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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3)] 아이들에게 낙서하는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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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3)] 아이들에게 낙서하는 자유를…

“아직 그림도 못 그리는데 무슨 크레파스야. 괜히 벽지에 낙서하면 어떡해.”

며칠 전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한 젊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 엄마가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크레파스를 사주려고 하는데 아빠가 말리는 내용이었다. 나는 평소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 교육에 관심이 많다. 나는 그 부부가 걱정하는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아이를 위해 크레파스를 사주길 바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표현(expression)'하는 행위이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또한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해 인지하고 느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상(impression)'을 받는 단계로서 사물을 관찰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다. 이렇게 인지하고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아이들은 느끼고 생각하는 법,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법, 함께 공감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미술교육에 대한 화두는 작품, 작가, 그리고 미술시장과 미술계 전반에 대한 것과는 조금 다른 분야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미술'이라는 주제가 미술계의 영역 속에서도 조금 더 고민되어 졌으면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미술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참담하다. 영·유아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전시도 흔치 않고 그들이 마음껏 그림그릴 기회도 없는 편이다. 청소년들은 영·유아보다도 더 그리기의 즐거움에 대해 보장받지 못하며 학교에서 주어지는 미술시간 조차 주요과목을 공부하는 시간에 밀려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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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술관에서도 다양한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이 존재한다. 하지만 주로 도슨트에게 설명을 듣고 준비되어 있는 교재로 그리기나 만들기 시간을 가지고 짧은 시간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 에듀케이터가 아이들에게 간섭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미술관에서는 전시에 따라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이 바뀌고 부수적인 이벤트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다니는 미술 학원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발생한다. 종이와 크레파스, 또는 물감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선생님이 지도하는 대로 일률적인 결과물이 탄생하는 경우가 아직도 흔하게 일어난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방식의 미술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

프랑스에서 매주 수요일은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다. 수요일은 학교를 벗어나 엄마와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은 프랑스에서 그들에게 시각예술과 관련된 교육은 매우 손쉬우면서도 필수적인 수요 활동이다. EBS에서 여러 나라의 교육 현장을 주제로 방영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한 아이의 엄마는 평소에 나뭇잎, 모래, 각종 재활용품과 다양한 질감의 종이들을 아이에게 주면서 마음껏 창작활동을 하게 했다. 이 엄마는 여러 가지 미술 재료를 직접 만지고 다양한 색깔을 느끼면서 오감(五感)과 신체가 발달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이가 그리는 동안 그림에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재료를 주고 바닥에 비닐을 깔아주며 마음껏 칠하고 어질러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줄 뿐이다.

프랑스 파리에 104문화예술센터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0세부터 6세까지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와서 즐길 수 있는 미술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데 비치되어 있는 다양한 재료로 아이들은 낙서를 하고 뛰어놀며 시간을 보낸다. 전문 상담사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의 교육방법을 지도하기도 하고 아이의 그림을 보며 심리를 분석해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간섭 없이 자유롭게 그리는 시간을 주는 것이며 낙서라고 할 법한 아이들의 그림을 어른들이 의미 있게 바라봐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미술교육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 더 많은 미술학원이라기보다는 더 자유롭게 그림 그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어른들의 눈에 아이들의 그림은 낙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순진무구하고 자유로운 낙서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뺏거나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나 생각해 볼 때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