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바람직한 인간상은 '로크형'인가, '루소형'인가?

공유
7

바람직한 인간상은 '로크형'인가, '루소형'인가?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77회)] '개인'과 '환경'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끝없는 '본성'과 '육성' 논쟁…정답은 중간 어디에

삶의 목표와 교육방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
행동의 원인을 알기 위해 학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는 공식이 있다. 즉, 모든 행동은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함수[(B=f(P×E)]”라는 공식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 개인에게 속해있는 변인과 그가 처해있는 환경적 변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거의 대부분의 행동은 개인에 속해 있는 원인에 의하거나 환경에 속해 있는 원인에 의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논리적인 설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설명은 원인을 알고 싶어하는 행동의 성격이나 그 원인을 알아내고 싶어하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개인에게 원인을 귀인하거나 환경에 그 원인을 돌리게 마련이다. 이는 사회과학에 속해 있는 여러 학문의 설명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면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인류학이나 사회학은 주로 행동의 원인을 환경에서 찾는다. 즉 문화나 사회의 영향에 의해 행동이 나타난다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생물학은 개인에 속해있는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범위를 좁혀 심리학의 경우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심리학이나 사회심리학은 개인이 속해있는 문화의 특성이나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통해 개인의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반해, 성격심리학이나 신경심리학에서는 개인에 속해있는 성격이나 뇌의 생화학적 원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이어지는 ‘본성(本性, nature) 대 육성(育性, nurture)’ 또는 ‘유전(遺傳) 대 환경(環境)’에 대한 논쟁도 결국 본질적으로는 동어반복(同語反復)에 불과하다. 철학에서도 이 논쟁은 용어를 달리하면서 계속 변주(變奏)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근대 철학자 중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철학자는 영국 태생의 로크(John Locke, 1632~1704)이다. 그는 한 마디로 인간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환경이라고 주장했다. ‘백지(白紙, 라틴어로 tabula rasa)’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그는 지금도 수없이 회자되는 유명한 구절 즉,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즉 아무런 특성이 없는 백지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채워지는가?… 이런 물음에 나는 경험이라고 한마디로 답할 수 있다. 경험 속에서 우리의 모든 지식은 다져지며, 우리의 지식은 궁극적으로 경험으로부터 그 자신을 이끌어낸다”라고 『인간오성론』이라는 명저에서 간결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9일 2015 식생활교육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경기도 안양 협심어린이집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쌀 반죽을 활용한 인절미와 송편 만들기 등 다양한 식생활교육을 체험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9일 2015 식생활교육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경기도 안양 협심어린이집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쌀 반죽을 활용한 인절미와 송편 만들기 등 다양한 식생활교육을 체험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환경은 먼저 ‘연합(聯合)의 원리’를 통해 사고와 감정이 학습시킨다. 즉, 두 개 이상의 생각이 지속적으로 함께 발생하면 후에는 그 하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다른 것도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매를 맞은 어린이는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자동적으로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반복(反復)의 원리’에 의해서도 행동이 학습된다. 어떤 행동을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그 행동은 습관이 된다. 만약 정해진 시간에 매일 운동을 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만약 그 시간에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한 많은 행동이 ‘모방(模倣)의 원리’에 의해 학습된다. 다른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도 따라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뷔페식당에 처음 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따라하면서 식당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간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학습의 방법은 ‘보상(報償)과 처벌(處罰)의 원리’에 의한 것이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결과로 자신이 원했던 것이나 기분이 좋은 것을 얻었다면 앞으로도 그런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어떤 행동의 결과로 처벌을 받았다면 다시 그런 행동을 할 확률은 떨어진다.
오늘날 학습심리학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는 행동의 조성(造成)의 원리는 모두 로크가 밝힌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오늘날도 가정이나 학교 또는 사회에서 행하는 교육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러한 철학을 ‘경험론’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환경과 경험보다는 타고난 특성이나 성향에 따라 행동이 나타난다는 이론을 주장한 철학자는 프랑스 태생의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이다. 루소는 어린이는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특유의 감정과 사고 양식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리고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발달의 단계마다 각각 그 단계에 맞는 행동의 양식을 발달시키도록 이미 태어날 때부터 계획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는 위대한 ‘자연의 계획’에 의해 어린이들이 발달해가기 때문이다. 루소의 사상을 설명할 때마다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유명한 구절, 즉 “인간은 자유롭게 때어났으나 모든 곳에서 속박되어 있다”는 그의 명저인 『사회계약설』의 첫 문장이다.

아동은 ‘자연의 계획’에 따라 “그 나름대로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고유한 방식을 갖고 있다.” 그에게 자연은 어린이들을 성장시키는 ‘숨은 교사’와도 같다. 따라서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거침없이 주장할 수 있다. 어른들과 사회는 ‘교육(敎育)’이라는 미명하에 어린이들을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성장하도록 끊임없이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루소에 의하면 만약 현재의 교욱 방식대로 부모나 교사에 의해 훈육되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사회에는 잘 적응할 수 있는 ‘잘 훈련된 사회인’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본성과 자연의 원대한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진정으로 ‘강하고 완전한 인간’은 될 수 없다.

‘낭만주의’라고 불리는 루소의 철학은 현대 심리학과 교육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위 ‘자기실현(自己實現)’을 중시하는 ‘인문주의 심리학’도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인지발달심리학과 ‘인간중심 상담’도 그의 철학을 기초로 발달한 것이다. 실제적인 교육에서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몬테소리’ 교육이라든지 대안학교의 교육철학적 기초도 루소의 사상이 그 기반이다.

“두 사상 중 어느 것이 더 옳은가?”라는 질문은 마치 “사과와 배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가?”라는 질문처럼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과가 더 맛있을 것이고 반대로 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배를 더 맛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와 배는 본질적으로 맛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로크가 그리는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과 루소가 그리는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옳은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로크식 교육의 목적은 자신의 역할을 잘하며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반면에 루소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 이는 앞에서도 이야기한대로 행동의 원인이 개인적인 변인에 더 영향을 받는지 아니면 환경적 요인에 더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풀릴 수 없는 질문의 반복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것을 택하는지에 따라 삶의 목표와 그 목표에 이르는 교육방침들이 확연히 달라진다. 만약 로크의 인간관을 따른다면 환경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지속적인 연합과 반복, 모방과 보상 및 처벌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만들어가는 교육을 중시하게 된다. 반면에 자기실현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면 자신의 의지와 선호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는 루소의 교육철학을 따르게 된다. 하지만 정답은 항상 그렇듯이 극단적인 ‘개인’과 ‘환경’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