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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 경제학(38)][인도 투자(2)-또 하나의 세계 공장을 꿈꾸다] 모디 총리 제조업 강국 야심에 글로벌 기업이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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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 경제학(38)][인도 투자(2)-또 하나의 세계 공장을 꿈꾸다] 모디 총리 제조업 강국 야심에 글로벌 기업이 몰린다

IT 등 25개 산업 집중 육성 나서
2015년까지 GDP 비중 25%로
현대차 등 우리나라 기업도 잰걸음
새로운 지역경제 중심지로 부상
도로·전력·통신 등 인프라 확대
정부 지원 산업 투자하면 유리

제조업이 강하면 나라가 강하다.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모두 제조업 강국이다. 중국은 제조업을 키웠으며 세계의 공장이라 불렀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해서 자국 소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저가의 중국제품을 팔았다. 제조업은 농업, 서비스업 등 그 어떤 업종보다 고용을 많이 하고 경제성장 효과가 높다. 인구 대국이라면 제조업을 키워서 실업을 해소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정책이 가장 모범적이다. 2014년 5월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제조업 육성과 친시장 정책을 표방하였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로 불리듯 이를 ‘모디노믹스(Modinomics)’라 부르고 있다. 이제 인도가 중국의 다음 주자로 나서고 있다. 2014년 9월 모디 총리는 ‘Make in India’ 캠페인을 선언하였다. 자동차부품, 방위산업, 화학, 전력, 철도, 전자시스템, 항공기, IT 등 25개 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GDP 비중이 15%인 제조업을 2025년까지 비중을 25%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1년에 10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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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2014년 5월 나렌드라 모디가 총리로 취임한 후 제조업 육성과 친시장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출처=글로벌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부가 육성하고 지원하는 산업을 하면 순풍을 타게 된다. 정부가 중점 육성하는 업종을 살펴 투자하여야 한다. 인도는 제조업을 육성하여 12억9000만 명의 자국 소비는 물론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을 향한 수출 생산기지를 꿈꾸고 있다.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도로 전력 통신 등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해외직접투자(FDI)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몇몇 기업은 벌써 인도로 진출하였다. 1996년 인도에 진출한 현대자동차는 2015년 47만대를 판매하여 인도 자동차 시장점유율 17.3%를 차지하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2016년 5월 모디 총리를 만났다. 인도에 아이폰 생산 공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삼성과 중국의 샤오미(小米, ‘좁쌀’ 의미)는 이미 인도에서 스마트폰을 조립 생산하고 있다. 인도의 거대한 인구를 간과해서는 세계 시장점유율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는 고어(古語)인 드라비다어보다 역사가 짧은 힌두어가 있지만 공용어는 영어다. 영국 식민지배의 유산이다. 역설적으로 인도인의 해외진출과 해외기업의 인도 진출을 편리하게 하고 있다. 영어로 인해 인도가 IT강국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인도가 제조업을 육성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인도는 수출이 아닌 내수에 기반을 둔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풍(세계적 불경기)에 흔들리지 않고 7% 이상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도 진출할 때가 되었다. 더 많은 기업과 개인이 인도로 가야 한다.

▶ 인도, 새로운 지역경제 중심지

인도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부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몰디브 등 8개 국가 16억 명의 인구를 연결하는 ‘남아시아자유무역협정(SAFTA, South-Asia FTA)’이 2006년 7월 발효되었다. 또한 아세안 10개국과 인도 간 ‘아세안-인도 자유무역협정(AIFTA, ASIAN-India FTA)’은 2010년 1월 발효되었다. 이에 앞서 ‘벵골만 포괄적 기술•경제협력체제(BIMSTEC, Bay of Bengal Initiative for Multi-Sectoral Technical and Economic Coorporation)’는 1997년 6월 설립되었으며, 회원국은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7개 국가다. 여기엔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미얀마, 태국)가 포함되어 있다.

비록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무력화 시키고 있지만 이미 북미시장 무관세 진출을 위해 많은 기업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이와 같이 인도에 진출한다는 것은 남아시아에서 멕시코에 진출하는 것과 같다. 인도는 남아시아, 아세안 및 아프리카와 긴밀한 경제협력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동과 동남아를 잇는 중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의 고속성장은 지구상에서 유럽, 북미, 동아시아에 이은 또 하나의 강력한 지역 경제중심지가 생기는 셈이다. 인도에 진출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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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피(Rupee)화 환율

우리가 해외투자를 한다면 해당국가의 환율 변동을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환율이 투자손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도의 경우 2008년 달러당 40루피 부근이었다. 이후 2015년 말까지 환율이 꾸준히 상승했다. 루피의 화폐가치가 점점 떨어졌다는 의미다. 그 후 2016년부터 2017년 2월까지 65~70루피 사이를 오르내리며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에 인도에 금융투자를 하였다면 투자수익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달러로 환산한 환차손이 발생하여 투자수익을 갉아 먹거나, 투자손실인 경우 환차손으로 더 큰 손실이 났다는 의미다. 해외투자 시 환율 추세를 우선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신흥국 환율은 그 나라의 물가상승률 및 경상수지와 무역수지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인도는 2013년까지 10%를 넘는 물가상승률이었다. 2014년부터 물가상승률이 점점 낮아지면서 2017년 1월 현재 물가상승률은 3.17%로 하향 안정(직전인 2016년 12월은 3.41%)을 유지하고 있다. 환율을 상승시킬 수 있는 내부적 요인이 많이 약화되었다.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는 지난 10년 간 지속적으로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 적자폭이 줄어야 환율이 안정될 것이다. 만약 흑자로 돌아서게 되면 환율이 하락(루피 화폐가치 상승)하게 될 수도 있다. 모디 총리의 제조업 육성 정책이 정착하면 경상수지와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제조업 육성 초기에는 생산설비 및 원자재 수입이 급증하지만 점차 수입 대체 및 수출증가로 무역수지가 호전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개발초기 오랫 동안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외환보유액은 환투기 세력에 의한 갑작스러운 환율 변동성을 방어하는 수단이 됨과 동시에 단기 대외부채 상환과 수입 및 자본유출에 대한 대외 지급능력을 의미한다. 2017년 1월 인도의 외환보유액은 3628억달러로 브라질 3677억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인도의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 ‘긍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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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세 굴욕의 역사

영국 통치 후유증 딛고 새롭게 도약

‘무굴(Mughal)’은 ‘몽골’이란 의미다.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를 거치면서 ‘무굴’로 발음되고 쓰여졌다. 설립자 ‘바부르’는 몽골 티무르의 후예로 중앙아시아의 ‘페르카나 공국(지금의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일대)’의 왕자이며 이슬람교도였다. 이들은 8세기부터 인도 북구 갠지스 강가로 진입해서 델리를 수도로 삼아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인도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힌두교도의 인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스탄불을 점령하여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 터키(투르크) 곧 지금의 터키도 몽골인 돌궐족의 후예다. 오스만 터키가 동로마를 멸망시킨 1453년보다 70여 년이 지난 시기인 1526년 무굴제국이 설립되었으며 점차 인도 전역을 점령해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그 후 300여 년 영화를 지속하였던 무굴제국은 오랜 내우외환에 시달리다 1857년 막을 내렸다. 내우는 인도 각지의 민족적 분열(할거)과 종교적(힌두교와 이슬람교) 분열이었다.

외환은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적 침탈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1755~1763년, 북아메리카와 인도 쟁탈전)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영국은 인도 침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어 드디어 인도 전역(파키스탄 포함)을 식민지화 하였다. 인도는 영국 지배 아래에서 영국의 제조업 원재료 조달과 영국제품의 판매기지 역할을 하였다. 면화 양모(캐시미어)가 대표적이다. 이어서 아편을 인도에서 재배하여 중국에 내다 팔아 중국의 은화를 영국으로 실어 갔다. 노예무역에 버금가는 추악한 무역이었다. 아편을 금지시키는 중국을 상대로 두 차례의 아편전쟁(상하이 점령과 베이징 침략)을 일으켜서 중국을 굴복시켰다.

이후에도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은 영국인을 통해 중국인을 폐인으로 만들고 중국 경제를 파탄시켰다. 인도는 힌두교 정신에 따라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영국에 맞섰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2년 후인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은 하였지만 영국 분할통치의 후유증인 지역적 종교적 분쟁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3개 국가로 분할되었다. 인도 독립 후 70년 이제 인도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황상석 전 NH농협증권 PI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