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G 칼럼] 선비들이 수박을 안 먹은 이유

공유
2

[G 칼럼] 선비들이 수박을 안 먹은 이유

center
사진=픽사베이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에는 끔찍한 무기가 있었다. ‘인유포(人油砲)’라는 무기였다. ‘인유포’는 글자 그대로 ‘사람 기름 대포’였다. 몽골군은 사람 몸에서 짜낸 기름에 불을 붙여서 화포를 발사했던 것이다.

몽골은 쳐들어가는 곳마다 6가지 ‘항복조건’을 제시했다. 이른바 ‘몽골 6사(六事)’다.

① 인질을 바칠 것 ② 군사를 내서 몽골을 도울 것 ③ 식량을 제공하고, 운반할 것 ④ 역참을 설치하고, 교통편의를 제공할 것 ⑤ 호구를 조사해서 보고할 것 ⑥ 총독인 다루가치를 둘 것 등이었다. 이 ‘6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면 ‘싹쓸이’를 당해야 했다.

몽골군의 ‘싹쓸이’는 가차 없었다. 쓸모없는 늙은이와 어린아이부터 제거했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지는 않았다. 기름을 짜서 ‘재활용(?)’했다. 전사한 적군에게서도 기름을 짰다. 그 기름을 ‘인유포’에 써먹은 것이다.

몽골군은 고려를 침략할 때도 예외 없이 ‘인유포’를 들이밀었다. 항복하지 않으면 모조리 ‘인유포의 재료’가 될 판이었다.

그렇지만 고려는 굴복하지 않았다. 유명한 귀주성 싸움에서 김경손(金慶孫) 장군은 날아온 화살이 팔뚝에 꼽혔다. 그래도 쥐고 있던 북채를 놓치지 않고 북을 울렸다.

처인성 싸움에서 김윤후(金允侯) 장군은 적장 살리타이를 화살 하나로 끝내 버렸다. 지휘관을 잃은 몽골군은 황급하게 철수해야 했다. 고려는 꿋꿋하게 나라를 지켰다.

그런 가운데 혼자 살아보겠다는 배반자도 있었다. 대표적인 배반자가 ‘홍다구(洪茶丘) 패밀리’였다. 패밀리였으니, ‘일가’였다.

홍다구의 할아버지 홍대순(洪大純)은 몽골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항복했다. 홍다구의 아버지 홍복원(洪福源)은 살리타이가 쳐들어왔을 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길잡이 노릇을 했다.

홍다구는 아예 몽골에 귀화해서 몽골 군사가 되었다. 대를 이은 ‘배반자 가문’이었다.

홍다구는 삼별초의 항쟁까지 억눌렀다. 삼별초가 내세운 승화후 온(溫)과 아들 환(桓)을 살해하고 출세한 것이다. 그러면서 몽골에 잘 보이기 위해 백성을 괴롭혔다. 덕분에 떵떵거리고 살았다. 그랬으니 ‘이완용의 대선배’ 격이었다.

그런데, 이 배반자 홍다구가 어느 날 처음 보는 과일을 개성에서 길러서 냠냠하고 있었다. ‘수박’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더위를 식혀주는 수박은 ‘배반자의 과일’이었던 셈이다.

수박은 달콤하고 시원했다. 냉장고라는 게 없던 당시였다. 냇물에 묻어두었다가 꺼내 먹으면서 더위를 견딜 수 있는 과일이었다.

이 맛좋은 수박은 곧바로 유행할 만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세계 최강’인 몽골과 30년이나 맞서서 싸운 고려였다.

배반자의 과일은 환영받지 못했다. 뜻 있는 사람들은 더욱 수박을 외면했다. 그 바람에 수박이 널리 보급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려야 했다고 한다.

요즘은 수박도 이른바 ‘다운사이징’ 되고 있다. 미니수박, 반쪽 수박, 반의반 수박, 반의반☓2 수박 등등이다. 1∼2인 가구도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와 가격으로 판매하겠다는 상술이다. 판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돌이켜본 ‘수박의 과거사’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