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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도종환 '담쟁이'와 북산(北山) 김수철 '능소화도(凌霄花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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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도종환 '담쟁이'와 북산(北山) 김수철 '능소화도(凌霄花圖)'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소서가 지나는 이맘 때라면 능소화 꽃구경은 꼭 해봄직하다. 절집이나 양반가 한옥 담장에 곱게 핀 능소화 혹은 암벽이나 성벽을 타고 오르면서 마치 역사적인 전쟁(안시성 전투)의 한 장면을 기록으로 붉게 쓰는 듯 능소화 무더기를 혹여 대면하는 기회가 온다면 그것이 곧 인생살이의 행복이자 즐거움이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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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北山) 김수철의 (19세기,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며칠 전, 소서(小暑)가 지났다. 무더위와 장마철이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더불어 이때서야 후루룩 면발을 치는 시원한 국수류 음식은 그 맛이 최고다. 끝내준다. 주말을 이용하여 87세인 내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과 함께 메밀국수를 먹으러 가까운 안성에 다녀오고자 한다. 그 곳에 유명한 막국수집이 있단 풍문을 들었다. 이 때문이다.

人生此樂餘無願 (인생차락여무원)

사람으로 살면서 이러한 즐거움은 더 바랄 것이 없다, 라는 뜻이다.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난 후, 한가로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좋은 곳 구경하고자 걸으면서 가볍게 산책하는 그 시간이 바로 나에겐 커다란 행복이다.

可人如玉步屧尋幽 (가인여옥보섭심유)

마음에 쏙 드는 백옥 같은 사람이 나막신 신고 깊은 산중을 찾아간다, 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 여덟 글자(八字)는 옥 같이 소중한 내 가족과 함께 좋은 신발 신고서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곳을 찾아 산책한다, 라는 그런 얘기다.

소서가 지나는 이맘 때라면 능소화 꽃구경은 꼭 해봄직하다. 절집이나 양반가 한옥 담장에 곱게 핀 능소화 혹은 암벽이나 성벽을 타고 오르면서 마치 역사적인 전쟁(안시성 전투)의 한 장면을 기록으로 붉게 쓰는 듯 능소화 무더기를 혹여 대면하는 기회가 온다면 그것이 곧 인생살이의 행복이자 즐거움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 환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번질 것이다.

그저 풀(草)인 줄 알았는데 제때를 만나(化) 피어나는 꽃(花),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라고 한다. 그렇기에 양반의 나라 조선에서는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 내리는 ‘어사화(御賜花)’로서 곧잘 쓰이기도 했단다. 그러니까 ‘가문의 영광’으로 양반집 높은 담장에 꽃자리를 비로소 잡게 된 셈이다. 능소화가 예쁘기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대구 ‘인흥마을(남평문씨 본리세거지)’ 흙돌담길이 아마도 대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앞의 문인화 작품은 19세기 조선에서 활동한 바 있는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 생몰년도 미상)이 그린 것이다. 김수철은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가 쓴 <이야기 한국미술사>(마로니에북스, 2019년)에도 등장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19세기에는 신명연이나 남계우처럼 화원 못지않게 사실주의 그림을 즐기는 문인화가도 출현했다.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경향의 김정희 일파가 19세기 문예계의 가장 커다란 계파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람 전기, 북산 김수철, 혜산 유숙, 희원 이한철 등처럼 김정희 문하에 들락거리면서 사대부의 교양을 익히려는 화원이나 중인층 화가들이 증가했고, 그러면서 남종화풍에 매료되었다. 이들 김정희 일파의 바람은 18세기에 꽃피운 조선풍 진경산수화나 풍속화의 사실 정신을 밀어내기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대부층이 무너지는 시기에 문인화의 정체성이 강화된 격이었다. (<이야기 한국미술사> 402쪽)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사후, 양반 밑 중인들의 출사(出仕)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왕권이 순조, 헌종, 철종 차례로 이어지는 시기는 왕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면서 외척세력 장동(壯洞) 김씨 세력이 전면에 득세한 때였다.

동시에 중인 화가들의 수장이자 양반인 추사(秋史) 김정희의 추락(9년 동안 제주 유배)으로 완전히 낮은 관직의 벼슬조차도 그 기회가 모두 사라졌다. 그것은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로 신분이 인식되면서 차단되고 말았다.

추측컨대 북산은 자신이 꽃으로 필 줄 알았을 것이다. ‘도로아미 풀’이 될 줄은 꿈엔들 몰랐을 것이다. 아니다.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다시 김수철의 <능소화도(凌霄花圖)> 그림을 보자. 그림은 양반가 높은 담장에 기웃대지 않았다. 오로지 암벽(岩壁)에만 의지하고 있다. 활짝, 못다 핀 꽃송이가 화면 상하로 여럿 보인다.

못다 핀 꽃송이 중엔 어쩌면 북산 자신도 포함시켜 그려냈을 터. 그리하여 어느 날엔가는 “담쟁이”의 모습을 한 채로 “말없이 그 벽을 오르”려고만 했을 것이다. 중인도 양반이 될 수 있는 그런 개벽(開闢)의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비단 그를 둘러싼 환경이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에도 차마 붓을 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결단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려는 소원과 희망을 맑고 청신하게 능소화의, 못다 핀 꽃송이 같은 마음을 실어 화폭에 담아낸 것이리라.

여기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입사해 국내 대기업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立志傳)의 인물이 있다. 신헌철(1945~ ) 전 SK에너지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나는 그의 서재를 10여 년 전에 책으로 구경했던 바 있다. 한정원 작가의 <경영은 인문정신의 예술이다-CEO의 서재>(행성:B잎새, 2012년)에 자세히 보인다. 거기에서 나는 처음 시인 도종환(1954~ )의 명시 <담쟁이>를 우연하게 만날 수 있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신헌철 전 SK에너지 부회장은 책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

“내가 도종환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가 쉬워서예요. 시인이 울면서 쓴 시가 아니면 독자도 울지 않는 법이죠. (중략) 수백 번 읽은 시이지만 매번 새롭고 감동적이네요. (중략) 시인은 시를 통해 말해요. 우리는 모두 착하고 여리고 맑고 곧은 심성을 지닌 시인인데, 이런 것들을 자꾸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요.” (<경영은 인문정신의 예술이다> 199~202쪽)

그렇다. 도종환의 시는 대체로 어렵지 않다. 이해하기가 쉽다. 이 점이 참 좋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시인은 문화체육부 장관(2017년)이 되더니 엊그제는 TV에 나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 청문회에서 관계자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게 좀 왠지 낯설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시 <목백일홍>, <접시꽃 당신>, <벗 하나 있었으면> 등은 명시로서 친숙하고도 반갑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이 시 한 줄이 내겐 반복 외우기의 즐거움이 된다. 오랜 상처의 마음에 치유가 되었다. ‘여럿’은 누군가. 그것은 ‘가족’이기도 하고, 가까운 ‘친구’가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웃과 사회’로 확장이 되면서 자꾸만 읽힌다.

지금은 코로나19로 ‘함께 손을 잡’을 수는 없는 처지이지만, 우리들 모두가 담쟁이처럼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처음 모습은 담쟁이나 제때를 만나면 “결국 그 벽을 넘”어가기만 한다면 주황색이라기보다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의 꽃처럼 활짝 웃음 필 날이 머잖아 찾아올 것이다.

문제는 ‘섶’이다. 이게 지금 필요하다. 덩굴지거나 줄기가 가냘픈 식물이 의지해 자라도록 옆에 꽂아줘 성장을 돕고 꽃길을 틔우는 막대기. 그것을 일러 우리말로 ‘섶’이라고 한다. 이게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작금의 시기이다. 담쟁이덩굴이 잘 자라나도록 국민이 무언가(?)를 타고 올라가도록 정치는 ‘섶’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를 정부와 정치인들이 모를 일이 없다.

민초(民草)는 얼마든지 담쟁이가 될 수 있다. 담쟁이가 되어서 잘 살던 집을 하루아침에 폐가(廢家)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볼 것 하나 없던 초라한 집의 담장이나 허문 벽조차 능소화는 해마다 연꽃이 피는 칠월이 오면 어김없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할 줄 안다.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근처 ‘로스가든’(원로 연기자 노주현씨의 카페)에 활짝 핀 능소화를 가족과 같이 보았다. 행복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호숫가에 연꽃이 없어서 좀 허전했다. 그럼에도 솔밭(松林)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그냥 하염없이 물가를 바라보는 시야는 잘 그려진 산수화 그림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기에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 옛날, 중국 당나라 최고시인 두보(杜甫, 712~770) 또한 가족의 사랑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으로 살면서 이러한 즐거움은 더 바랄 것이 없다(人生此樂餘無願)는 속내를 고백한 것이다. 그것이〈거룻배를 뛰우고(進艇)〉라는 시(칠언율시)에 보인다. “낮엔 늙은 아내를 데리고 작은 배를 타고, 갠 날에는 아이들이 멱 감는 것을 보노라(晝引老妻乘小艇, 晴看稚子欲淸江)”고 하였다. 당 숙종, 상원(上元) 2년(757년)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따져보니 내 나이(57세)와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의 선조 정약용(鄭若鏞, 1762~1836)의 유명한 ‘다산(茶山)’이란 호는 18년 묶여 있던 유배지 전남 강진 땅 ‘다산’이란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그 또한 두보처럼 아내와 자식 사랑이 아주 각별했다. 오죽하면 다산(多産)을 했을까. 부부 사이에 6남 3녀 자녀를 두었다. 이 때문이다. 그는 남자 나이 마흔 이전에 이미 고향인 지금의 남양주 두물머리 근처에 선상가옥(船上家屋)을 만들어 가족과 단란하게 살고자 했으나 정조의 부름(1800년)이 있어서 그 ‘소확행’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그만 포기한 것이다. 아무튼 시를 쓰는 사람들의 아내 사랑과 자식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다정다감한 편이다.

연꽃과 능소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올 여름 피서는 양평, 가평, 청평 등의 ‘平’자에서 고만 벗어나고자 한다. 대신에 경북 문경에 소재하고 있는 ‘주암정(舟巖亭)’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동행할 벗을 꼬드기는 중이다.

배의 형상을 닮은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 주암정을 몇 해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여적 가보진 못했다. 나는 칠월 중에 그 곳으로 떠나고자 한다. 연꽃과 배(바위) 뒤편에 핀 능소화를 실컷 구경할 것이다. 1박2일 일정이다. 나와 같이 떠날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벗 하나 있었으면>에서)

연꽃에겐 능소화가 벗이고, 능소화에겐 내가 기꺼이 다가가서 이참에 친구가 되어 보리라. 야무진 내 의지이자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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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도종환 <한국대표명시선100-담쟁이> (시인생각, 2012)

한정원 <경영은 인문정신의 예술이다-CEO의 서재> (행성:B잎새, 2012)

박은순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그림>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8)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김영사, 2011)

이태호 <이야기 한국미술사> (마로니에북스, 2019)

이종묵 <한시 마중> (태학사, 2012)

안대회 <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궁극의 시학> (문학동네, 2013)

박남일 <우리말 풀이사전> (서해문집, 2004)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