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대개의 업무들이 공단 입지, 도로·항만·공항 인프라 등의 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지 물색, 공장이나 관련시설 건축, 주변 인프라 조성 등으로 이어지기에 인·허가권을 가진 지방 공무원들과 교류가 많은 특징도 있다고 한다.
그 날도 법인대표가 직접 부지매입 계약을 하고 넘겨 준 업무라 별 생각없이 찾아가 들은 말이어서 그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용도'의 차이는 주변 시설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사업 시작단계에 한 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되는 일이다. 전혀 다른 용도라고 말을 하니 당황스러움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매입 당시의 서류도 찾아보고, 현지 공단부지를 분양한 현지 업체의 신문과 인터넷 홍보용 자료도 찾아보았다. 분양회사에다 근거를 보이며 따졌더니 모르는 체 했다. 본인들이 저질러 놓은 일인데도 무책임한 발언만 계속했다. 당황스러움이 ‘황당함’으로 이어졌다.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그냥 계속 모르쇠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정작 문제는 최종 허가권을 쥔 공무원이 설득이 안 되고 그냥 가면 이 프로젝트가 무산될 게 뻔하다는 점이었다. 부지 크기는 서울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 보다 조금 더 큰 3만평 규모이다. 금액도 현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크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 용도를 시정부가 말하는 대로 바꾸어 건설,분양하면 수익성이 반토막이 난다. 회사가 차별화된 사업 분야에 맞는 부지를 확보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문제가 된다. 신경쓰느라고 다른 기회도 놓칠 게 뻔해 보인다.
차분히 법인대표와 관련 직원들과 의논해 보았지만 앞서 언급한 상황을 넘질 못했다. '언더머니(Under the Table Money)'를 들이밀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현지에서 일이 막히면 일종의 급행료이자 뇌물로 해결하면 된다고 많이 들어오던 터였다.
그래서, 담당 공무원을 다시 찾았다. 상급부서와 지역 인민위원회도 찾아다녔다. 분양회사의 담당자를 탓하기보다 우리 사업의 성격과 불가피성, 주변 한국기업들의 입주 활성화 등으로 베트남 경제에 도움이 되는 측면으로 설득해 나갔다. 자국민의 실수만 강조하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메일과 전화로만 수십 통, 수십 번을 통화했다. 오가는 거리로 3~4시간이 걸리는 길을 5~6번 찾아 다녔다.
지난해 10월부터 그렇게 뜨거운 날을 보낸 6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에 연락이왔다. 일부 보완을 전제로 원하는 대로 허가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멋진 감격의 한 순간이었다. 당장 한 걸음으로 달려가 서류도 받고 감사의 표시를 하고 나왔다. 그렇게 뜨거운 날을 보내고 나니 6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중요한 것을 몸으로 배웠다. 현지인 존중의 커뮤니케이션, 실수의 가능성을 대비한 관공서 관련사항의 확인절차 등이었다.
대우의 'Global YBM'과정을 통해 1년 동안 힘들게 배운 베트남어 공부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만나고 설득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우리 베트남어를 그렇게 잘 하느냐"는 말도 들었다. 진정성 있는 소통과 '당신 나라에서 함께 하겠다'는 존중의 자세가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베트남 생활 초기부터 들은 '언더머니' 관행을 피했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해결됐다면 '기회의 땅' 베트남을 영원히 부정으로만 보고 있을 것이다. 담당 공무원과도 친하게 지낸다는 말에 모든 어려움을 넘긴 성취감이 묻어있었다.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