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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조주빈의 ‘노예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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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조주빈의 ‘노예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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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조주빈. 사진=뉴시스
고려 말 유명한 학자 이곡(李穀∙1298∼1351)이 수도 개경(開京)의 시장골목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얼굴을 아름답게 꾸민 여자들이 몸을 팔고 있는 게 보였다. 얼굴 생김에 따라 몸값이 비싸기도 하고, 싸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공공연하게 몸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런 곳을 ‘여자 시장(여사·女肆)’이라고 했다.

이곡은 관청을 들어가 보았다. 공문서를 작성하고,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뇌물은 사건의 경중에 따라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했다. 뇌물을 거리낌 없이 받으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관리 시장(이사·吏肆)’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곡은 ‘사람 시장(인사·人肆)’도 구경할 수 있었다. 가뭄과 홍수로 양식이 떨어진 사람이 많았다. 힘센 사람은 도둑이 되고, 약한 사람은 떠돌이가 되었다. 그래도 입에 풀칠할 재간이 없었다. 그러자 부모가 자식을 팔고, 남편은 아내를 팔며, 주인은 종을 팔기 위해 시장에 줄을 지어 있었다. 이들의 몸값은 너무나 쌌다. 개나 돼지 값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곡은 이처럼 희한한 시장을 보고 ‘시장 이야기’를 쓰며 개탄하고 있었다. ‘시사설(市肆說)’이라는 글이다. 고려 말의 일이었으니, 이른바 ‘말기적 현상’이었다.
그랬던 이곡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둘러보고 다시 글을 썼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자시장도, 관리시장도, 사람시장도 모두 엄청나게 진화하고 있었다. 이곡은 그중에서도 사람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지적장애 노숙자를 섬 지역의 염전이나 양식장 등에 팔아넘긴 ‘노예 상인’이 있었다. 노숙자들은 그 바람에 ‘염전 노예’가 되고 있었다.

어떤 농장에서는 ‘축사 노예’가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주인 부부는 월급도 주지 않은 채 축사와 밭일을 시키다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상습 폭행’하고 있었다.

또 어떤 타이어가게에서는 40대 지적장애인이 얻어맞고 있었다. 주인은 월급도 주지 않으며 10년 동안이나 부려먹으며 곡괭이자루와 파이프∙각목으로 ‘상습 폭행’하고 있었다. 지적장애인은 ‘타이어 노예’였다.

이곡이 혀를 내두르는데, 또 다른 ‘노예’가 보이고 있었다. ‘조주빈’이라는 젊은이가 ‘성 착취’를 하면서 만든 노예다. 10대 미성년자까지 노예로 만들고 있었다. 몸에 칼로 ‘노예’라고 새기라고 강요했을 정도라고 했다.

이곡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발견한 것은 노예 시장, 이를테면 ‘예사(隸肆)’였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