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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미·유럽의 가사도우미에 대한 편견 고발한 책 ‘MAID’ 코로나19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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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미·유럽의 가사도우미에 대한 편견 고발한 책 ‘MAID’ 코로나19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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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자신의 가사도우미 시절을 기록한 스테파니 랜드(오른쪽)의 자전적 회고록 메이드(MAID: Hard Work, Low Pay, and a Mother's Will to Survive)의 표지(왼쪽).

미혼모가 된 젊은 여성이 삶을 위해 부유층의 집을 청소하는 가사도우미 일에 대한 소감을 기록한 회고록 ‘메이드(MAID: Hard Work, Low Pay, and a Mother's Will to Survive)’는 출간하자마자 전미 베스트셀러가 됐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9년 연간 추천 도서로 뽑기도 했다. 이 책은 2021년에는 넷플릭스에 의해 영화화도 결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고록에 그려진 가사도우미들은 자신을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취급하는 자들의 부엌과 화장실을 매일매일 닦는다. 그러나 저자는 빈곤과 폭력을 일삼으며 경제적 자립을 가로막는 연인, 구멍 난 복지, 편견의 눈, 그리고 누구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하는 고독 속에서도 작가가 되는 꿈과 자신의 해방을 이뤄간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본 격차 사회의 실상과 조금씩이라도 스스로 미래를 바꾸어 가는 희망을 그린 이 회고록의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 회고록에 드러난 가사도우미들의 실상

2020년 5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곳곳에서 ‘소셜 디스턴싱(사회적 거리 두기)’이나 ‘락 다운(도시봉쇄 혹은 자택 대기)’이 벌써 2개월 이상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업을 재개하기 시작한 곳도 있지만, 백신 등 예방책이 없는 현 상태에서는 팬데믹 전과 똑같은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을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유명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이 파산하는 등 최근 2개월 동안 4,000만 명 정도가 직장을 잃었다. 이에 따라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훨씬 넘는 경제위기로 치닫는 것을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다. 경제적 불안과 함께 자택 격리에 대한 초조감도 커지고 있으며 총을 들고 ‘락 다운 반대 운동’을 하는 집단도 있다. 이 불온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소셜미디어에서 이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얼마 전 영국과 미국 양국을 아우른 한 트위터 논쟁에 흥미를 느껴 스레드를 읽다가 이 책 ‘메이드’ 저자인 스테파니 랜드의 계정을 만났다. 마침 이 책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뜻밖의 재미에 놀랐다.

논란의 발단은 영국의 보수성향 남성 정치 저널리스트가 “가사도우미를 집에 들임으로써 그들 가정의 가계를 도와줄 수 있지만, 자신의 할머니를 차에 초대하는 것과는 다르다”라며 청소원이나 배관공 등의 비즈니스 조기 재개를 호소하는 트윗을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가디언지의 한 칼럼니스트는 “남성이 청소부를 고용할 형편이 된다면 돈을 내고, 그렇지 않다면 집에서 직접 청소해야 한다. 그런 시간적 여유는 있을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제멋대로인 인간일 뿐”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거기에 가디언지에도 기고하고 있는 여성 칼럼니스트가 끼어들며 논란이 가열됐다. “락 다운으로 시간 여유가 생기진 않았다. 직장에서의 일터를 집으로 옮기면서 어른과 두 명의 틴에이저와 공유해야 하는 나에게는 더 시간이 없어졌다. 평소보다 집에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더러움도 쌓여 있다. 나는 청소로 죽을 정도로 피곤한데 이러한 의견은 실례”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전술한 남성 칼럼니스트는 “틴에이저에게 청소를 시키면 된다. 내가 어렸을 때 일상적 집안일은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했다. 게다가 저임금으로 일하는 여성에게 건강 또는 생명의 위험을 지우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처음엔 (안면이 있다고 여겨지는) 영국인 저널리스트와 칼럼니스트끼리의 교환이었는데 바다를 사이에 둔 미국으로부터도 페미니스트를 자칭하는 백인 여성, 백인 여성의 선민의식을 비판하는 유색 인종의 여성이 가세하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스스로 자신의 집을 청소하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는 왜 이러한 논쟁이 뜨겁게 불붙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문화충격을 받은 것이 ‘청소’에 대한 감각 차이였다. 딸의 동급생이 놀러 왔을 때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큰 소리로 “너희 집 가난해?”라고 딸에게 물으며 “너희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클리닝 레이디(청소부)가 한다”고 말했다.

내가 직접 집 청소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건 싸게 외주를 주고 본업에 집중하는 게 경제적”이라고 조언해 준 전문직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 화장실 청소를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은 실례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계속 스스로 청소하고 있다.

알고 보니 시부모님이나 형제, 내 친구 등 주변의 미국인 중에 청소부를 고용하지 않는 가정은 거의 없었다. 특히 백인 여성의 발언에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여자는 스스로 화장실 청소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배어 나온다. 화장실 청소를 남성들이 여자에게 떠넘겨 온 더러운 일로 여겨지던 과거뿐 아니라, 귀족이나 부자들이 손이 더러워지는 일을 하인에게 맡겨 온 역사가 그 심리의 배경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영국 등 유럽의 백인 국가들이 북미, 카리브해,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진출해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시대에 이들 국가의 주민을 노예나 하인으로 사용해 온 역사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청소부 직업은 유색 인종이나 이민 여성이 많지만, 이들을 대하는 백인 클라이언트의 태도에는 TV나 영화에서나 보는 영국 귀족 같은 거만함이 있다.

화장실 청소로부터의 해방은 미국과 유럽의 여성에게는 억압받아 온 ‘스테레오 타입’으로부터의 해방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로부터 해방된 여성이 그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유색 인종이나 이민 여성이나, 예기치 않게 미혼모가 되어 누구의 도움을 얻을 수도 없었던 이 책의 작가 스테파니 랜드와 같이 직업의 선택사항이 거의 없는 여성이다.

트위터에서 말다툼이 벌어질 만큼 필요한 직업이지만 처우는 최악이다. 중노동인데도 시급 9달러 정도밖에 못 받고 교통비도 자비라고 한다. 저임금에다 일하는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여유도 없다. 일할수록 불리해지는 부실한 복지제도까지 발목을 잡고 있어, 이들은 녹초가 될 때까지 노력해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 미국의 초격차 사회 남의 일이 아니다

청소부를 고용하는 사람들은 “내가 고용해주지 않으면 이들은 생활이 어렵다. 나는 일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자신이 청소부에 대해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 것을 자랑하듯 “나는 나의 청소부가 너무 좋다”라고 트윗한 영국인 여성도 있다. 하지만 어느 미국인 여성은 그 여성에 대해 “친애하는 영국인 레이디에게. 나는 걸음마를 걷는 아이를 가진 싱글 맘이었을 때 당신 집을 청소한 사람이다. 나는 당신들 모두를 싫어한다. 당신 화장실에 팔꿈치까지 넣고 청소하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당신이 인터넷에 말했다면 난 기꺼이 당신 창문에 벽돌을 던졌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스테파니 역시 거기에 ‘동감’이라고 코멘트해 리트윗 했을 뿐이었지만, 그녀가 이 트위터 논쟁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분명했다.

여성 칼럼니스트의 공격적 반론을 받은 남성 칼럼니스트는 자택 대기로 한가해진 여자가 청소해야 한다는 등의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나는 일에 바쁘니까 청소 따위를 할 수 없다. 틴에이저에게 시키면 된다”라고 한 그녀의 반론에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는 나와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나의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 따위의 하찮은 일은 할 수 없다”(그러므로, 고등교육을 받지 않고, 스킬이 없는 여성에게 맡기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라는 속내가 비쳐 보인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청소부도 자랑스러워 해야 할 훌륭한 일이라고 칭찬해도 그것이 의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테파니와 가사도우미들은 잘 알고 있다.

남의 집 더러운 화장실을 치우고, 그 집 사람들에게서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가사도우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기 전에 임신해 파트너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 미혼모나 가정폭력으로 가출한 젊은 여성 등에게 살아남기 위한 선택은 가사도우미나 성 산업 정도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고용해 도와주고 있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자기기만’을 그들은 미워한다.

스테파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을 깔보면서 이용하는 고객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일의 선택사항이자, 그것을 지탱해 주는 사회복지인 것이다. 글재주가 있고 문필가가 되는 노력을 계속했던 스테파니는 가사도우미의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스테파니가 쓴 이 책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진심을 알 기회를 얻었다.

한국과 일본에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가사도우미가 별로 없다. 하지만 스테파니처럼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있고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도맡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일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어 생활보호를 받게 된다. 스테파니도 쓰고 있지만, 미국에는 그러한 사람들을 ‘스스로는 노력하지 않고, 복지를 먹고 사는 게으름뱅이’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주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복지를 부당하게 이용해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한 여성에 대한 1974년 시카고 트리뷴의 기사가 유명해지면서 레이건은 그것을 대선에 이용해 빈곤층의 원조 삭감을 정당화했다. 당시 레이건 캠페인에 의해 이들은 생활 보호를 받으며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복지 여왕’ 이미지가 굳어지게 됐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한데도 생활보호를 받는 여성은 지금도 ‘복지 여왕’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성뿐만 아니라 생활보호를 받는 많은 사람들은 단지 불운했을 뿐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수급자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차갑지만, 예기치 않았던 사고, 질병, 실업, 임신 등으로 사람들은 간단하게 빈곤에 빠지고 있다.

이 책에서 스테파니가 가사도우미가 된 것은 리먼 쇼크 시대다. 그러나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은 그것을 넘는 경제난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불운한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동안 자기 자신과 관계없으며 ‘가난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외면했던 사람들에게도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뜻밖에 넘어졌을 때 그대로 언덕을 굴러떨어지지 않는 사회를 지금부터라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이 책이 그런 사회적 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