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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응어리 풀어줘야 '긍정의 힘'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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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응어리 풀어줘야 '긍정의 힘'이 솟구친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90회)] "저도 아버지를 사랑해요"

감정 쌓아둬 힘든 건 당사자
일시에 폭발해 돌발행동 않게
평소 표현할 환경 만들어줘야

부정적 감정 충분히 토해내면
억눌렸던 긍정의 감정 올라와
자신의 잘못까지도 깨닫게 돼

대학원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한 남학생과 면담을 했다. 면담에서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려는 이유가 무엇이지?” “졸업하고 빨리 취직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빨리 취직하려고 하지?” “취직해서 독립하려고 그럽니다.” “부모님도 빨리 취직하기를 원하시나?” “아버지가 뭘 원하시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빨리 취직해서 독립하지 않으면 저는 숨이 막혀서 죽습니다.” 이 때 갑자기 그의 언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얼굴을 찡그리면 흥분하기까지 했다.

그 학생은 시험을 잘 보아서 합격이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그를 옆에서 잘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편하게 이야기하다가도 주제가 ‘아버지’일 경우에는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적으로 변하곤 했다. 마음 속에 아버지에 대해 감정적 응어리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해 본 사람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그를 설득하여 매 방학동안 필자가 주관하는 집단상담에 참가시켰다.

집단상담은 10여명이 한 조를 이뤄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그동안 남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꽁꽁 싸매어두었던 속이야기를 하는 자리이다. 집단상담에서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도록 허용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누가 이야기를 할 것인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는다. 아무나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충고하거나 비난하는 등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면 자제하고 말하는 상대방의 마음만을 헤아리고 자신의 느낌만을 말하도록 미리 약속하고 진행된다.

한 여학생이 최근에 아버지 때문에 속상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여학생이 이야기를 마치자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난 3박4일을 혼자 다 이야기해도 내 마음 속에 있는 걸 다 말하지 못 할 거예요”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울먹이기까지 하면서 그는 약 1시간 30분가량 그동안 자신이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고 속상했는지를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아무리 자신의 속마음을 억제하지 않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그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집단상담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1시간 30분쯤이 지나자 그가 이야기를 멈췄다. 그래서 “할 말 다 했니?”라고 물었더니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잠깐 쉬었다가 또 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필자가 “나중에 얼마든지 더 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지금 아버지가 이 곳에 있다고 가정하자. 네 아버지가 너에게 뭐라고 한 말씀 해주기를 바라니?”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필자가 “그래? 그럼 지금 내가 네 아버지 역할을 해줄게”라고 하면서 그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아주면서 “너 그동안 나 때문에 정말 힘들었구나. 미안하다”라고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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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류관순기념관에서 초·중·고 전문상담교사, Wee센터 관계자, 교육청 장학사,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학생 심리치유 전문상담인력 연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자 그는 갑자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수십 년 묵은 설움이 모여 있다가 강둑이 무너지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거센 강물처럼 흘러나왔다. 그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계속 서럽게 울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필자는 계속 어깨를 안아주면서 “그동안 정말 나 때문에 힘들었구나. 미안하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다른 조원들도 덩치가 큰 남자가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같이 눈물을 흘렸다. 한참이 지나자 눈물을 멈춘 그가 필자에게 뜻밖에 말을 했다. “아버지, 저도 미안해요.” 잠시 이야기를 멈추더니 이어서 “아버지, 저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필자뿐만 아니라 그 방에 있던 다른 집단원들도 너무나 뜻밖의 반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바로 조금 전까지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던 바로 그 남학생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길고 격정적이었던 회의가 끝나고 조금 후에 가진 쉬는 시간에 그는 방을 나서자마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게 했던 말을 했다. 그는 거의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또 마음속에 있는 말을 진솔하게 했다. 서울에 돌아온 후 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평소에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던 그는 보다 활발해졌으며 동료들과도 훨씬 편하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공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책방에 가서 미국에 유학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왜 그는 이렇게 변했을까? 필자는 그동안 여러 집단상담에 참가하고 또 이끌어오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많이 하였다. 주제가 무엇이든지간에 이런 변화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그때그때 표현하면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쌓아둔다. 마음속에 쌓아두는 감정은 대개의 경우 부정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교육받았거나, 실제로 표현을 한 결과 불이익을 당한 내용들이다. 어느 정도 감정이 쌓이면 이 감정들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 시작한다. 사람이 보기 싫어지거나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당연히 상대방과의 관계를 피하거나 끊으려는 시도를 한다.

더 이상 마음속에 쌓아둘 수 없을 정도로 양이 많아지면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갑자기 감정적인 언행을 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이 일시에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돌발적인 행동을 충동적으로 하기도 한다. 자신을 힘들게 만든 당사자에게 직접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경우에는 단지 주위에 있었다는 우연 때문에 뜻밖의 변을 당하기도 한다.

쌓인 감정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사람들은 조금씩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감정을 쌓아두면 그 당사자가 제일 괴롭기 때문에 빨리 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감정을 믿고 표현할 수 있는 상대가 없거나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쌓아두고 있을 뿐이다. “벽 보고 이야기한다”라는 말도 있듯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산 정상에서 “야호”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속이 후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쌓아두었던 부정적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면 그 밑에 눌려있던 긍정적 감정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위에서 든 남학생의 예에서처럼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그 감정을 인정받게 되면 자신도 아버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깨달음은 “저도 아버지를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끌어주었다. 이 과정은 마치 미리 쓰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진행된다. 다만 감정이 자유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조건이 마련되면 우리 모두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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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