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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부터 고쳐야 '묻지마 살인'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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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부터 고쳐야 '묻지마 살인' 예방할 수 있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89회)] 건강한 관계만이 해결책

건강한 사회적 관계 맺는 능력
교육과 훈련 통해 길러지는 것

사회 모두 바람직한 삶 사는지
다시 한 번 통렬하게 반성해야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한다.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큰 비용을 들여 보약을 사먹기도 한다.

하지만 몸의 건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의 건강이지만 우리 사회는 마음의 건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말로는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체육’시간은 있지만,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내용을 가르치는 교과는 없다. 즉 ‘건강한 정신’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마는 형편이다.

마음건강에 관심이 없는 대가를 우리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최근에도 서울 강남의 한 복판에서 30대 남성이 아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칼로 찔러 죽인 소위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나 온 사회를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아무런 이유없이 단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덧없이 목숨을 잃는다면 어떻게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이런 사회를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끔찍한 사건의 피의자는 ‘조현증’으로 4차례나 입원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몸이 병들면 아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리고 환자 자신이 고통을 느낀다. 자녀가 아파서 잠을 못 이룰 경우 어머니는 밤새 곁에서 간호하면서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플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바람일 뿐이고 고통은 오로지 환자 자신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아픈 사람들은 스스로 병원에 간다. 그런 점에서 몸의 병은 개인에게 한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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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은 한 사람의 정신병에 의해서 벌어진 게 아니라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표출된 것이다./사진=뉴시스
마음이 병들어도 고통을 받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환자 자신이 받는 고통보다는 주위사람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몸의 병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한 가정에 마음이 병든 사람이 있다면 정작 본인보다 가족들이 더 많은 고통을 느낀다. 정작 환자 자신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참다못한 가족들이 환자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면 대부분은 자신이 ‘환자’가 아니라고 완강히 저항한다. 사실 이들은 자신이 환자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점에서 마음의 병은 사회적인 것이고 그 피해는 훨씬 넓고 크다.

최근 일어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처럼 피해자가 한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여러 명인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은 56세의 정신지체 장애인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신병을 비관하여 전동차 내부에 불을 지른 사건이다. 한 사람의 어이없는 행동으로 343명의 사상자(사망자 192명ㆍ부상자 151명)와 614억7700만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엄청난 재해였다.?

이처럼 개인에게나 사회에 큰 피해를 주는 사건들은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점점 더 경쟁적으로 되어가고, 약자에 대한 보호나 배려는 점점 더 줄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서 친밀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 나마 유지되는 사회적 관계도 와해되기 일쑤이다. 마음의 병은 바로 이런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에 의한 범죄나 사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소위 ‘정신병’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야한다. 우리는 보통 때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가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야 비로소 ‘호들갑을 떨면서’ 모든 사건의 원인이 마치 ‘정신병’인 것처럼 매도하고, 동시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잠재된 평소의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사실 ‘정신병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는 일반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에 비해 그 비율이 훨씬 낮다. 거의 대부분의 정신병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살면서 우리는 여러 번 몸이 아파 병원에 가거나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아플 경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동시에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라는 말처럼 평상시에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다양한 노력을 한다. 정부도 모든 국민이 손쉽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험을 비롯한 각종 복지제도를 확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건강을 지키려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노력이 몸의 건강에만 치우쳐있고 마음의 건강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마음의 병은 사회적인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나 혼자 건강하다고 해도 마음이 병든 사람에 의해 언제 어디서 어떤 피해를 입을지 예측할 수 없다. 마음의 병에는 ‘정신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환자라고 분류는 되지 않지만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친구를 괴롭혀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것 등은 모두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행동들이다.

무엇보다 먼저 학교에서 마음건강에 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양질의 성교육을 학교에서 한 결과 성에 대해 올바른 지식과 성숙한 가치를 형성하게 되고 성관련 범죄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건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예방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주위에 마음이 힘들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초기에 어떤 대응을 해아 하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너와 나’의 관계에서 길러진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를 맺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마치 수영을 잘 하는 것과 같다. 우리 모두는 수영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수영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배워야 하고 동시에 수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실질적인 대책 없이 또다시 공론(空論)만 일삼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과 같은 사건은 또 그리고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기회로 가정과 학교, 사회 모두가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지 또 자신이 현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 이것만이 이번 사건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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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