을 먹거라/ 돈은 평생 낙엽처럼 보거라”를 통해서 조선의 선비이자 문인화가인 이인상을 만나 상우천고(尙友千古)를 해보는 낭만을 맛보았다. 또한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잣대를 내려놓는 궁극의 내면과 나 자신이 조우할 수 있었다.

“쑥과 쑥부쟁이라도 구분하”고서 “내로남불”을 하는 것일까,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역시 가장 좋은 즐거움이란 “가끔 친구들과 막걸리나 마시고/ 소나무 아래 잠”드는 시간을 내가 갖는 것이다. 곽재구(1954~) 시인은 시집 <여행>을 추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읽는 동안 시 속에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울고 있는 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의 손과 발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정확한 사용법이 들어 있고 잘 가라 하면서도 불을 켜고 기다리는 집들이 있고 밤새 울지 않는 눈사람과 고통을 깨뜨려 새들에게 물을 주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

이런 황홀한 기분을 어찌 시인만이 누리고 만끽하랴. 우리도 같이 해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만나는 여행 중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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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정호승 <여행>(창비, 2013)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솔, 1999)

이태호 <이야기한국미술사> (마로니에북스, 2019)

정민·김동준 외 지음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태학사, 2011)

정민 <죽비소리> (마음산책, 2005)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