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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차이나 자본의 동력원 화교(华侨)…유통·금융시장 장악한 화교자본, 아시아 넘어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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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차이나 자본의 동력원 화교(华侨)…유통·금융시장 장악한 화교자본, 아시아 넘어 세계로

[글로벌이코노믹 김길수 기자] '죽망'이라는 탄탄한 정보망
태국 상업자본의 90% 지배
필리핀서도 경제 60% 장악

싱가포르는 인구 77% 차지
사실상 화교들의 독립국가
말레이시아 國富 80% 소유

“햇빛이 있는 곳에 중국인이 있다(有阳光的地方就有华人)”라는 속담이 있다. 활발한 외부 교류를 통해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 영역을 확장시켜 온 중국인들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바닷물이 닿는 곳에 화교가 있다” “연기 나는 곳에 화교가 있다” “한 그루 야자나무 밑에는 세 명의 화교가 있다” 등의 표현은 중국인이 다른 나라에 정착하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를 확장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들을 중국을 의미하는 ‘화(華)’와 타국에서 거주를 의미하는 ‘교(僑)’를 합쳐 ‘화교(华侨)’라 부른다.

화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중국 본토 이외의 국가나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화교다. 하지만 지금은 2, 3세대로 대물림을 하면서 현지 국적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이들을 화교와 구분하기 위해 ‘화인(華人)’이라 부른다. 그리고 화인 중 중국계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현지 국적자를 ‘화예(华裔)’라고 분류한다. 최근에는 화예를 제외한 화교와 화인만을 화교라고 칭한다. 하지만 정확한 구분에 대한 통계는 없다. 과거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화교로 간주되었지만 1997년 반환 이후 그 경계가 불확실해졌으며 대만 또한 중국 공산당과의 의견 차로 인해 서로의 주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800만명의 화교가 퍼져있으며 그 가운데 90% 이상이 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집중 분포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홍콩과 대만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미얀마,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유통과 금융을 중심으로 경제 분야에 진출해 현지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러 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때로는 화교의 지나친 경제력과 배타적인 민족 중심의 단결력이 현지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중국 화교들이 정말 용감하게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해 활발히 상업 활동을 영유해 왔으며 중국 문화를 세계 속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 화교가 가장 많은 태국

‘시노-타이(Sino-Thai)’라 불리는 태국 화교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660년쯤 이미 1만여명의 화교가 태국에 거주하기 시작해 현재 태국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며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화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태국은 화교가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상업 및 제조업 총 자본 중 90% 정도를 지배하고 있으며 상업의 80%, 철강업과 운수업의 70%, 방적업의 60%를 화교 자본이 차지하고 있다. 태국 최고 기업으로 왕실 재산 소유인 ‘사이암시멘트’를 제외한 나머지 상위 그룹은 모두 화교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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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에는 약 1800만명의 화교가 퍼져있다. 그 가운데 90% 이상이 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집중 분포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세기 초 태국 정부는 화교의 유입을 적극 장려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태국 정부는 화교의 유입을 막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화교로 인해 태국이 중국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 만리장성 이북을 동북공정으로 자국의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것처럼 남방 태국인의 조상이 중국계라고 주장하는 사태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많은 시노-타이는 중국어를 잃고 태국어를 배우고 크면서 문화적 유사성을 태국 사회에 동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국 화교는 여전히 건재하다.

태국 정부는 자신들의 동화정책에 의해 화교의 문화와 언어, 전통이 흡수된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사실은 정반대다. 화교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동화되기를 원했다. 이를 다르게 풀이하면 ‘침투(浸透)’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어느새 화교는 태국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태국의 전반적인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침투를 완료한 것이다. 현대의 시노-타이는 자신의 명함에 한자 이름을 새겨 넣고 중국어를 다시 배우고 있으며 중국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역사가 깊은 화교들은 태국의 경제와 정치를 한손에 거머쥐고 있다.

▶ 필리핀 ‘화교 동화정책’에 ‘화교 결속력’으로 대항

필리핀 전체 인구 중 화교는 1.3% 정도로 인도네시아나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주변국에 비하면 수가 많지 않다. 하지만 화교는 필리핀 경제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그 중요한 요소가 바로 집단적인 ‘화교 결속력’이다. 스페인과 일본의 식민통치 시절 대량 학살이라는 끔찍한 경험과 현지인들의 탄압과 견제 속에서 화교는 뭉치는 것만이 생존의 필수조건임을 깨달았다. 집단으로부터 배척 당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던 절박한 상황이 ‘화교 결속력’을 이룬 것이다.

이후 현지인들도 화교상인과 거래를 하면서 경쟁이나 대립을 하게 되면 다수의 적을 각오해야 했다. 이러한 화교 결속력을 통해 생겨난 네트워크를 ‘죽망(竹网. Bamboo Network)’이라고 한다. 현재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죽망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남아 전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죽망의 탄탄한 정보망이 화교 결속력을 극대화시킨 셈이다.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14년간 독재정치를 펼친 필리핀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강력한 화교 동화정책을 펼쳤다. 대만의 관리하에 있던 화교들을 필리핀 정부의 영향력 아래로 흡수시켰으며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치던 화교 학교에서 필리핀의 공용어인 타갈로그어를 가르쳤다. 이후 많은 필리핀 화교들은 문화적•인종적으로 동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교 동화정책을 펼친 마르코스와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그리고 국부 ‘호세 리살’ 등은 모두 화교다. 물론 본인들은 화교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한자를 아예 몰랐으며 필리핀인으로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시대의 리더로 군림할 수 있었던 필연적 이유는 필리핀 유수 화교 기업들과 화교 가문과의 교류를 통한 ‘화교 결속력’을 실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화교의 나라 ‘싱가포르’

필리핀과 태국의 화교들은 비교적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에 동화된 이후 재중국화를 이루려 했다. 그로 인해 대부분 중국어를 잃고 현지인들의 풍속과 언어에 길들여져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은 필리핀이나 태국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의 약 77%를 화교가 차지하고 있으며 상장기업의 81%를 장악해 명실상부한 ‘화교의 나라’로 일컫는다.
한때 말레이시아의 일개 ‘주’로 연방에 속했던 싱가포르는 압도적인 화교 인구에 겁을 먹은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로부터 분리 독립을 당했다. 2015년 3월 18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사망한 영원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는 43세였던 1965년 8월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불려가 축출 통보를 받고 비통한 심정에 눈물을 흘리며 싱가포르의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이스라엘 군부와 연합해 군대를 육성하고 인재 양성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건국 초기 탄생한 온갖 통제질서와 벌금제도, 태형 등은 여전히 강행할 정도로 유명하다.

싱가포르는 중국 공산당과 대만과는 별개로 중국인들에 의해 건국된 새로운 독립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문화대혁명으로 사라진 많은 전통 관습과 문화들이 싱가포르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어쩌면 중국보다 더 중국적인 요소가 많은 식민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순위 7~8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싱가포르가 탄생한 배경에는 화교가 있었으며 그로 인해 ‘화교의 나라’로 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 화교 정체성 지키는 '말레이시아'

15세기부터 말레이시아에 유입된 화교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부(富)의 80%를 장악해 그 어느 국가보다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인구 면에서 말레이 민족에 밀려 정치까지 장악하지는 못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말레이시아 상권의 대부분을 휘어잡았다. 화교 결속력을 통해 생겨난 네트워크 ‘죽망’을 가장 강력하게 구축해 운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약 화교가 없었다면 말레이시아는 기껏해야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수준에 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경제적 영향력 외에도 말레이시아 화교는 인구와 문화적 정체성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전국에 걸쳐 산재되어 있는 다수의 중국학교를 통해 언어, 문자, 전통문화를 보존해 왔으며 화교 사업가들의 유대와 화교계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풍속 등 화교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화교 사회와 경제를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차별정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민족에게는 없거나 부족한 민족적, 집단적 결속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정부의 불리한 정책도 피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중국 대륙과 화교가 뭉치면 중국은 세계의 으뜸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대부분 경제나 상업 쪽에 강한 중국 남부지역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경제권을 가진 화교가 결속력까지 가짐에 따라 동남아시아는 자연스럽게 화교들의 사회가 된 것이다. “중국 대륙과 화교가 뭉치면 세계의 으뜸이 될 것이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중국 혁명의 선도자 쑨원(孙文),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邓小平),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위대한 중국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진핑, 대만 총통 차이잉원(蔡英文) 등 모든 리더들이 실천해온 가르침이다. 이들은 모두 강력한 ‘화교 결속력’과 네트워크 ‘죽망’을 통해 동남아 전체를 통치하는 세계적인 리더로 거듭나길 원했다. 지금 ‘화교 결속력’은 그 어느 시절보다 견고한 단합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김길수 기자 g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