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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23)] 예술가와 뮤즈의 러브 스토리-모딜리아니 & 잔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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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23)] 예술가와 뮤즈의 러브 스토리-모딜리아니 & 잔느

어깨를 드러낸 잔 에뷰테른, 1919
어깨를 드러낸 잔 에뷰테른, 1919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모딜리아니 전시가 한창이다.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얼굴이 긴 여인의 초상화가 바로 모딜리아니의 작품이다. 파리에서 활동한 유대계 이탈리아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짧은 생을 살다간 재능 있는 화가로 어느 화파로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가느다란 목에 길고 창백한 얼굴을 살짝 기울이고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모딜리아니의 그림들…. 아프리카 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인체 표현과 미묘한 색감, 구체적인 묘사는 없지만 단순하고 간결한 얼굴에서도 모델의 특징과 매력이 충분히 뿜어져 나온다.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뷰테른, 1819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뷰테른, 1819
소녀의 초상(잔느 에뷰테른), 1919
소녀의 초상(잔느 에뷰테른), 1919
그가 그린 다양한 여인 초상화 중 단연 돋보이는 그림이 있다. 그의 아내이자 최고의 뮤즈, 잔느 에뷰테른(Jeanne Hebuterne)이다. 모딜리아니는 1917년 파리에서 19살의 소녀 잔느 에뷰테른을 만나게 된다. 부유한 집안의 아름다운 어린 딸 잔느와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한 유대인 화가 모딜리아니의 만남은 시작부터 강렬했고 이내 뜨거운 사랑으로 발전했다. 보수적인 잔느의 부모님은 가난한 화가 모딜리아니와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둘은 함께 살기 시작했고 니스에 가서 딸을 낳게 된다. 니스에서 관광객들에게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가는 생활이 녹록치는 않았지만 둘은 행복했고 모딜리아니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다시 파리에 돌아와서도 열정적으로 작업에 매진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삶은 계속되었다.
앉아 있는 잔느 에뷰테른, 1918
앉아 있는 잔느 에뷰테른, 1918
잔느가 둘째 아이를 임신한 시기에 모딜리아니는 평소 좋지 않던 건강이 더욱 악화된다. 악화되는 결핵, 알코올 중독, 가난과 임신한 잔느, 그리고 어린 딸…. 힘든 상황에서도 둘은 사랑했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1920년 추운 겨울, 모딜리아니는 결국 세상을 먼저 떠난다. 잔느는 어린 딸과 친정집에 가게 되지만 너무나 큰 슬픔에 결국 저택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선택한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모딜리아니의 곁으로 간 것이다. 이후 모딜리아니의 여동생이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딸을 입양하여 키운다.

잔느 에뷰테른
잔느 에뷰테른
36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하고 나서야 모딜리아니는 유명해졌고 작품들은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그림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모자를 쓴 채 턱에 손을 올리고 있는 잔느의 초상화, ‘큰 모자를 쓴 잔 에뷰테른(1918)’이다. 비록 모딜리아니는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열고 평생 가난과 지병으로 힘든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뮤즈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잔느는 그렇게 그의 그림 속에서 신비한 표정으로 영원히 존재하게 되었다. 스무살의 풋풋한 모습으로 사랑을 간직한 채 영원히.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뷰테른, 1918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뷰테른, 1918
이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이미 다수의 영화와 연극에서 다루어 진 적이 있다. 전시를 봤으니 그의 삶을 그린 영화를 한 편 찾아보아야겠다. 위대한 예술가의 이름과 아름다운 작품들. 그 뒤에는 열렬한 사랑과 뜨거운 예술혼으로 가득한, 그림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존재하는 법이니 말이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