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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한손에 콜라를 들고...해운대 가는 택시 속에서 대체 무슨 일, 금호아시아나가 등장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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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한손에 콜라를 들고...해운대 가는 택시 속에서 대체 무슨 일, 금호아시아나가 등장하는 이유는?

[글로벌이코노믹 김재희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돌연 사망했다.

권혁주씨는 12일 0시 30분 해운대구에 있는 한 호텔 앞에 도착한 택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권혁주씨는 이날 오후 7시 30분 부산 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할 예정이었다.

그 연주회를 위해 하루 전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했다.

권혁주씨는 부산 남구에 사는 친구 집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그 술 모임 후 0시 10분께 택시를 타고 해운대 호텔로 이동하다가 변을 당했다.

빈소는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에 마련된다.

권혁주씨는 금호 아시아나문화재단과 함께 공연을 해왔다.

금호아시아나가 스폰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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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돌연 사망했다. 의문의 죽음이다.



권혁주 씨는 12일 0시 30분 해운대구에 있는 한 호텔 앞에 도착한 택시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돌연 사망했다. 권혁주 씨는 12일 0시 30분 해운대구에 있는 한 호텔 앞에 도착한 택시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의문의 죽음이다.
호아시아나는 권혁주씨 가는 길을 추모하기로 했다.

권혁주씨는 6세에 음악저널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한 바이올린 영재다.

다음은 권혁주씨 sns에 올라온 추모글
한손에 콜라를 들고라는 글이 애처롭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제가 존경하는 롤모델이자
때로는 친구 같으신 때로는 삼촌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던
권혁주 선생님께서 지금이라도 연락드리면 바로 답장 오실거 같고 그래, 그때보자! 이러실거 같은 ..
그냥 곁에 계시는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머지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습니다....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인터넷에 뜨는 기사들에 선생님의 병명이 언급될 때마다 받아드려야 된다는게 가까이 느껴져 오는 거 같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막 러시아에서 유학 갔다 오셨을 때 처음 뵜을 당시,
그때 눈썹에서 반짝거리던 피어싱과 한손에 콜라를 들고 계셨던 게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는데......제가 했던 고전곡들 모두 선생님의 가르침이 묻어났던게 엊그제 같고..지금 생각하면 그땐정말 어린애였단 게 느껴졌던 것 중 하나가 하이든 콘체르토 2번을 포함해서 고전곡 트릴은 위에서부터 해야된다 안그러면 무식하단 소리 듣는다며
레슨 중 일부분의 말씀이 지금까지도 제가 새로 악보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제일 먼저 그말씀 토시 하나 빠지지 않고 옆에서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레슨이 끝나면 선생님의 어머니이자 저에게는 엄마 선생님 같으신
그래서 항상 엄쌤,엄쌤 부르게됬는데 배고프냐 물으시고 푹 퍼지게 끓이신 신라면을 권쌤이랑 먹었던 맛도 잊혀지지 않고..권쌤 없으실 때 엄쌤이 제게 들려주시던
어릴 적부터 책의 권수로 덧샘이며 뺄샘이며 숫자개념을 바로 이해하신거나,음악학원에서 혁주쌤보다 나이많은 누나들이 연주한 곡을 듣고 엄쌤께 이곡
누구누구 누나가 했던거라며 한번 들으셨던 그부분을 그대로 연주하셨다던 이런 저런 혁주 쌤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다보면 그거에 빠져서 집갈 시간이 넘어가기도 했었고....선생님 댁에 있는 장식품이나 악보와 CD,비디오 테이프가 쌓여있는 것을 보며 구경했던 것도 생각나고....선생님이 예전에 드럼을 즐겨하셨다 들었는데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돌아가신 금호 전 회장님께서 그때당시 정말 좋은 드럼스틱을 사주셨다는 그 스틱도 ..가끔 시켜먹었던 짜장면도 꼭 간짜장으로 시키시던 모습이 ..
또 그 대단하신 선생님과 같이 밥을 먹는다는거에 어린마음에 신기하고 어른스럽게 잘먹는 모습을 보이고싶었는지 국물 하나 흘리지 않으려고 했던게 너무나 어제 일 같습니다....
처음에 선생님 댁에 고양이를 기른다하셔서 본 리즈와 장난감으로 놀던것도 그뒤로 온 웅이도 레슨 끝나고 기다리던 시간에
놀았던 몇년 전 일이 며칠 전에 놀았던 거 같은데..
이런 소소했던 일상을 선생님과
제대로 대화해보지도 못하고
보내드려야 된다는 게 너무 속상합니다...
어릴 때 선생님 악기로 한번 해보라했을 때 이 비싼 악기를, 선생님의 훌륭한 연주를 하신 그손이 묻어나있는 악기를
어떻게 그어봐야 할지 그때의 떨림도 말씀드리고 싶고 ,,음악에 대한 진지한 얘기도 선생님 귀찮으실 때까지 수다도 떨고싶고..입시 끝나고 좋은 결과 들려드리면서 권쌤과 엄쌤 다같이 모여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식사하고 싶고....너무나 하고싶은게 많았었는데
이런 거까지 ..그리고 이 추억들을 다 묻어드려야
된다는 게 눈물밖에 나오질
않습니다......아침에 학교에 있다가 집에오니 시도 때도없이 눈물이 나서 소식을 듣고 난후부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선생님 소식을 기사로밖에 들을 수 없고 다음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셔서 몰카였다고 평소 유쾌하신 성격
으로 나오시는 그냥 그런 장난이였다고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선생님의 멋진 연주를 듣고 또 듣고싶어하는
관객들의 호응에 기꺼이 어디라도 직접 운전하셔서 가시고 그런 연주를 들려달라고 했던것도 괜히
죄송스럽습니다....혹시나 연주일정 하나만
더줄이실 수 있었다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으셨을
수도 있었을까라는 희망 때문에..
하루만 더 ..1년만더 사셨으면 하기에도 아직은
너무나 젊은 나이셨기에 선생님을 보내드려야되는것이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되질 않습니다..
제가 이러고 있는것이 선생님 편히 가시는 길에
방해될까라는 생각 뒤에 선생님의 그리움이
크게 느껴져서 지금 자고 일어나면 다꿈이였음
좋겠습니다......
저의 학창시절동안 선생님으로서 연주자로서
저에게 음악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도움만
주시고 가셔서 제대로 보답도 못해드린게 죄송스럽습니다..
제가 열심히 하는 것이 선생님께 조금이나마
보답이란 가치가 될 수 있는 길이라생각합니다....
권쌤...진짜 너무 보고싶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그동안 받으셨던 사랑 속에서,
좋은곳, 편하신 곳에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어떤 것으로도 매길수 없는 가르침과
아낌없는 조언들..그리고 선생님께서 남겨주시고
가신 추억들 하나하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 선생님......R.I.P
김재희 기자 yoonsk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