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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코로나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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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코로나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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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鄭蘊∙1569-1641)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영창대군의 처형을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10년 동안이나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한 선비다.

정온의 귀양살이는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집 주위에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가두는 것이다. 꼼짝없이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온은 기나긴 귀양살이를 하면서 ‘위리안치’에 대한 글을 남겼다.

“위리(圍籬)의 구조를 살펴보면 산죽(山竹), 싸리나무, 가시나무 등을 조그마한 틈도 나지 않게 두껍게 세워서 만든 울타리가 있는데, 그 높이가 집의 용마루보다 높으니 아마 열 자 정도는 될 것 같다. 그 울타리에는 긴 나무 막대기를 4층으로 띠를 만들어 둘러놓았는데 너무 높아서 바람에 쓰러질까봐 안팎으로 버팀목을 받쳐 놓았다.

그리고 북∙동∙남 삼면을 집의 추녀에 붙여 놓았기 때문에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서쪽으로 약간의 여유를 두고 있었는데 마치 우물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것처럼 답답함이 느껴졌다.

울타리 안으로 동서쪽에는 그래도 한 자 남짓한 공간이 있는데 남북 쪽에는 그것도 그 3분의 2쯤밖에 되지 않았다. 남쪽에는 나무판자로 문을 만들고, 서쪽에는 조그마한 구멍을 만들었는데 여기는 음식을 넣어주는 곳이었다.
위리에 들어갈 때에는 의금부 관리인 금오랑(金吾郞)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문 밖에 와서 교상(轎床∙가마)에 걸터앉은 채 나장(羅將∙나졸 우두머리)을 시켜 죄인인 나를 도와 이곳에 들어가게 하고 문을 닫아 잠근 뒤에 문고리를 봉(封)했다. 그리고 울타리 서쪽 끝에 조그마한 사립문을 만들었다. 전례(前例)에 따른 것이었다.…”

‘위리안치’를 당하면 옴치고 뛸 재간이 없었다. 갑갑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정온처럼 바깥 구경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 ‘전근대적인 현상’이 21세기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구촌의 수많은 인구가 소위 ‘자가 격리’, 또는 ‘이동 제한’으로 집안에 갇히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고스란히 ‘방콕’이나 ‘집콕’이다. ‘왕짜증’ 때문에 ‘코로나 블루’라는 말까지 생기고 있다.

‘위리안치’는 자가가 아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갇히는 것이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닮은꼴이라고 할 것이다. 코로나 19 탓이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서는 “집에 머물라(stay-at-home)”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들이도 하기 껄끄러운 ‘금지령’이니 ‘위리안치’가 따로 없는 노릇이다. 과거의 ‘위리안치’와 다른 것은 죄만 짓지 않았다는 점일 뿐이다.

미국의 비영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세계 인구의 약 93%가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외국인의 입국을 막는 ‘국경폐쇄’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숫자가 자그마치 72억 명이다. 나라 안에 묶인 인구가 이렇게 많았다. 그렇다면 나라 전체가 ‘위리안치’다.

가장 강력한 ‘위리안치’는 아마도 북한일 듯싶어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코로나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자택에 격리시키고 격리자의 집 문에 ‘대못’을 박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봉쇄해버리고 있다고 한다.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지난달 초 코로나 19에 감염된 일가족 5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했다. 치료도 받아보지 못한 채 온가족이 집안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