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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심리적 이기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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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심리적 이기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

김석신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음식점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손님이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음식 값을 지불하면 모든 게 오케이.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네요.”하면 금상첨화. 잠 설치며 새벽시장 다녀온 보람도 있고. 어쨌든 사장님 기분은 급상승! 오늘 저녁은 매상도 급상승! “차라리 내년에는 건물을 사버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아참 그런데 점심때는 왜 그랬지? 그 손님 정말 최악이었어. 물 컵에 루주가 묻었다고 타박을 하더니, 국물 맛이 완전 MSG 맛이네 하면서 야단쳤었지. 무슨 큰 죄인인양 고개 숙여야 했잖아. 참 고약한 손님이었어.”

이렇게 음식점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침에 문을 열 때는 맑음이지만, 곧 흐렸다, 비 왔다, 갰다, 맑았다, 꼭 호랑이 장가가는 날 같다. 하루에 천둥, 번개, 가뭄, 태풍, 장마, 폭설, 춘하추동이 다 지나간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도 힘들지만, 손님을 잘 모시는 일은 더더욱 힘겹다. 이렇게 힘든 일을 음식점 사장님은 왜 하는 걸까?

“아, 먹고 살려고 하죠. 음식을 만들어 팔면 손님이 돈을 내잖아요? 그 돈으로 자식들하고 함께 먹고 살죠. 다 이익이 있으니까 참고 하는 거예요.” 그렇다. 음식점 사장님은 이익을 얻기 위해 그 힘든 일을 꾹 참고 견딘다. ‘남’의 이익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익, 즉 ‘자기 이익(self-interest)’ 때문인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삶은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이것을 흔히 이기주의(egoism)라고 부른다. 이기주의란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에 따라 행위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음식점 사장님이야말로 이기주의자가 틀림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부르자니 왠지 좀 불편해진다. 왜 그럴까? ‘이기적’이라는 말의 영어 표기에는 ‘egoistic’과 ‘selfish’가 있다. 전자는 타인을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 데에 반해, 후자는 타인을 수단으로 간주하고 자신만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인다. 윤리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 바로 후자의 태도(selfish)이고, 이런 이기주의는 ‘심리적 이기주의’라고 한다. 일반적인 음식점 사장님의 행동은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손님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지극히 윤리적이다. 이런 이기주의를 ‘윤리적 이기주의’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심리적 이기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두 사람의 음식점 사장님 A와 B를 상상으로 지어내보자. A는 손님이 남긴 반찬과 새 반찬을 반반씩 다른 손님에게 내놓지만, B는 항상 새 반찬만 손님에게 내놓는다. A는 A의 자기 이익을, B는 B의 자기 이익을, 손님들은 손님 각자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데, A와 B의 손님 수가 비슷하다면, 당연히 A의 수입은 부당이익으로 인해 B보다 많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사실이 몽땅 밝혀졌다고 하자. A의 음식점엔 손님이 크게 줄고, B의 음식점엔 손님이 급증할 것이다. 손님 대부분은 B의 음식을 사먹으며 만족할 것이다.

손님들의 윤리적 신념에서 볼 때에도 새 반찬만을 내놓으며 음식을 파는 B의 행위가 지극히 올바른 행위이다. 손님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A의 자기 이익 추구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이지만, 손님을 자기 이익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B의 이익 추구는 장기적이고 총체적이다. 음식점 사장님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는, 심리적 이기주의에 따라 단기적 이익에 집착할 경우 진정한 자기 이익과 멀어질 수 있으므로, 무엇이 장기적이고 진정한 자기 이익인지 윤리적 이기주의의 눈으로 끊임없이 탐색해야 한다.

윤리적 이기주의는 무한 경쟁의 현대 사회에서 자기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심리적 이기주의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존재 가치가 크다. 당장 코앞의 이익을 위해 반찬을 재탕하는 행위는 성적 때문에 커닝을 하는 행위처럼 결코 참된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김석신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