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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가득한 화폭…친구를 만난 듯 정겨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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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가득한 화폭…친구를 만난 듯 정겨움이 있다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44) - 따뜻한 벗과 같은 그림

꽃항아리 등 삶을 함께하는 요소들로 화면 구성

강렬한 첫인상보다 편안함을 주는 색채 머금어

물 흐르듯 흐르는 삶은 편안하다. 인생살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살다보면 좋은 일도 슬픈 일도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있게 마련이다. 어느 누구의 삶이 기쁘고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으랴. 그러나 이러한 인생의 굴곡에도 물 흐르듯 편안하게 우리는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벗을 만나고 싶다. 평생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괴로울 때나 내 곁을 지켜주는 그러한 벗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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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희 작 또 다른 정원, 116.7x72.7cm, 캔버스에 혼합매체, 2004
심주희의 작품은 작가와 평생 함께한 그러한 벗이다. 자연의 여러 요소가 조화롭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심주희의 그림은 작가가 곁에 두고 함께 즐기고 싶은 아름다운 것들이 조용히 작가의 곁을 지키고 있다. 심주희의 이미지는 꽃과 항아리, 새와 나무 등 작가가 편안히 보고 즐기는 것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조용히 등장한다. 이 요소들은 실제의 산물들을 재현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상상 속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이미지들은 색과 선과 면으로 가장 편안한 조형의 모습으로 고요한 작가의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이 예술로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보기에 아름다운 이미지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생의 확장으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고 우리의 삶을 반영하며, 우리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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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희 작 또 다른 정원, 65.2x45.5cm, 캔버스에 혼합매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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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희 작 또 다른 정원, 72.7x60.6cm, 캔버스에 혼합매체, 2004

작가의 기존 작품들은 모든 요소들이 너무도 질서정연하게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꽃과 화분, 항아리라는 요소뿐 아니라 새와 물고기 등 생명이 있는 모든 요소들이 마치 살아 숨 쉰다기보다는 멈추어버린 아름다운 정물화와 같이 조용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회화가 자신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푸른 색, 흰 색, 노란 색의 평화롭다 못해 너무도 고요한 심주희의 작품은 점차 생기를 띠게 된다. 파스텔 색조에 가까운 노랑, 주황, 연두 등 밝은 색조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주변에서 만들어주는 상황에 익숙하고, 주로 이를 따랐던 작가의 삶은 작가가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는 화면 안에서 비로소 자기 삶의 지휘자가 되어 형태와 색의 연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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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작 또 다른 정원, 65.1x53.0cm, 한지에 분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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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희 작 또 다른 정원, 53.0x45.5cm, 한지에 분채, 2014
“나의 작품을 이루는 것은 꽃과 그것을 담는 그릇, 마음으로 느끼고 표현되어지는 단순한 사물들이다. 구성한 공간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며 처음에는 계획에 의해 그려지나 과정 중에 무의식과 내재율에 따라 작품이 완성된다. 사실적인 형태에 대한 강박관념도 없다. 단지 그리고자 한 대상을 단순화하고, 화면 구성은 평면으로 처리하되, 그 속에서 웃음을 머금게 하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가 화면 안에 표현하는 자신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가꾸고 꾸미는 정원 같은 것이다. 매일 물을 주고, 햇볕을 쬐며, 바람을 불어넣고 웃음으로 키우는 작가가 본인의 인생 속에서 쉬지 않고 가꾸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정원에는 작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 여행도 외출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어느새 자신이 꾸민 정원으로 조용한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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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희 작 또 다른 정원, 72.7x60.6cm, 한지에 분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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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희 작 또 다른 정원, 53.0x45.5cm, 한지에 분채, 2014

작가가 선택하는 소재는 꽃과 풀, 새, 항아리, 마을 등으로 반복된다. 또한 한지에 20회가량 분채를 올리는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작가는 그만의 색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속에 반복되는 구성은 경쾌한 울림과 리듬감을 부여하여 즐거움과 유쾌함을 주고 있다. 우리는 익숙한 모습, 익숙한 색, 익숙한 도형이 주는 변주를 통해 작가가 꾸미는 정원을 보고 작가가 들려주는 음악을 듣는다. 이미지와 색, 사물의 중첩은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처럼, 기억을 일깨우고 거기에서 나의 경험과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서로 교차한다. 우리가 힘들 때 잠시 잊고 있었던 작은 사물들의 아름다움, 따뜻한 색들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고 경쾌한 멜로디.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미소를 띠는 듯한 심주희의 그림은 그래서 정겹고 기쁘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질감, 빛, 색, 깊이가 우리 앞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우리 앞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이유인 즉, 이것들이 우리 몸 안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요, 우리 몸이 이것들을 환영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물들은 내 안에다 자신의 현존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물의 현존의 내적 조응물(equivalent interne), 곧 사물의 현존의 관능적 공식을 마련한다.”고 설명한다. 구상적 요소와 추상적 요소가 조응하는 심주희의 사물들은 우리 몸에 부드러운 자신의 현존을 드러낸다. 기하학적이고 직선적인 요소보다는 비정형적이고 유기체적인 요소가 더 많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는 심주희의 작품들은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강한 첫인상을 남기진 않지만 항상 곁에서 물 흐르듯 나와 인생을 함께하는 좋은 벗 같은 모습으로 있다. 스스로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내 말을 많이 들어주는 친구. 색을 뿜어내고 자랑하기보다는 한지에 스며들 듯 주변의 색을 머금고 조용히 빛을 발산하는 친구. 심주희의 그림은 그런 친구 같다. 한결 같이 거기에 있으되 애정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썼다. 심주희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온기에서 우리는 주변 사물들에 대한 조용하고도 따뜻한 작가의 관심과 애정을 본다. 그리고 그림이라는 그런 좋은 벗을 둔 작가의 행복을 느끼며 우리도 그 벗을 공유한다. 기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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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희 작 또 다른 정원, 45.5x38.0cm, 한지에 분채, 2014
심주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서 수학한 심주희는 국립현대미술관 구상전에 입선(1999년)과 특선(2001, 2002)을 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2003, 2004), 대한민국환경미술대전 우수상(2003), 서울미술전람회 특선(2001)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코엑스와 예술의 전당의 아트페어를 통해 개인전을 했으며 베이징과 프랑스에서 전시를 가졌다. 본인의 심상을 표현하는 편안한 소재와 색감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