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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간에 선과 색 더하는 놀이 통해 새 공간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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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간에 선과 색 더하는 놀이 통해 새 공간 창출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50)] 같이 놀자, 우리가 그려놓은 놀이터에서

예술과 만화 등 경계 넘나들며 유쾌한 놀이터 만들어 내

친근한 우리 주변 공간을 엽기적으로 재미있게 재창조

모든 것이 놀이인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 하늘에 떠도는 구름의 다양한 모습에도 즐겁고, 담장의 낡아서 생긴 얼룩이나 땅바닥의 무늬들에도 오만가지 사물들과 동물들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신기해하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놀까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으며, 아무리 놀아도 부족해 저무는 해를 아쉬워하고 다음에 더 많이 더 재미있게 놀 것을 다짐하며 헤어지기도 했다.
일상이 놀이이고 놀이가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우리는 놀기 위하여 시간을 내고 계획을 짜야하는 어른이 되었다. 잘 놀기 위한 노력은 ‘문화생활’이나 ‘여가선용’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잉여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잘 쉬고, 잘 놀까 고민해야하는 특별한 그 무엇이 된 것이다. 아니, 이젠 어린 아이들에게도 놀이는 ‘놀이’이자 ‘학습’이 되어 놀이를 통해 습득하고 배우는 중요한 활동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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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재미로 옆 골목, 재미랑 갤러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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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재미로 옆 골목, 재미랑 갤러리, 2015


프로젝트 그룹 옆[엽]은 ‘잘 노는’ 작업을 한다. 조소를 전공한 작가들이 결성한 이 예술가 집단은 심각하고 진지하며 무게감 있는 예술을 벗어나 같이 놀기로 하며 함께 모여 작업으로 그들의 놀이를 보여준다. 미술대학원의 과제전이라는 아카데미의 되풀이되는 전시 형태에서 벗어나 ‘우리끼리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의기투합한 이들이 제일 처음 전시한 곳은 학교의 화장실이었다. 놀려면 주제도, 재료도 부담없이 편안해야겠기에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라인 테이프를 선택해 비어있는 벽면과 공간들에 신나게 그림을 그리듯 선으로 드로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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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_L.O.V.E., 안산예술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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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_L.O.V.E., 안산예술의 전당, 2010
스스로를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공간재단사”로 일컫는 옆[엽]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실제 존재하는 공간에 선을 그리고 종이를 붙이고 색을 더하는 놀이를 통해 기존에 존재하는 공간과는 또 다른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흰 종이에 연필이나 볼펜을 끄적거려 선이 생기고, 글씨가 생기고, 그림이 생기면, 그 흰 종이는 더 이상 빈 것이 아닌 무언가 한바탕 선들이 뒤흔들고 간 무대가 되듯이, 미술관, 갤러리 등 전시공간의 흰 벽이나 건물의 벽, 혹은 주목받지 못했던 일상의 빈 공간들과 벽은 옆[엽]이 만들어내는 선들로 신나는 선들의 놀이터가 된다. 공산품인 라인 테이프로 만들어진 이 선들은 혼신의 무게감을 담아 정신적 깊이감을 나타내는 동양화의 선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나, 선으로 자유롭게 논다는 측면에서는 붓과 먹이 종이 위를 미끌어지듯 유영할 때의 유쾌한 정신과 오히려 통해있다. 무게와 깊이를 벗어던진 옆[엽]의 선들은 기하학적인 사각형, 삼각형, 원형 등을 공간 속에 그려 넣어 만화책의 재미를 구현하며, 공간을 꾸미려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소품들과도 닮아있어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예쁜 놀이터가 되었다. 궁극의 아름다움과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 고뇌와 고통, 깊이 있는 진중함 등을 표현한 예술만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이미 진부하고 낡아빠진 것처럼 되어버린 지금, 옆[엽]이 만들어내는 선들의 놀이터는 예술과 만화, 디자인 등등의 경계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며 유쾌, 상쾌, 통쾌, 발랄하게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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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옆[엽], 옆과 놀아옆, 레드스페이스 장흥아트파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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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옆[엽]의 작업들은 이 놀이판에 관객들을 초대해 같이 구경하고, 놀고, 참여하게끔 한다. 서로 죽이 잘 맞는 놀이 친구인 프로젝트 옆[엽]의 이유경과 이은구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현하고, 설치하며 끊임없이 이야기해나가는 소통의 수다로 빛나는 팀워크를 발휘한다. 서로의 가장 가까이에서 놀 거리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작업의 전 과정을 함께하며 같이 노는 즐거움으로 작업하는(즉, 놀이하는) 고단함을 씻는다.
옆[엽]이라는 이름을 ‘바로 옆에 있다’는 의미와 한 때 유행했던 ‘엽기 토끼’에서의 ‘엽기’의 의미에서 따왔다는 설명처럼, 이들의 프로젝트는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 친근한 공간을 다소 ‘엽기적’으로 재미있게 바꾸어 놓고는 같이 놀자며 불러내는 옆 집 친구 같다. 그래서 프로젝트 옆[엽]의 작업들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참여 프로그램이 많으며, 어른들은 만화적 공간 앞에서 어느새 어린이처럼 웃고, 사진 찍어 함께 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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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안녕하세옆~, 서울시 신청사 시민청, 2013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 Element in Culture)』에서 놀이의 특징을 첫째,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행위이며, 둘째, ‘일상적인’ 혹은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이고, 셋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놀이에는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미학의 한 부분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는 아름다워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미학적 요소는 질서정연한 형태를 창조하려는 충동과 동일한 것인데, 놀이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가 있다.… 놀이는 우리에게 매혹의 그물을 던진다. 그것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고 매혹시킨다. 놀이에는 사물을 지각하는 가장 고상한 특질인 리듬과 하모니가 부여되어 있다.” 프로젝트 옆[엽]의 놀이는 주어진 공간에 선으로 드로잉을 해 놀이터를 만듦으로써 놀이와 예술, 일상의 관계를 뒤흔들어버린다. 옆[엽]은 ‘전시’와 ‘프로젝트’, ‘프로그램’이라는 일련의 틀 속에서 자유롭게 놀며, 일상에서 벗어난 놀이이면서도 일상의 공간과 모습들을 닮아있고, 전시와 프로젝트라는 한시적인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도 예기치 못한 새로운 놀이 시간과 가상의 놀이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옆[엽]의 놀이터는 미적 쾌감을 주는 예쁜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서로가 옆에 있어서, 같이 놀 친구가 있어서, 모든 상념을 잊고 작업이라는 놀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즐겁다는 옆[엽]. 그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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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Art!, Game!,party!, 잔다리갤러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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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Art is T, 에이루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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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그룹 옆[엽], Art is T, 에이루트, 2005


프로젝트 그룹 옆[엽]은 누구?
프로젝트 그룹 옆[엽]은 이화여대 대학원 조소과에서 같이 작업하던 다섯 명으로 2001년 결성되어 이듬해부터 벽과 유리창 등 건물 실내외 모든 공간을 캔버스로 삼아 전시 및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이유경, 이은구 두 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 전당, 고양아람미술관, 장흥아트파크, 전남도립미술관, 상상나라 어린이미술관 등에의 전시에 참여했고, 잠실 종합운동장, 서울시 신청사, 청계천 홍보관, 가든파이브 등의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LG 전자, S 오일, 커밍스탭 등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 및 여러 참여 프로그램에 활동하고 있다. 주로 라인 테이프를 이용해 현실 속 또 다른 가상 공간을 만들어내어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도모하는 이들의 작업은 가변적, 일시적인 속성이 강하나 점차 작품 오브제를 일부 소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등 꾸준히 즐거운 놀이를 계속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