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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사 의원·약국 개설' 시민편의에 좋다는데 복지부·지자체는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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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사 의원·약국 개설' 시민편의에 좋다는데 복지부·지자체는 '오락가락'

강남구청역 내 입대점포 추진 의·약사, 강남보건소 불허에 "행정소송 불사"
지하철역 건축물 용도 놓고 자치구마다 유권해석 달라...은평·광진·서초는 '허가'
서울교통공사 "법 개정으로 혼란 해소...복지부 허가 입장서 다시 불허 납득 안가"
의사회 "지하철역 감염병 확산에 취약" 반대에 "의원·약국 상주로 차단 효과" 반박

서울 동대문구 서울교통공사 본사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동대문구 서울교통공사 본사의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교통공사(서울메트로)가 시민 편의 증진을 위해 지하철역사 내 의원과 약국의 개설을 늘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와 자치구의 비협조, 영업권 잠식을 우려한 지역 의·약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진통을 겪고 있다.

8일 서울교통공사와 의약업계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7호선과 분당선의 환승역인 강남구청역 내에 의원과 약국 개설을 준비하는 의사 A씨와 약사 B씨는 개설 허가 불허 방침을 밝힌 관할 강남보건소를 상대로 이르면 이달 중 개설 허가를 요청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 A씨와 약사 B씨는 지난 3월 서울교통공사와 강남구청역 역사 안에 의원 입점을 위한 점포 임대차 계약을 맺은 뒤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의원과 약국 개설에는 관할 지자체 보건소의 허가가 필요하고, 강남보건소는 두 사람의 강남구청역 역사 내 의원과 약국 개설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A, B씨 두 사람이 강남보건소의 개설 허가를 받지 않고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간 셈이다.

얼핏 보기엔 두 사람의 행정절차상 잘못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도 당사자들은심야 시간대를 이용해 역사내 의원과 약국 개설 공사를 완료한 뒤 강남보건소에 개설을 신청해 만일 최종 불허 결정이 나오면 소송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왜 두 사람은 무모해 보이는 이같은 행동을 밀어부치는 것일까. 의약업계는 의사 A씨가 강남보건소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공사부터 시작하고 행정소송까지 불사하려는 이유로 서울지하철 역사 내 의원과 약국 개설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다 관할 부처나 지자체마다 유권해석이 다르거나 번복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 등 관련부처와 서울시, 각 구청 등 지자체의 태도가 제각각인 상태에서 A씨는 점포 임대권자인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역사 내에 의원을 개설해도 좋다는 유권해석을 전달받고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실제로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사 안에 지난 2017년 1월부터 의원 시설이 은평구청과 은평보건소의 허가를 받아 운영되고 있다.

당시 은평구청과 관할 보건소는 지하철 역사 내 의원 개설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허가를 내줬고, 현재 해당 의원은 오후 10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하면서 지하철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여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국의 경우는 의원보다 더 사례가 많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역을 포함해 광진구 건대입구역(2호선), 서초구 고속터미널역(3·7·9호선 환승) 등 서울지하철 역사 내에 약국 6곳이 영업 중이다.

그럼에도 같은 서울 지역 내에서도 자치구마다 허가 기준이 달라 수년째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의원이나 약국을 개설하려면 개설신고서 등을 보건소에 제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보건소는 건축법에 따라 건축물대장을 확인해 의원·약국이 개설될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인지 건축물의 용도를 확인한다.

그런데 지하철역사는 건축법이 아니라 도시철도법에 의거해 지어진 건축물이라 건축물대장이 없어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를 확인할 수 없다.

강남보건소는 근린생활시설임을 확인할 수 없어 강남구청역사 내에 의원과 약국을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7월 강남구청과 동일한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렸고 서울시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서울지하철 역사 내에 의원과 약국이 한 곳도 들어서서는 안된다. 그러나 은평구, 광진구, 서초구처럼 지하철 역사 내에 의원 1곳과 약국 6곳이 지난 2014년부터 개설돼 운영돼 오고 있다. 지하철 역사가 근린생활시설인지 아닌지의 건축물 용도 규정이 없어 정부부처나 지자체의 자의적인 유권해석에 따라 개설 허가 여부가 엇갈리게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서울교통공사 따르면, 지난 2014년 이같은 건축법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철도법이 개정됐고, 당시에는 보건복지부도 지하철역사 내 의원과 약국 개설을 반대하지 않아 같은 해 8월부터 약국과 의원이 지하철 역사 내 개설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법 개정 당시에는 개설을 허가했다가 지금 와서 강남구 등 일부 지자체가 허가를 거부하고 복지부도 과거와 입장을 바꾼 행동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개정된 도시철도법 제2조에 따르면 '도시철도시설'은 근린생활시설을 포함하는 역 시설을 의미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강조하면서 "역사 내 의원과 약국 개설을 바라는 시민이 많아 시민편의 증진을 위해 의원·약국 개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기관과 각 지자체의 법 해석이 달라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강남구청역 외에도 송파구 잠실역과 강서구 발산역에서도 역사 내에 의원·약국을 개설하려는 의·약사와 관할 보건소 간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서울시의사회 관계자는 "다중이용시설인 지하철역은 감염병의 대규모 파급에 취약한 곳"이라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에도 이미 의원이 입점해 있지만, 지하철 역사는 더 폐쇄적인 지하공간이라 더 취약하다"며 지하철역사 내 의원과 약국 입점을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에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의료계의 감염병 확산 우려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상주해 있다면 오히려 감염병 차단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 의원·약국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사 내에 신규 의원과 약국이 생기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기득권 지키기' 집단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면서 "서울시와 복지부가 명확한 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소모적인 소송전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