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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판단 신뢰해야 성숙한 삶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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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판단 신뢰해야 성숙한 삶 살아갈 수 있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87회)] 어느덧 나도 ‘큰 바위 얼굴’이

현실을 왜곡 부정하지 않고 느끼는 대로 경험하고 행동

매순간 유동적이고 관용적 유기체적 신뢰 가지고 살아


2000년 벽두에 미국심리학회의 기관지인 ‘미국심리학자(American Psychologist)’는 특집호를 발간했다. 이 학술지는 미국심리학회의 기관지로서 심리학의 최근 동향이나 공공정책에 끼치는 심리학의 공헌 등을 다룬다. 그래서 모든 심리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 상관없이 읽어야만 하는 중요한 학술지이고,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의 향후 연구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처음 발행하는 특집호의 주제는 시기적으로도 당연히 일상적인 내용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심리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특별한 내용을 담았다. 이 특집호는 “행복, 우월성, 그리고 최적의 인간 기능에 관한 특집(Special Issue On Happiness, Excellence, and Optimal Human Func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됐다.

소위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라는 새로운 심리학 분야가 공식적으로 태동하는 계기가 된 이 학술지는 지금까지의 심리학이 너무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에 치중하는 연구를 해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경향이 제일 분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임상과 상담심리학 분야이다. 이 분야에서 주로 관심을 가지고 다루는 주제는 ‘불안’ 이나 ‘우울’과 같은 병리적인 부정적 감정이다. 이 분야가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음의 건강은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부정적 정서를 약하게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 ‘보람’ ‘즐거움’ 등의 긍정적 정서를 더 많이 느끼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단순하게 부정적 정서를 줄이면 긍정적 정서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부정적 정서를 낮춘다고 긍정적 정서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을 ‘본보기’ 삼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광화문 거리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워놓고 자주 접하는 것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20세기 상담심리학의 큰 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로저스(Carl Rogers, 1902 ~ 1987)는 교육, 상담, 심리치료, 갈등해결 및 평화 분야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인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로서 성숙한 삶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합목적적이고 전진적이고 건설적이며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완전히 본성에 의지해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인간은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조화하여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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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닮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덧 우리도 ‘큰 바위 얼굴’이 되어있을 것이다. 정녕 즐겁고 보람있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성숙한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완전히 기능하는(fully functioning)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완전히 기능한다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능력과 재질을 발휘하여 자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경험을 풍부히 하는 방향으로 이동해나가는 개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이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여건이 주어지기만 하면 모든 사람은 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살아간다.

이렇게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보인다. 첫째로 이들은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왜곡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느껴지는 바로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비록 자신의 도덕관에 반하는 감정을 느끼는 경우에도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억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이 충동에 이끌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내적 경험이나 감정도 위협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에 개방적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실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here & now)’에 충실하여 현재의 순간을 풍부하게 살아간다. 부정확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간다. 동시에 편견이나 선입견에 의해 현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순전(純全)한 평가에 기초하여 평가하고 살아간다. 따라서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은 매순간 유동적이고 적응적이며 관용적이고 자발적이다.

세 번째 특징은 ‘유기체적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특징은 의사결정을 할 때 특히 잘 드러난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기관이 지켜온 사회적 규범에 의존하거나, 배우자나 친구 등 자신이 믿어온 사람의 판단에 따라 결정한다. 하지만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근거로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네 번째 특징은 ‘경험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가 선택한 삶을 자유스럽게 살아간다. 이들은 자신이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실제로 할 수 있다고 느낀다. 모든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섯 번째 특징은 ‘창조성’이다. 이들은 그들의 문화 내에서 건설적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으며 아울러 그들 자신의 깊이 파묻힌 욕구를 만족시킨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문화에 완전히 동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구성원인 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회의 대리인이나 꼭두각시가 아니다.

이 특징들은 요약하면, 완전히 기능하는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만 독립적이고 주관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충실히 실현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기능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성숙과 미성숙한 특징을 함께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성숙’은 ‘질(質)’의 문제라기보다는 ‘양(量)’의 문제이다. 성숙한 삶과 미성숙한 삶은 칼로 무를 자르듯이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얼마나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어린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듯이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닮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덧 우리도 ‘큰 바위 얼굴’이 되어있을 것이다. 정녕 즐겁고 보람있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성숙한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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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