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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먹을거리, 먹이, 그리고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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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먹을거리, 먹이, 그리고 먹거리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텔레비전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야생동물로 태어나 생명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 수 있다. 육식동물이든 초식동물이든 야생에서 ‘먹고 산다’는 것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먹고 산다’는 문제…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한다는 면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없는 공통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기 위해서는 먹을 ‘거리’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 모든 낱말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한다.) ‘거리’는 ‘반찬거리’처럼 ‘내용이 될 만한 재료’를 뜻한다. 그렇다면 ‘먹을거리’는 사람과 동물에게 공통으로 적용하는 낱말일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실상을 ‘먹을거리, 먹이, 먹거리’의 세 낱말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자.
우선 ‘먹을거리’는 ‘먹을 수 있거나 먹을 만한 음식 또는 식품’을 뜻한다. 여기서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이고, ‘식품’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먹을거리는 ‘동물’이 아닌 ‘사람’이 먹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음으로 ‘먹이’는 ‘동물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어야 할 거리, 또는 사육하는 가축에게 주는 먹을거리’를 뜻한다. 여기서 사람에게 사용하는 ‘먹을거리’를 동물의 ‘먹이’ 설명에 사용하기 때문에 모순이 생긴다. 이 모순의 해결방법으로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방법은 ‘먹을거리’와 ‘먹을 거리’를 구별하여, 붙여 쓰는 ‘먹을거리’는 지금처럼 사람에게, 띄어 쓰는 ‘먹을 거리’는 사람과 동물의 ‘material to eat’의 뜻으로 쓰는 방법이다. 즉 ‘먹이’의 풀이를 ‘……가축에게 주는 먹을 거리’로 수정하면 된다. 다만 이 방법은 이미 붙여 쓰는 ‘먹을거리’를 띄어 쓰는 ‘먹을 거리’로 구별하는 것이 인위적이고 불편한 점이 문제다.

둘째 방법은 ‘먹이’의 낱말풀이를 ‘먹을거리’가 아니라 ‘things to eat’에 해당하는 ‘먹을 것’, 즉 ‘……가축에게 주는 먹을 것’으로 수정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것’은 ‘사물, 일, 현상 따위를 추상적으로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구체적이라야 할 표현이 추상적으로 두리뭉실해진다는 점이 문제다.

셋째 방법은 ‘먹을거리’의 풀이에서 사람에게만 사용하는 ‘음식 또는 식품’ 대신 동물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거리’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즉 ‘먹을거리’의 풀이를 ‘먹을 수 있거나 먹을 만한 거리’로 수정하면 된다. 현실언어세계에서는 ‘먹을거리’를 동물에게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이 방법은 ‘먹을거리’는 사람에게 사용한다는 사전적 기준을 흔들 수 있는데, 이 문제는 ‘먹거리’ 낱말의 활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먹거리’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온갖 것’으로 ‘사람’에게 적용한다고 명확히 풀이하고 있고, ‘전통 먹거리’처럼 ‘먹을거리’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위와 같이 ‘먹을거리, 먹이, 먹거리’의 의미를 비교해볼 때, 관용적으로 동물에게도 사용하는 ‘먹을거리’의 낱말풀이를 현실에 맞게 고치면 어떨까? 다시 말해 ‘먹을거리’는 사람과 동물에게, ‘먹이’와 ‘먹거리’는 기존의 낱말풀이에 따라 ‘먹이’는 동물에게, ‘먹거리’는 사람에게 사용하면 어떨까? 사람과 동물의 공통점을 인정하고 차이점을 구별하면서도, 차별 없이 똑같이 귀하게 여기는 낱말 사용이 아닐까?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